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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태국 사람들, 한국의 겨울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22.
 

한국의 겨울


1월의 인천공항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러간다기보다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수선한 공항을 나 혼자 도망치듯 바삐 빠져나간다는 듯 한 착각이 들만큼 새해벽두부터 생명공학분야는 줄기세포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짜 논문을 작성한 황 교수의 모습은 착실히 앉아서 연구를 하기보다는 외부로 나돌아다니는 로비위주의 많은 연구자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는 사실에 새삼 나를 둘러본다. 내가 저런 상태에 있다면 일부러는 아니겠지만 저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께도 그런 경우이다. 대학원생에게 몇 년전에 발표한 논문에 사용했던 균을 찾으라하니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마도 몇 사람의 손을 거치고 옮기고 하면서 죽었는지, 분실되었는지 분명치가 않다는 것이다. 농담조로 내가 황 교수냐 라고 했지만 몇 명이 아닌 수십 명의 연구원을 두고 있는 황 교수 같은 경우라면 심지어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리라. 복잡한 생각에 나는 붐비는 공항로비 한 가운데에서 문득 뒷덜미를 만져본다. 뒷덜미가 묵직해 진 것이 제법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몇 주째 떨어지지 않는 감기가 단순히 계절 탓이 아니고 잘 풀리지 않는 연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든다. 너무 일에 몰려 있었나보다.


공항에서 만난 Y교수는 복장의 선택에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다. 겉에는 양복, 안에는 쉽게 벗을 수 있는 덧옷 형태를 입었다. 서울은 영하 10도이고 도착할 태국의 방콕은 영상 30도 라고 하니 두 계절에 맞는 옷이 필요하고 학회공식 모임도 참석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아주 적절한 형태의 옷차림이다. 그냥 생각 없이 두터운 잠바를 입고 양복은 여행가방에 고이 넣어서 짐을 키운 나와는 달리 조그만 짐 가방을 단출히 들고 나왔다. 비단 이런 복잡한 여행 조건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짐을 싸는 요령이 원래부터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방의 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서 이삿짐으로 꾸려 졌다. 라면상자에 차곡차곡 챙길 수 있는 책은 쉬운 편이다. 문제는 이불이다. 이불을 쌀 수 있는 커다란 보자기로 아주 꼭꼭 눌러야 짐의 크기를 줄이는 데 나는 그 재주가 없었는지 보따리를 싸고 나면 개어놓은 이불보다 더 큰 형태의 이불보따리가 만들어지곤 했다. 문제는 버스 문이 좁아서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차장아가씨에게 면박을 당하거나 아예 타지를 못 할 경우는 왜 그리 야박하던지 그 뒤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나곤 하였다.  내가 손재주가 워낙 없어서 그나마 선생질을 하고 있는 게 큰 다행이라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고 집사람도 그 점만은 군소리 없이 인정해준다. 덕분에 집안의 자질구레한 손질이라든지 무얼 만드는 데로부터는 해방되는 이로움도 누리고 있다.  이번 여행도 나는 짐 싸는 데로부터 해방 아닌 제외를 당하고 이것저것 집사람의 손을 거쳐 챙겨졌다. 복잡한 검사대를 통과하면서 혹한의 서울을 홀로 빠져나가는 듯한 미안함에 집사람이 챙겨준 가방을 다시 한번 만져본다.


태국의 여름


내가 태국을 방문하기는 몇 년전 아시아-태평양 생물공학회 (APBioCheC)에 참석한 이후로 처음이다. 그때는 국내에서 20여명 정도가 2박3일 일정으로 푸켓지역에 참가하였다. 푸켓은 어떤 곳인가. 태국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처음 그곳 지역에 내렸을 때는 많은 한국인 관광객에 놀라고 또한 여장 남자들의 쇼인 알카자쇼에 나온 미(남)녀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였다. 피지섬에서 훈련도 없이 한 시간 만에 다녀 온 바닷속의 모습은 안전장치없는 초보 잠수의 무모함에도 여전히 재미있는 기억으로 차있다. 하지만 기내에서 펼쳐든 태국여행 가이드의 피지섬의 모습은 얼마 전의 쓰나미 사건을 떠 오르게 한다. 우리가 피지섬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그 부두, 그리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그 배. 그 배에 수많은 시신이 실려 왔던 TV 의 모습이 머리에 가득 차 있다. 불과 얼마 전의 참사를 잊고 관광객은 다시 오지만 아들 신혼부부의 망가진 가방과 소지품을 보고 오열하는 어떤 한국 부모에게 태국은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가슴 아린 지역이기도 하다.

‘쿵’하고 지면에 부닥치는 충격에 상념에서 벗어나 보니 벌써 방콕 돈무앙 국제 공항. 5시간여가 소요된 셈이다. 문을 밀치고 나오는 순간, 턱하고 막히는 여름밤의 열기, 여기는 겨울이 아니다. 서울에서 영하10도의 강추위에 시달리다가 찜질방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다. 찬 겨울바람을 얼굴에 맞을 때의 그 시원함을 좋아라 하던 내가 벌써 추위를 피해 다니는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인 걸... 잘 놀다가 이제 그만 들어와라 하면 아쉬움을  두고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내가 아쉽지만 붙잡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도착한 호텔은 단체여행객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인 고급 호텔의 대명사인 양 로비가 으리으리하다. 단체여행을 꺼리는 이유가 굴비처럼 꿰어져 벗어나기가 힘들고 지겹게 다니는 쇼핑센터가 싫다는 것이라면 그래도 금전상 크게 손해 보지 않은 것 같다고 자위하는 곳이 호화스런 호텔입구에 들어섰을 때이다. 배낭여행이라도 다닐라 치면 숙소를 선택하는 것이 제일 까탈스런 일이다. 전문배낭 여행족이 다니는 단체숙소는 저렴하지만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해서 나같이 잠귀가 밝은 사람은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과 같이 다니는 경우, 호텔가격에 비해 시설이 너무 쳐질 경우, 단체여행으로 머물던 호텔의 사치스러움을 기억해내곤 다음에는 단체여행로 가볼까 하고 변덕을 부리곤 한다.


이 호텔은 학회에서 국제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에게는 낯익은 곳이기도 하다. 전직, 현직 임원, 그리고 위원들이 매년 지금처럼 새벽 두시에 도착한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실은 3년여에 걸친 그들 위원들의 바탕다지기 작업과 두 번에 걸친 방문으로 이쪽 지역과 길을 터 놓았기 때문이다. 전번 생명공학 뉴스지에 실린 미얀마 방문기 에는 미얀마 지역 연구소의 방문기와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아주 잘 나타나 있었다. 이번  방학을 이용하여 이곳 동남아시아 지역, 특히 미얀마지역, 태국지역 생물공학자들과 공동연구, 세미나 등을 계획하고 이번에 드디어 그 결실로 처음 한국-태국 생물공학 1차 심포지움을 개최하게 된 셈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잔치상을 차린 곳에 맨몸으로 참여한 것 같아서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학회장의 사람들


호텔에서 진행된 심포지움 주제는 “생물자원의 이용” 이었다, 학회차원에서 이곳 동남아시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이곳의 수많은 식물, 농업자원을 국내의 생물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요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바이오디젤의 경우도 직접적인 원료인 팜유(Palm Ol)의 주요 생산국중의 하나가 태국이 아닌가.


시원한 냉방이 돌아가는 실내는 약 150 명 정도의 태국생물공학자가 참가하였다. 이렇게 많은 생물공학 연구자가 참여할 줄은 예상을 못 한 듯, 자리가 부족하여 좀 늦게 도착한 참가자들은 의자를 별도로 마련해야했다. 딱딱함과는 거리가 먼 박 회장의 개회사는 경직되기 쉬운 회의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이니셜을 딴 “JK syndrome"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말을 비트는 언어의 연금술을 전파한 덕분에 이러한 신조어를 구사하는 분위기가 발표 내내 만연했다. 태국(Thai) 과 같은 발음의 중간이름을 가진 박교수는 ” Hi, Thai, tie a Thai-tie in Thai...“ 로 시작되는 문장을 구사하여 언어연금술의 풍조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 모임의 산파역할을 한 태국 측 대표는 태국 생물공학회장이면서 기업가이기도 한  Dr. Itkor 였다. 그의 유창한 영어의 축사에 이은 일본의 Yoshida 교수는 현재 태국에 머물면서 일본과 태국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제 학회 회장단과 늦게까지 차후 모임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마신 술의 량이 상당하였음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 지역의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학자로서 현직에서 은퇴한 후에 하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축적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을 후학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준다면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 받은 만큼 베풀고 가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선박제조 현장에서 용접일로만 30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50초에 퇴직을 하고나서 몇몇이 모여서 용접전문용역 회사를 차린 경우를 본적이 있다. 용접은 생각보다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해서 30 년 동안 단련된 그들의 손은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았고 그들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나이가 차면 무작정 나가야하는 지금의 세태를 볼 때 CEO의 입장에서는 고려해볼 사항이 아닌가. 젊은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100미터 달리기라면 노장이 잘할 수 있는 것은 오래 걷기라고 한 이야기처럼 서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조기퇴직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노장들의 경험을 긴요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벌써 훗날을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심포지움 내용에 집중한다. 9개의 구두발표는 한국과 태국의 생물공학 현황, 그리고 자원을 이용한 제품개발 등이 주를 이루었다. 식물자원에서 항균제재의 생산이라든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생산 등은 앞으로 생물공학이 가야할 방향이 자원을 고갈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한국 측 일행 중에서 제일 많은 질문을 한 사람은 전 회장님. 긴 시간의 여행과 이어지는 학회에서도 피로한 기색도 없이 게다가 틈틈이 수영도 하신다니 절제된 관리의 진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학문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인지도 모른다.

학회 중간 중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기록을 하고 부족한 의자를 날라 오는 이는 다름 아닌 현 수석부회장. 모두들 힘든 여정임에도 저런 열정을 보이는 것은 이 일에 대한 애착이리라. 많은 사람을 접촉하면서 학회를 주선하는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모임이 있었고 또 YABEC 같은 모임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또한 학회 종료사에서 부회장은 졸업식이 ‘commencement’ 라는 ‘시작하다’ 라는 단어인 까닭은 학회가 이제 시작임을 뜻한다는 부회장의 말은 이 모임에 대한 정성의 또 다른 표현이리라. 



태국 사람들


학회발표자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금방 눈에 띤다. 참석자의 70%, 발표자의 반 이상이 여성이다. 한국 측 15명이 모두 남성 인 것에 비하면 태국 내의 여성 파워가 대단함을 느낀다. 남자들이 해야만 할 것 같은 디젤엔진을 연구하는 옆 자리의 여자교수에게 물어보아도 같은 이야기이다. 직장의 반 이상은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고 고위공무원도 많이 있단다. 금방 의문이 생겨서 물어본다. 그럼 밥은 누가? 상대방의 얼굴에 스치는 의아함. 금방 잘못 물었다는 후회감이 든다. 한국 남자의 구태를 여기서도 못 벗는구나. 그 여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부분의 식사는 사먹는다고 한다. 말하는 투로는 세끼가 아니라 삼십 끼라도 사먹을 태세이다. 그래서 밤에 길가에는 그렇게 많은 국수집이 성업 중인지도 모른다.


한국졸업생 중 여학생들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밥’과 ‘아이들’과도 무관하지 않을까 한다.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골수까지 박힌 나 같은 고리타분한 남자들이 대부분이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밤새워서라도 학원에 접수시킨다는 엄마들의 가공할 교육열이 있는 한,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듯하다. 하지만 대학까지 나온 고급 여성 인력이 집에서 요리와 아이돌보기에 모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사이에 들인 정성과 비용, 시간을 고려한다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태국과 한국은 똑같이 남성위주의 사회로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전쟁 때문이라 한다. 태국은 수십 년에 걸친 전쟁으로 남자들이 귀해졌고 그래서 귀한 존재로 집에서 모셔지고 여자는 나가서 일을 하면서 덕분에 직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졌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남자들이 귄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에 비하면 이곳 남자들은 왜소한 편이고 집에서의 발언권도 약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12년을 살았다는 여행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점점 그리 변하는 자신을 보고 이제는 포기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렇게 사니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산다고 한다.


태국남자들은 상당히 느리다. 대부분의 동남아지역의 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하지만 킥복싱같은 경기를 보면 그들은 느리면서도 속에는 불같은 성질을 숨기고 사는 것 같다. 필리핀에 사는 교민들의 이야기 중 에는 현지 골프장에서는 남자캐디에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사람 들이 돈 좀 있다고 그들을 모욕하거나 할 경우, 그 자리에서 총에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12년을 지낸 가이드는 이 곳 방콕에서도 주의를 하라고 한다. 특히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시비를 하지 말란다. 언제 그들이 권총으로 그들의 불만을 쏘아낼지 모른다고 한다. 늘 조용하면서도, 포기하고 사는 듯한 왜소한 저들의 몸속에 싸인 불만과 노여움이 태국에서는 킥복싱으로, 베트남에서는 월남전으로 표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학회 끝 무렵의 저녁 만찬장. 태국지도가 그려진 접시를 보면서 느끼한 맛의 이 요리보다는 여기에 시원한 김장 김치가 담겨 있으면 좋을 걸 하는 상념이 든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김치를 길게 찢어서 먹고 싶다.  이곳 태국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자니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이 거의 왕 같은 생활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잘 차린 식탁에 가족에 둘러싸여 왕처럼 앉아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미소를 짓는다. 문득 옆자리의 여자 교수가 무어라 묻는다. 어디 아프냐고.... 

태국의 뜨거운 열기가 나를 왕으로 착각하게 했는지 아니면 한국남자의 구태를 못 벗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눈이 쌓여있는 겨울의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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