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최강의 독으로 얼굴 미인을 만든다 - 보톡스

(본 내용은 출판된 서적 (자연에서 발견한 위대한 아이디어 39)의 처음 일부입니다.

얼굴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노력은 본능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피부과를 더 찾는 이유 역시 젊게 보이고 싶은 열망이다. 그렇다면 피부과에서는 어떤 시술이 가장 인기 있을까?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압도적인 1위 미용 시술은 보톡스 주사다. 국내 여성의 42%가 한 번 이상은 시술했고, 앞으로 할 의향이 있다는 사람까지 합하면 무려 84%가 보톡스 주사를 기꺼이 맞으려 한다. 
보톡스 주사를 맞으며 코브라 독사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브라의 독은 코끼리도 죽게 할 만큼 치명적이다. 그런데 보톡스는 코브라보다 수백만 배 강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이런 독이 어떻게 얼굴의 주름을 없애는 ‘최고의 상품’으로 변한 걸까. 독의 두 얼굴을 들여다보자.


* 소시지 부패균이 만드는 보톡스

‘보톡스
(Botox)’는 ‘소시지’라는 의미다. 부패한 소시지에서 보톡스 독이 생기기 때문이다. 1793년 독일의 윌바드 지역에서는 소시지 식중독이 발생해 13명 환자 중 6명이 사망했다. 식중독 사고치고는 최고 사망률이다. 
소시지는 매우 오래된 음식 보존 기술로, 살코기를 제외한 내장, 머리 고기 등을 다져서 동물의 창자에 쟁여 먹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 향신료를 넣은 다음 천장에 매달아 두세 달 건조하며 숙성시킨다.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하지만 순대보다는 고기 내장 등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냉장고가 없던 당시 환경을 고려하면 소시지가 식중독균에 오염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이후 보톡스 생성 균이 클로스트리듐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보톡스 독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과학자들은 보톡스 독이 근육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눈 근육의 비정상 수축으로 안구가 똑바로 정렬되지 않은 사시(斜視) 치료에 보톡스 독을 사용했다. 비정상 근육의 운동을 마비시키면 사시가 치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도 눈을 둘러싼 근육의 비정상 작동이 원인인데 보톡스로 해결될 수 있다. 눈 부위의 근육 이상을 치료하던 안과의사 앨런 스콧은 이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환자의 눈 부위 주름이 없어진 것이다. 
보톡스 주름 치료제가 나온 순간이다. 고혈압 치료제인 미녹시딜이 탈모 방지 치료에 사용되거나,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에 효과가 있는 등 처음 의도와는 달리 히트를 친 경우다. 

사진: 얼굴의 주름은 웃을 때 생기는 근육이 당겨져 있어서다. 이 근육을 보톡스 주사 독이 마비시키면 당겨진 근육이 풀어지면서 주름이 펴진다.(CCL)

*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없애다

보톡스 독은 어떻게 주름을 없앨 수 있는 것일까? 주름은 나이가 들면서 피부 노화로 생기는 미세한 잔주름도 있지만, 웃거나 찡그릴 때 생기는 큰 주름도 있다. 세로 주름은 얼굴을 찡그리면 생기고, 가로 주름은 웃을 때 눈과 입 주위에 생긴다. 
젊을 때는 피부 내 근육이 용수철처럼 탄성이 있어 웃을 때 근육의 움직임으로 생겼던 가로 주름도 용수철처럼 원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나이 든 피부는 이 근육 용수철이 탄성을 잃는다. 당겨져 있거나 늘어나 있다. 그래서 웃고 난 뒤에도 원래 평평한 피부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늘 주름 상태로 있다. 이를 고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졸아들어 주름을 당기고 있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졸아들었던 용수철이 풀리면서 주름이 풀어진다. 하지만 독이 사라지면 마비가 풀려 다시 주름이 나타난다. 보톡스 성분의 효과는 통상 6~12개월 동안 유지된다. 너무 자주 맞으면 보톡스 성분에 대한 내성(면역항체)이 생겨 효과가 줄어든다.

사진:신경독 작용원리; 운동 전기신호(화살표)가 신경 세포 말단에 도달하면 주머니 속 아세틸콜린( 적색 점)이 분비되고 근육 수용체에 달라붙어 근육세포를 운동시킨다. 보톡스는 아세틸콜린 분비 자체를, 화학무기인 신경작용제(VX)는 아세틸콜린 분해를 각각 막아서 모두 근육을 마비시킨다.

  

사진: 보톡스 작용기작: 근육운동 신경 물질인 아세틸콜린을 운반하는 이동 단백질 3종류를 보톡스가 잘라내서 아세틸콜린이 이동하지 못한다.(CCL)

보톡스가 근육을 마비시키는 원리는 뱀독과 비슷하다. 뱀독은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이 아예 분비되지 않도록 막는다. 신경과 신경의 접점(시냅스)에서 물질 전달이 되지 않으니 근육이 못 움직인다. 사지가 마비되고 호흡근도 마비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뱀독은 뱀의 유일한 공격 수단이다. 그래서 뱀은 생존을 위해 독을 더 독하게, 그리고 상대를 물었을 때 더 빨리 퍼지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보톡스는 상한 소시지 속에 들어 있던 보톡스 균(클로스트리듐)이 만든다. 소시지에는 굳이 왜 이런 맹독이 필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