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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티벳이야기]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1)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22.



(티벳 수도 라사 언덕의 포탈라궁/ 생뚱맞게 광장에 서있는 중국정부 승전탑/ 조캉사원의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1) ---땅에 엎드린 사람들.                        


 

비행기상공에서 바라본 티벳 땅은 짙은 황토색으로, 나무라곤 별로 보이지 않는 척박한 모습이었다. 산 중간 중간 보이는 곳에 마을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그 사이로 유채 꽃밭이 노란색으로 알알이 박혀있다. 인천 공항을 떠나 북경에서 하루, 그곳에서 티벳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중간 기착지인 성도를 거쳐 티벳 수도인 라사의 외곽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웃음을 머금고 반기는 사람은 K교수. 이곳 티벳 지역의 고산식물에서 유용한 소재를 찾고자 공동연구 하기로 하고 처음 찾는 셈이다. K교수는 티벳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고자 노력하는 중이고 생명공학 전공으로 산업체에도 다녔고 또한 열심인 목사님이기도 하다. 티벳은 이곳에서는 서장자치구라고 불리며 서장은 중국이 1950년 티벳을 강제점거하고 붙인 이름이다.

 

중국과 인도가 접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중국 내의 가장 큰 자치구의 하나이기도 한 이곳은 평균 5000미터의 고산지역이다. 마치 중국이 평평한 마루바닥이라면 마루구석에 생일케이크를 놓았을 때의 그 케이크의 모양이 이곳 지형이라고 할까. 케이크는 둘레가 에베레스트산맥과 곤륜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티벳 내부는 분지형태이지만 작은 산들로 오르내리는 곳이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고소증에 몸이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인지 두통이 온다. 과연 이 고산지역에서 20일간 머무르면서 원하는 식물시료를 획득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고도가 높으면 자외선이 강해지고 이곳 식물들은 그에 대응하는 물질을 생산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항산화제라고 불리우는 이 물질은 자외선이나 내, 외부 자극에 의해 생체 내에서 발생되는 유해산소종(oxygen radical)을 제거하여 세포내의 DNA나 물질들을 보호하는 물질이다. 이번에 연구대상으로 삼은 피부도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강한 자외선이나 외부 자극에 대해 피부세포는 방어차원에서 멜라닌이라는 갈색고분자를 만들지만 검은 피부와 반점, 기미등을 형성시켜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항산화제를 피부에 공급 할 수 있다면 이 물질이 대신 방어해 주고, 피부는 수고스럽게 멜라닌을 안 만들게 된다.  만약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항산화제를 찾을 수 있다면 피부뿐만 아니라 노화방지 전반에 좋은 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자의 희망으로 이번에 찾은 곳이 티벳이기도하다.


차에 올라 한 시간 반을 강원도 산길을 가는 기분으로 오다보니 라사시내입구이다. 운전자는 이곳 티벳 출신으로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여기에 영어교육원을 차린 롭상 원장이다. 얼마 안 되는 티벳 인텔리중의 하나이고 변하는 티벳의 환경에서 학교건물을 짓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어교육원을 오르는 좁은 철계단에서 헛디딘 다리에 퍼렇게 멍이 들었다. 동행한 J교수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부상을 당하고보니 공통적으로 외부인이 겪는 고소증의 시작인가 보다. 조금을 움직여도 머리가 둔한 것이 허공을 딛는 느낌이다.

 

경황없이, 준비한 세미나와 저녁을 마치고 서둘러 침대에 몸을 누인다. 침대구석에는 병원 응급실에서나 볼 수 있는 호흡보조 장치가 있다. “Life saver"란 이름마저 이미 겁을 먹은 몸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급한 마음에 아무리 눌러도 작동이 안 된다. 손짓발짓으로 종업원을 불러보니 5000원 정도의 두 시간 용 카드가 필요하단다. 하루 숙박이 만원이지만 생명 보호장치 라는 단어가 맘에 걸려 작동을 시작하고 눈을 감지만, 단지 바람을 불어주는 선풍기 기능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앞으로 지낼 시간이 더욱 걱정이 된다.


라사시내는 서울 시내를 연상케 하여 북한산처럼 라사주위에 산이 둘려있고 한 가운데에 남산에 해당하는 언덕에 높이 90미터의 포탈라 궁이 서있다. 이곳에 있던 티벳 국가의 왕궁인 셈이다. 광장에 서서 높이 솟은 왕궁을 바라보자니  “티벳 에서의 7년”이란 영화에서 이곳 궁전의 컴컴한 방에서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소년 달라이라마의 영특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호기심에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망원경과 자전거를 즐기던 그 달라이라마는 지금 티벳 망명 정부를 이끌고 인도의 산기슭에서 이곳을 그리며 지내고 있는지 모른다.


궁전내부는 역대 왕인 달라이라마들의 초상과 동상들로 가득하였다. 컴컴한 내부에 타오르는 등잔불과 그 특유의 기름 냄새는 초상주위에 수도 없이 널려진 행운을 기원하는 화폐들로 어울려 때 마침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스산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티벳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과 티벳 민족의 불운한 역사가 모두 컴컴한 포탈라궁에 스며 있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침침한 궁전에서 오는 스산함과 고소증으로 인한 두통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포탈라궁을 내려오는 동안 나를 잡고 있었고 그 원인을 광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포탈라궁전의 광장에는 커다란 탑이 주위의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 있었다. 중국정부에서 세운 해방 기념탑이다. 만국기에 둘러싸여 중국보초들이 서있는 모습은 포탈라궁의 달라이라마 정신을, 티벳의 민족을 부인하려는 침략자로서의 중국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포탈라 궁을 중심으로 한 라사는 서울의 동대문시장에 버금갈 정도의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상권은 이주한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티벳 인들은 외곽 시골에 살거나 이곳 라사에서 하층신분으로 지내고,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걸인들은 모두 티벳 인이다.

 

포탈라 궁과 더불어 있는 조캉 사원은 대표적인 불교사원으로 스님들이 직접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심가의 시장과 더불어서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곳 두곳은 불교신자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티벳 인의 95%가 불교신자인 이들의 평생 소원은 불교성지를 순례하는 일로서 포탈라 궁과 조캉 사원은 늘 순례자로 둘러싸여 있다.


밤새 고소증 으로 인한 두통으로 잠을 설치고 새벽녘 포탈라 궁을 찾았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따라간다. 노인들, 젊은 아낙네들 모두들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모두 무언가를 둥글둥글 돌리며 중얼거리며 간다. 손에는 기도용 기구와 입으론 불교의 경전을 외며 그들은 수시로 궁이 보일 때 마다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아침의 축축한 길이건 흙바닥 이건....... 한 시간 남짓을 따라가다 보니 그들은 포탈라궁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탑돌이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조캉 사원은 절 주위를 돌고 있는 순례자들과 엎드려 절하는 순례자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인다.

 

멀리서 사원이 보이는 입구에서부터 이들 순례자들은 오체투지로 땅을 기면서 기도하면서 사원으로 향한다. 사원근처는 많은 상점으로 둘러싸여 있다. 덕수궁이 주위 현대식 건물에 쌓여있듯 조캉 사원은 많은 중국인들의 호화로운 상점들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 가운데를  엎드려가고 있는 티벳 순례자의 모습은 지극히 생경스럽다.


달라이라마는 그의 저서에서 행복을 수학공식으로 표현했다. 즉 행복지수는 현재 가진 것을 분자로 하고 가지고 싶은 것으로 분모로 하여 나누면 된다고 했다. 분명 우리들의 잣대로는 조캉사원 앞의 땅에 엎드린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원래 대대로 가지고 있던 집도, 땅도, 장사할 곳도 모두 중국인에게 빼앗기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금전마저 모두 털어서 가족과 함께 전국을 순례한다.

 

하지만 이곳 티벳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다. 분자에 해당하는 가진 것이 적다고 계산한다면 그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싶은 것에 해당되는 분모가 극히 작아야 한다. 아니면 우리 계산으로 그들이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 보일 뿐, 실제는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오후 K교수와 함께 시내의 약재상에서 필요한 약재원료를 구입하였다. 아직 우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새벽에 들렀던 조캉 사원 입구에는 축축한 바닥에도 불구하고 엎드려 있는 순례자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아직도 고소증 으로 허공을 딛는 듯한 기분이지만 나의 왼손에 들고 가는 약재원료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에게는 이 약재들이 행복지수를 계산하는 공식에서 분자의 크기를 늘리는 것인가, 아니면 분모의 크기를 늘리는 것인가. 미처 계산이 끝나기 전에 바닥에 엎드려있는 순례자의 벗은 발을 보는 순간, 고소증의 아득함에 그만 잡고 있던 약재봉지를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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