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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바이오화장품이야기/(1)뷰티누리연재 컬럼

[뷰티누리] 남성 화장 시대

by 바이오스토리 2013. 11. 20.

[컬럼] 남성 화장 시대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토크(16)
 
 

학교 복도에 남학생이 지나가는데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동시에 내 혈압도 덩달아 올라간다. 이건 면도 후의 간단한 스킨 정도가 아닌 아주 진한 향수다. 어떤 녀석인가 고개를 돌렸더니 ‘아뿔싸!’ 얼굴도 화장을 했는지 연극배우 분장이다. 게다가 패션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화려하다. ‘아, 드디어 그루밍 족을 공과대학에서도 만나는 구나’, 감탄이 앞선다.

군복 상의를 검게 물들여서 입고 다니는 것이 대학생의 특권이자 상징이었고, 게다가 공과대학의 경우는 계속되는 밤샘 실험으로 노숙자 패션으로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 80년대 모습이었다. 이런 향수에 젖은 7080세대에게는 외모와 패션에 투자를 하는 ‘그루밍 (grooming)족’이 낯설다. 하지만 20대의 그들에게는 이런 7080이 오히려 ‘고리타분’하다. 그리고 이제 남자가 화장해야하는 시대가 왔음을 당당히 알린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화려하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에 비해 암컷은 논에 있는 종달새처럼 수수하다. 수꿩인 장끼의 울긋불긋한 깃털은 사냥꾼의 모자에 늘 꽂혀 있을 만큼 아름답지만 암꿩인 까투리는 밋밋한 패션으로 장에 나온 시골아낙네의 모습이다. 동물의 수컷은 화려해야 암컷의 눈을 끌 수 있다. 일단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눈을 끄는 데에 모든 노력을 한다. 눈을 끈 다음에는 암컷의 환심을 살만한 행동, 예를 들면 춤을 춘다. 암컷의 맘에 들어야만 짝짓기를 통해서 자신의 자손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암컷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당연히 수컷이 화려하게 화장해서 잘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거꾸로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일까? 여성들만이 임신하는 것은 분명한데 지금의 남자들은 무슨 배짱으로 여성을 선택해서 씨를 퍼트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인간들이 사냥을 해서 먹고살던 시절에는 남자들이 밖으로만 돌아다녔지만 농경시대에 접어들면서 한 곳에 정착을 하고 살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농사지으면서 힘을 쓰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남성위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경제권을 쥔 남자들에게 선택을 받아야하는 여성들이 화장을 시작했다는 것이 문화학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세상이 바뀌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 같은 남자들만의 세계였던 곳에도 여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도 여성의 두뇌가 먼저 발달한다. 게다가 남자 아이들은 게임, 놀이에 빠져 노는 사이에 죽어라고 공부한 여자들이 학교 성적의 1,2등을 모두 차지한다. 술 먹고 군대 다녀오는 사이에 여자 대학생들이 시험이란 시험은 모두 휩쓴다. 안정적인 직장인 공무원, 교사는 모두 여성들이 우세하다. 하다못해 골프에서도 한국 여자골퍼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경제권을 가진 여성들이 늘면서 이제 남성들은 사면초가다. 가장 중요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여성인데 이들이 경제권마저 획득한다면 남성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남성이 자식을 나을 수 있는 정자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꿈이다. 여성들은 정 필요하면, 결혼하지 않고도 ‘정자은행’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가질 수 있다. 말썽만 피우는 남성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여성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일까? 남성이 화장을 해서 여성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보면 화장을 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던 그루밍족 남학생의 혜안이 이해가 된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여성이 화장을 했던 동물이었는데 이제 남성도 다른 동물처럼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정상적인 동물’의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미리 점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물학적, 문화적 이유를 모두 이해한다 해도 나는 아직도 그루밍족이 낯설다. 진한 향수, 모델 같은 패션 그리고 백옥 같은 얼굴의 그루밍족에 고개를 돌린다. 반대로 밤잠 못자서 부석부석한 얼굴이지만 힘들여 얻은 실험데이터에 싱긋 미소 짓는 ‘투박한 남자’가 좋다. 나는 역시 ‘7080 고리타분 형’인가 보다.

◆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 조지아공대 박사학위 취득
현 인하대 공대 생명공학전공 교수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신소재 국가지정 연구실 운영 경력, 화장품학회 이사
한국과학창의재단 STS바이오 문화 사업단장
www.biocnc.com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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