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카멜레온의 변신을 현실화하다 – 구조색 적용 기술

(본 내용은 출판된 서적 (자연에서 발견한 위대한 아이디어 39)의 처음 일부입니다.

 

여수에는 ‘빠삐용’이라는 나비박물관이 있다. 빠삐용(Papillon)은 불어로 ‘나비’를 뜻한다. 영화 <빠삐용>(1973, 미국)에서 주인공은 해상 감옥으로부터 나비처럼 훨훨 날아 탈출하려 한다. 그래서 아예 나비 한 마리를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놓았다. 그 나비는 푸른빛이 찬란한 ‘모르포(Morpho)’ 나비다. 
‘모르포’는 변한다는 뜻이다. 이 나비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어떤 색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비 날개의 미세한 구조 때문에 다양한 푸른색으로 보인다. 이른바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다. 모르포 나비처럼 미세한 나노구조를 변화시키면 색소 없이도 다양한 색깔을 만들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옷도 만들고 전력이 아주 적게 소요되는 디스플레이 액정도 만든다. 이는 위조지폐 방지에도 쓰인다. 

 

* 색소 없이도 찬란한 빛을 만드는 모르포 나비

전남 나주에 가면 천연염색 연구소가 있다. 붉은색 옷을 만들고 싶으면 
붉은색 꽃인 홍화(紅花)에서 뜨거운 물로 색소를 추출하고 그 물에 흰 옷감을 집어넣으면 된다. 만약 빠삐용에 나오는 모르포 나비 색소를 추출하여 옷을 염색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한 과학자가 모르포 나비 수십 마리를 잡아서 날개 부분을 모으고 그 부분을 알코올에 집어넣었다. 알코올에 색소가 추출되어야 했지만 여러 번의 시도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알코올에 나비 날개를 집어넣으면 푸른색이 사라졌다.
 과학자들은 원인을 찾기 위해 전자현미경으로 날개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신기한 모습이 영상으로 잡혔다. 모르포 나비의 날개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은 담벽 같은 구조였다. 이 나노(nano) 구조에 햇빛이 들어오면 그 구조에 맞는 특정 파장, 즉 푸른색 빛만 반사시켜서 모르포 나비가 푸른색으로 보인 것이었다. 이렇게 나노구조에 따라 특정 파장 빛이 반사되어 그 파장의 색으로 보이는 것을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 부른다. 어떤 사물이 색을 가지는 이유는 해당 색소가 있어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물질 자체의 구조 때문에 특정 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포 나비가 알려준 것이다. 

 

사진: 모르포 나비의 구조색: 휘황찬란하게 보이는 다양한 색(상)은 날개 아래의 나노구조(하)에 따라 입사광선의 파장(A,B)이 합쳐지거나 반사되면서 다양한 색(C)으로 나타난다.

*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구조색

구조색은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CD나 DVD 표면은 영롱한 무지개색으로 어른거린다. CD 자체는 무색의 플라스틱(폴리카보네이트)으로 표면이 매끄럽게 보이지만 레코드판처럼 아주 미세한 홈이 만들어져 있다. 그곳을 레이저로 읽어서 반사되는 빛을 디지털 신호로 바꾼다. 즉 디지털 정보를 레코드처럼 저장하는 방식이다. 그 홈으로 들어간 빛은 폭과 깊이에 맞는 파장의 빛으로 반사되어 무지개색처럼 보인다. 
비눗방울도 구조색을 갖고 있다. 비눗방울은 비누 분자의 특성(계면활성 능력)으로 비눗방울의 표면이 극단적으로 늘어난 경우다. 이때 비눗방울의 두께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파장이 달라지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자개장은 전복 껍데기의 빛나는 부분 수백 장을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다. 전복의 오색찬란한 빛은 전복 껍데기 자체의 구조에서 나온다. 전복 껍데기는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진 얇은 널빤지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나노구조 때문에 특정 파장 빛이 반사되어 영롱한 색이 나타난다. 
고가의 보석인 10월의 탄생석 오팔(Opal)도 구조색을 갖고 있다. 보통 대부분의 보석은 광물질이 결정을 이룬다. 그런데 오팔 보석은 규산염이 층층으로 쌓여 있는 비결정형이다. 이 층층 사이에서 빛이 굴절하여 분산되면 무지개색을 띤다. 
이런 구조색은 특정 파장의 빛만 반사해서 그 색만 보인다. 
즉 모르포 나비는 청색으로, CD, 비눗방울, 오팔 보석은 무지개색으로 보인다.

사진:&nbsp;다양한&nbsp;구조색&nbsp;(좌)&nbsp;CD는&nbsp;표면의&nbsp;미세한&nbsp;홈의&nbsp;구조&nbsp;차이로&nbsp;그&nbsp;홈에&nbsp;맞는&nbsp;빛이&nbsp;나타난다.&nbsp;(우)&nbsp;오팔&nbsp;보석은&nbsp;층층이&nbsp;쌓인&nbsp;나노구조&nbsp;때문에&nbsp;휘황찬란하게&nbsp;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