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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후위기, 바이러스, 생명, 진화

(2)'뿌린대로 거두리라'..... 코로나의 역습

by 바이오스토리 2022. 1. 8.

(경향잡지 2021.9월호)

http://ebook.cbck.or.kr/gallery/view.asp?seq=214883#p=111


‘뿌린 대로 거두리라’ … 코로나의 역습                                                                         글_김은기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국 우한이다. 아니, 태어났다기보다는 그곳에서 내 정체가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났다는 말이다. 인간들은 내가 우한 야생동물 시장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지난 2년간 사향고양이, 밍크, 너구리 등 38종, 4만 7천여 마리의 동물들이 그 시장에서 거래되었으니 내가 거기에 숨어 있었으리라 추측할 만하다. 글쎄, 그건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아, 내 소개가 늦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인간들은 나를 ‘코로나19’라 부른다. 내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나를 이곳에 보낸 바이러스 제국 황제도 몰랐으리라. 그가 얼마 전 축전을 보내 왔다. ‘확산 임무 완수 축하. 2단계 진행 바람.’
나는 황제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 가족 때문에 한다. 내 가족이 있는 그곳, 남미 열대우림은 지금 심각한 상황이다.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돼지 농장을 만드는 등 날마다 트랙터 소리로 요란하다. 잘못하면 모두가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다른 친척 집안, 곧 인플루엔자, 메르스, 에볼라, 사스(SARS)도 전전긍긍이다.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들, 곧 박쥐, 원숭이 등 야생동물들이 모두 밀림 밖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인간 탓이다.

인간들이 지구 다른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그 집주인들이 사라지면 우리도 살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 내가 받은 밀명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 바이러스 가문이 살아갈 곳을 찾아라. 인간도 타깃이다. 필요 시 누구든 없애도 된다.’ 우리가 도착한 중국 우한은 이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내 집주인은 박쥐다. 박쥐의 본디 집은 남미 밀림이었는데 이번에 중국 남부 윈난성 근처로 이사 와야 했다. 밀림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가 갈수록 더워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인간들이 흥청망청 써 대는 에너지 때문에 나타난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질 때 창조주와 한 약속을 잊은 종족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다른 피조물들과 잘 지내라.’ 하셨거늘 그 말씀을 따르지는 않고 제 욕심만 챙긴다. 먹고살 만큼만 취하는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들은 보이는 것마다 잘라 내고, 먹어 대며 머릿수를 늘려 나간다. 농사짓는 법을 배우게 했더니 그 뒤로는 더 제멋대로 군다.

 

집주인 박쥐는 지구상 포유류 가운데 종류가 가장 많고, 전체 포유류 숫자의 20%를 차지한다. 게다가 멀리까지 날아다닌다. 바이러스 확산에는 더없이 좋은 집주인이다. 다른 야생동물과도 친해서 천산갑과도 자주 만나는 덕분에 나, 곧 코로나19가 천산갑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 인간들은 이를 ‘스필 오버’(spill over)라고 부른다. 박쥐에서 넘쳐흘러(spill), 천산갑으로 옮긴다(over)는 뜻이다. 천산갑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생동물 요리 재료다. 사향고양이도 잘 먹는다. 2002년, 사스 패밀리도 박쥐와 사향고양이를 통해 인간 폐로 침투했다.

 

우리 바이러스들은 본디 평화주의자다. 우리의 집주인들을 밀림에만 있게 해 주면 된다. 하지만 인간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내몰았다. 그래, 전쟁이다. 내가 받은 명령은 간단하다. ‘인간들에게 침투해서 우리가 살 곳을 확보한다. 지금이 최적기다.’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지구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오늘날 야생 포유류 수는 농업 시작 당시의 6분의 1로 줄었다. 육지 포유류의 36%는 인간이고, 60%는 인간이 먹으려고 키우는 가축들이다. 야생 포유류는 나머지 4%에 불과하다.
가축들이 육지 포유류의 60%나 될 만큼 많다. 가축들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중간 다리 역할로는 최고다. 게다가 우리가 비행기 승객 속에 올라타면 반나절 만에 지구를 돈다. 우리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질 최고의 기회라는 말이다. ‘인간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라. 우선 침투해라. 그곳이 폐든 뇌든.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 완벽한 우리 왕국을 만들자.’ 

 

아마존 밀림이 줄어들면서 야생동물끼리 좁은 공간에서 접촉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 안에 살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서로 접촉하며 변종이 생겨 다른 동물도 감염시키는 스필오버가 생긴다. 원숭이에만 있던 AIDS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도 온 이유다. 결국 인간의 환경 착취가 지금 바이러스 위기 근본 원인이다. 그래서 제2, 3...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온다(이미지 소스 하단)


최고의 생존 고수: 바이러스
박쥐에서 천산갑으로 옮겨 탄 뒤, 나는 우한 야생동물 시장에 도착했다. 중국인들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다. 한국인들도 중국으로 관광 가서 곰쓸개에 빨대를 꽂아 웅담을 빨아 먹는다고 한다. 그거, 참 잘하는 짓이다. 그러니 우리 동료 바이러스가 곰에 잠복해 있다가 인체로 들어가기는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시장에 도착해서 본부에 문자를 보냈다. ‘우한 도착. 이곳은 베이스캠프로 최적. 감염 확산 개시함.’

 

내 전공은 폐 세포다. 그동안 살면서 집주인인 박쥐의 폐에 자주 들락거렸다. 박쥐 몸에는 나 말고 다른 바이러스 패밀리도 많다. 163종이나 되고 그중 절반은 사람과 동물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이른바 ‘인수 공통 바이러스’ 패밀리다. 인간들 폐는 들어가기 쉬운 곳이다. 내가 폐로 들어가면 그 사람이 폐렴에 걸릴 확률은 76.4%이다. 겨울 독감이 0.3%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자, 이제 본격적인 전투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들에게는 나름대로 방어망이 있어서 그걸 잘 통과해야 한다. 물론 나도 박쥐 신체 내부에서 유격 훈련을 받았다. 박쥐가 날아오르면 체온이 쭉 올라간다. 순간적으로 사우나가 되는 셈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도 살아남도록 훈련받았으니 인간의 방어망 뚫는 것쯤이야 쉽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특히 면역세포들은 사냥개 같은 놈들이다. 한번 걸리면 떼로 몰려든다. 하지만 우리는 바이러스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며 수십억 년을 살아남은 생존의 고수들이다.

 

인간세포(자색)를 감염시키는 코로나(황색). 세포는 코로나를 수십배로 불려서 내보내고 터져버린다. 바이러스는 수십억년 동안 이런일을 해온 전문가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내가 본부에서 침투 교육을 받을 때 에이즈(AIDS) 사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최초로 인간에게 침투하여 토착화에 성공한 사례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원숭이 집주인과 잘 지내던 에이즈에게 어느 날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를 찍어 냈고 집들을 지어 댔다. 원숭이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즈음 인간들은 원숭이 고기를 나눠 먹기도 했다. 원숭이한테 전세 살던 에이즈 패밀리에게는 인간들한테까지도 자신들의 세를 확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구나 에이즈는 인간들에게 안 알려진 바이러스였다.

 

에이즈가 인간의 허를 한 방에 찔렀다. 바로 인간들 면역세포 자체에 침투한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면역 체계가 무너지고 몸이 꼬챙이처럼 말라 간다. 바이러스들은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인체 내부에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옮아가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인간들끼리 성관계로 우리를 옮겨 주니 이들이야말로 최고 숙주다. 에이즈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때 우리끼리 하던 말이 있다. ‘인간들은 좀 혼나야 돼.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걸 알아야 해.’
내가 에이즈처럼 성공해서 지구촌을 휩쓸지, 아니면 천연두처럼 박멸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 여부는 인간에게 달렸다. 기후변화라는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계속 정신을 못 차린다면 페스트한테 당했던 것처럼 큰코다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인간에게는 나름대로 머리가 있다. 잡은 고기를 서로 나누어 먹을 줄 아는 까닭에 다른 많은 동물을 제치고 지구 최고 종족, 지금의 호모사피엔스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구 자체가 창조주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모든 생명체가 공생해야 한다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의 말이 먹혀서 상호 공생의 길을 찾는다면 우리 바이러스도 거기에 기꺼이 한 표 던질 거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인간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

 

에이즈 바이러스(HIV)(노란색)이 인간면역세포(청색)을 감염시킨 모습. 외부균을 없애는 면역자체가 감염으로 망가진 에이즈는 이제 인체내에 자리잡은 셈이다.


김은기 리노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명예교수이며 바이오융합연구소장이다. 「미래의 최고 직업 바이오가 답이다」 등 11권의 교양 도서를 출판했다. 7년 동안 중앙일보(선데이)에 ‘김은기 바이오토크’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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