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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6>K가 내민 손

by 바이오스토리 2013. 5. 8.

 


 

 

K가 내민 손

인하대 생명화공학부 김은기

 

금요일의 퇴근길, 지하철역 까지 가는 길에는 늘어선 포장마차와 출출해진 속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인해서 늘 북적인다. 비까지 부슬거리는 그날의 지하철입구는 어느 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로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북적거림의 일상은 전철 입구에 있는 매표소부근부터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황급히 움직이는 제복차림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찰구를 밀고 아래 승강구의 계단을 내려서자 건너편 철길에는 열차가 출발하지 않고 서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바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내려선 바로 정면의 열차 아래에는 제복차림 사람들 사이로 들것이 열차 밑에 놓여져 있고 무언가가 그 위에 얹어져 있음을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삐죽이 솟아있는 두 발을 보는 순간 그것이 사람의 주검이고 바로 눈앞에 있는 열차가 역내로 들어 올 때 사람이 뛰어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눈앞에 있는 누워있는 그의 때 절은 운동화 위로 K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우리가 K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여름 무렵이었다. 내가 우리라고 한 것은 그가 속한 연구 분야가 내가 속한 연구 분야와는 다르고 우리 분야의 학술단체에서 계획한 중국대학 방문에 그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의 신청자여서 행사를 준비하던 우리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보통 외국대학 방문은 그 분야의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그것도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형태여서 친목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공항에서 처음 만난 K 연구원은 우리 일행들과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이런 학술모임에 자주 참여하여서 서로 대부분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 일행이 모난 사람들이 별로 없고 같이 어울리기를 좋아해서인지 K연구원도 처음 만남의 부담을 덜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말주변이 별로 없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하는 데 비교적 오래 걸리던 나와도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우리 분야 쪽의 지식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우리 분야의 지식이 많지 않아서 이번 모임을 통해서 사람도 알고 내용도 배울 겸해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K박사가 욕심도 많다고 하면서 그의 용기를 칭찬도 해주고 또 부러워하기도 했다.

 

외국 대학에서의 세미나 내내 K연구원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가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루 종일 계속되는 세미나에도 전혀 피로한 기색도 없이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저녁 식사 중에 그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하였다. 원래부터 술을 잘하지 못하고 얼굴이 금방 붉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녁에 이은 맥주자리에서도 우리들은 즐거운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란 점도 있지만 벌써 이런 식의 모임을 가진지도 십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때로는 심한 농담으로 상대방을 놀려주기도 하였다. 배타적이 될 수도 있는 모임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말주변이 별로 없던 K박사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그가 즐거워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벌써 이미 네 차례의 술자리에도 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그가 함께 참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세미나에 연이은 다른 도시의 방문 때에도 그는 우리 그룹과 같이 있었다. 하지만 2-3일 계속되는 여정동안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붙임성이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처음 만난 사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나는 새로운 풍경 속에서 그저 즐겁게 지내려고만 하고 있었다.

 

K를 다시 만난 것은 매년 실시하는 우리 단체의 망년회 장소에서였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을 보면 아마도 처음 만남 이후로 우리 단체에 새로이 가입을 했거나 아니면 그전에도 가입을 했는데 우리와 같이 여행을 다녀 온 이후로 망년회에 참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K는 다른 사람들의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반갑다고 간단한 인사만을 한 이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몇몇 사람이 함께 며칠간 여행을 했던 여름의 행사와는 달리 망년회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테이블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앉는 것이 보통의 형태였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그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주변에는 그가 아는 동료가 별로 없는 듯 말이 없이 앉아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가 다시 나의 테이블로 돌아온 것은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별로 말주변이 없던 그와 역시 마찬가지이던 나는 그저 간단한 안부만을 묻고 있었다. 이야기는 중간 중간 끊기면서 연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불러 귀가를 재촉하여 데면데면한 자리를 떠남을 다행으로 여기며 일어섰다. K가 손을 내밀었다. 다른 자리들도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입구를 나오면서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나의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었다.

 

내가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정초였으니 연말 모임 후 삼 주가 지났을 때였다. 저녁뉴스는 어느 연구원의 자살이야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가 업적문제로 힘들어했고, 본인의 차에서 연구실에서 사용하던 독극물을 사용했고 그리고 이미 한번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가 K 연구원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오늘도 매일같이 다니는 지하철 승강장에 내려선다. 들것이 있었던 바로 자리에 K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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