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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7)자연모방기술-생활속 바이오

(40). 세포 속 작업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PCR

by 바이오스토리 2023. 7. 11.

‘여기가 피씨알 하는 줄인가요?’ ‘네, 맞아요’라며 고개를 돌리다 놀란다. 호호백발 할머니가 코로나 검사를 하러 왔다. 놀란 이유는 호호백발이 아니라 ‘PCR(중합효소연쇄반응)’ 이란 단어를 유창하게 뱉어서이다. 바이오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시험문제에나 나올 전문용어인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코로나가 국민의 바이오 지식을 업그레이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 검사기술은 PCR 분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지금 시대를 ‘PCR 이전과 PCR 이후’의 시대로 구분할 만큼 과학, 특히 생명을 다루는 바이오 분야에서 PCR은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 기술은 연인과 드라이브하던 한 과학자의 번쩍 아이디어에서 떠 올랐다. 후일 노벨상 수상 식장에서 그는 ‘당시는 PCR 기술보다도 헤어지려는 애인을 잡는 것이 더 급했다’라고 농담을 했다. 떠나려는 애인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혹시 PCR 기술의 핵심인 DNA 조각을 서로 ‘붙이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PCR 기술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간단한 원리임에 놀란다. 그는 세포들이 매일 하는 일을 그대로 모방했을 뿐이다.

PCR 기술은 세포가 늘 하던 일 (DNA 복제)을 모방했다


애인과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고 있던 과학자 ‘캐리 멀리스’ 머릿속에 애인 대신 갑자기 세포 속 DNA가 보였다. 세포는 DNA 자기 복제를 해서 수를 불려 나간다. DNA 복제는 지퍼를 열고 그 지퍼를 두 개로 복제하는 것과 같다(그림 참조). 즉 DNA 이중나선을 지퍼처럼 열어젖힌다. 그리고 두 가닥 DNA를 복제한다. 이때 복제를 처음 시작하는 곳에 DNA 조각(프라이머)을 붙인다. 일종의 비빌 언덕인 셈이다. 이 DNA 조각에 큰 덩치의 DNA 복제효소가 달라붙는다. 그리고는 DNA를 쭉 읽어 나가면서 DNA를 복제한다. 복제는 DNA의 염기 순서에 매칭되는 염기를 끌어 붙이는 과정이다. 과학자 모리스는 옆에 있는 애인을 까맣게 잊었다. 대신 그의 두뇌는 DNA 복제를 바꾸기 위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세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을 모방해서 실험실에서 DNA 복제를 시키면 어떨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떤 DNA이든 몇 배로 수를 불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 

애인과의 데이트를 급히 끝낸 과학자 모리스는 실험실에서 이를 시도해봤다. 복사를 시작하는 부분에 DNA 조각을 붙이고 복제효소를 집어넣으니 거짓말처럼 그 부분 DNA가 복제되었다. 문제는 계속해서 복제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연속적으로 복제가 되면   1->2->4->8->16->32.... 식으로 DNA 가닥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려면 DNA를 두 가닥으로 분리하는 높은 온도 조건이 필요했다. 그건 온도를 올리면 된다. 문제는 그때 DNA 중합효소가 고온으로 죽어버리는 거다. 고온에서도 작동하는 DNA 중합효소가 필요했다. 행운이 따랐던 걸까. 이미 다른 과학자들이 고온에서도 작동하는 중합효소를 찾아냈었다. 미국 옐로스톤 공원의 75℃ 온천물에서 살고 있는 고온성 미생물 내부의 중합효소였다. 애인과 헤어지는 아픔을 실험으로 견디었을까. 그의 연구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 연쇄반응)이라는 보물을 탄생시켰다. PCR은 아주 적은 양의 DNA도 무한대로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DNA를 증폭시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먼저 호호백발의 할머니도 알고 있던 코로나 검출 기술을 보자.



사진: DNA를 고온에서 떼어내고 복제하려면 고온에서 작동하는 DNA 중합효소가 필요했다. 엘로우스톤 공원의 뜨거운 온천에서 살고 있던 미생물 효소를 사용했다.



사진: DNA 복제 과정: DNA는 헬리케이즈(2)에 의해 두 가닥으로 분리된 후 DNA복제효소(1)에 의하여 각각 복제된다. 이 과정을 모방한 것이 PCR 기술이다.

 

 

사진:PCR 반응: 증폭하려는 DNA(A)를 고온에서 풀어낸 상태(①)에서 프라이머(C)를 붙이고 접합(②)한다. 이어서 DNA 순서대로 DNA 염기(B)를 붙이며 복제해나간다(③). 이런 사이클을 반복한다.


PCR 기술은 질병 진단, 친자확인, 범인 검거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코로나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우선 급한 것은 감염이 되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코로나에 걸리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목, 입, 코 등의 호흡기로 침투한다. 발열 등의 증상이 있으면 이미 바이러스가 활동을 개시, 즉 호흡기 세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다. 그전에도 알 수 있을까. 목이 칼칼한 정도만 되어도 면봉으로 코를 문지르면 면봉에 바이러스가 묻는다. 초기라 아주 소량의 바이러스가 면봉에 있어도 PCR 기술로 이놈이 코로나인지 아니면 단순 감기인지 알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정보가 먼저 필요하다. 즉 코로나 염기 순서를 알면 그 바이러스 DNA에 달라붙는 DNA 조각을 만들어서 붙일 수 있다. 그러면 PCR 기술로 바이러스 DNA가 복제된다. 무한대로 복제해서 DNA 수를 늘릴 수 있다. 이렇게 복제되는 것이 확인되면 그놈은 코로나란 이야기다. 반면 감기 바이러스라면 코로나에 달라붙도록 제작된 DNA 조각이 감기 DNA에는 달라붙지 않을 것이다. 

호호백발 할머니에게는 코로나 감염 여부를 빨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러스가 폐 속 깊숙이 들어와서 폐 세포를 망가뜨리면 바이러스성 폐렴이 발생한다. 노약자에게 폐렴은 치사율이 매우 높다. 신속하게 코로나인지 아닌지를 진단해야 한다. 코로나는 그래도 낫다. 몇 시간 만에 젊은이도 죽게 하는 무서운 병이 있다. 패혈증이다. 패혈증은 제때 진단해서 치료받지 못하면 40~70%가 사망한다. 패혈증은 병원균이 혈액으로 침투, 온몸이 염증 상태로 급변한다. 혈액에 어떤 균이 있는가를 알아서 거기에 맞는 항생제를 긴급 처방해야 살 수 있다. 병원균 진단에는 PCR이 절대 필요하다. 즉 혈액 속 미생물의 특정 부분 DNA를 PCR 방법으로 확인하여 어떤 균인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어떤 항생제내성 유전자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응급실 의사는 혈액 속 병원균에 맞는 항생제를 신속, 정확히 처방해서 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다.

PCR이 위력을 발휘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DNA 지문이다. 극소량의 DNA만 있으면 PCR로 그 DNA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뿐더러 친자확인도 가능하다. 세간의 관심을 끈 사건 중에는 애달픈 사연도 있다. (박스기사 참조)

PCR은 DNA지문 방법으로 DNA 주인을 10억분의 1 오차율로 가려낼 수 있다. 즉 사람과 사람은 DNA 차이가 0.1% 난다. DNA 지문법은 사람의 모든 DNA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크기와 DNA 염기 순서가 달리 반복되는 소위 STR(Short Tandem Repeat)이 서로 다르다. 이런 부분만을 PCR로 확인하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의 DNA지문이다. 범죄 현장의 혈흔·정액·모발·땀 속의 DNA 정보와 용의자 DNA 정보를 비교하면 금방 범인을 찾을 수 있다. 지문·모발 등이 증거로 채택되어 억울하게 범인 취급을 받아 수감 중인 360명을 무죄 방면한 것도 PCR 기술이다. PCR은 인간 DNA를 확인해서 호모사피엔스의 최초 여성 조상이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이었음도 확인했다. 이제 PCR은 인체의 질병을 파악한다. 특정 병을 일으키는 DNA를 확인해서 유전병을 치료케 하고 질병 발생을 미리 대비하게 한다. PCR은 가히 바이오 분야의 최고기술이다. 세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과학자가 연인과의 드라이브 데이트에서 번쩍 떠올린 ’유레카‘, 즉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다. 세포 속에는 수십억 년을 진화해온 보물들이 숨어있다. 과학이 그걸 모방하기만 해도 대박이다.

박스기사: 진짜 러시아 황제의 딸을 찾아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혁명으로 온 가족이 몰살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되었다. 10년 후 한 여인이 나타나서 본인이 니콜라스 2세의 딸, 즉 아나스타시아 공주라고 주장했다. 이를 의심한 유럽 황족들이 그녀를 조사했다, 공주가 아니면 알기 힘든 세부적인 내용까지 정확히 답변했다. 그녀는 20년 가까운 법정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소하고 폐렴으로 사망, 화장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그 후 황제의 무덤이 발견되었지만, 그곳에는 아나스타시아 공주의 유해는 없어서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시아 공주였든가라는 이야기들이 분분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아나스타시아, 1956, 미국)로도 만들어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논란을 일시에 해결한 주인공은, 이후 개발된, PCR이었다. 공주라고 주장한 여인의 병원조직 샘플과 니콜라스 2세 황제의 친척들을 조사해보니 전혀 관련이 없었다. 2007년 러시아 고고학 발굴팀은 황제 가족의 또 다른 매장지를 찾고 그 속에서 진짜 아나스타시아 공주의 DNA를 확인한다. 사기꾼인 가짜 공주를 찾아내고 진짜 공주 시신을 찾아 가족과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한 주인공이 PCR이다.

사진: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공주 아나스타시아(하): 그녀가 살아있다는 소문은 PCR 기술로 거짓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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