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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티벳이야기]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2)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22.

(티벳 수도 라사의 여행자 숙소)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2)......................................................배낭을 멘 사람들


이제 티벳에 온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수도인 라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가격에 맞는 차량을 물색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사이 나의 머리를 짓누르던 고소증은 조금씩 없어져서 이제 계단을 올라도 숨이 덜 차게 되었다. 계단에서 고소증으로 쓰러지던 기억을 벌써 잊고 더 높은 지역인 5000m 의 고산지역인 외곽으로 나가려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나쁜 기억은 어쨌든 잊어버리고 살게 되어 있나보다.


원래의 목적인 이 곳 천연약재를 얻는 계획은 이곳 수도에서는 대부분 완료되었고 이제는 외곽으로 나가서 재래시장을 찾아야 할 순서인 것이다. 하지만 고소증 대신 감기기운이 내 발 목을 붙잡는다. 수도 라싸에서의 일급 호텔이라고 해봐야 더운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여독을  쉽게 푸는 나만의 수단인 더운 물 목욕을 시도했다가, 누르스름하고 차가운 물속에서 감기만을 얻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 불러온 지배인과 손짓발짓을 했지만 물 한번 만져보더니 “오케, 베리굿” 하고는 도로 나간다. 그래, 이곳까지 와서 더운 물을 찾는 내가 이상하지 하고 포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간 찬 빗줄기가 내리는 이상기온이었지만 사원 앞의 찬 대리석에 젖은 몸으로 바닥에 엎드려 참배하는 수많은 순례객을 하루 종일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왔으면서도 아직도 내가 뜨거운 물 목욕이라는 사치를 바라고 있다니 감기에 걸린 것이 풍족함에 물든 나에게 내리는 일침이리라.


단돈 만원밖에 하지 않는 호텔이지만  K교수는 배낭족 전용숙소로 옮기자고 한다. 그곳이 편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비용을 아끼려는 눈치이다. 그는 중국에서 이곳에 올 때 48시간을 기차를 타고 와서 다시 20시간의 버스를 타고 왔다. 우리 돈 8만원의 비행기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장기간 여행을 하려하는 중국교수의 입장에서는 하루 만원의 호텔은 극심한 사치이다. 아무 말 못하고 옮겨간 숙소는 우리나라 뒷골목 여인숙을 연상케 한다. 대학 클럽활동을 하면서 통금에 걸리면 동료들과 남은 소주를 마시고 토하고 다니던 곳. 한 가운데 수도가 있고 다닥다닥 붙은 조그만 방들이 수십 개 마주보는 곳에 들어서자 이곳이 여행기에 자주 나오는 배낭족의 숙소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 방방에는 티벳을 여행하는 세계의 배낭족들이 몰려있고 게시판에 인도로 가는 팀을 찾는 한글을 보니 한국그룹도 있는 것 같다. 열어놓은 방문들 사이로 나이든 인도부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하기는 나도 이런 류의 배낭여행을 늘 꿈꾸어 왔으니, 저기 누어있는 저 부부의 모습이 나의 꿈꾸던 모습이 아닌가.


같이 다니는 K교수는 배낭여행 체질인 것 같다. 냄새가 배어있는 침대, 늘 무언가 남아있는 지저분한 공동변소, 시끄러운 바깥소리, 여덟 개의 침대가 붙어있는 조그만 방에서도 그는 코를 골면서도 잘도 잔다. 저 무심함이 나는 늘 부럽다. 거의 잠을 설치고 공동수도가 보이는 마당바깥의 의자에서 새벽의 먼동을 본다. 늘 푸른 티벳의 하늘대신 우기 끝자락의 하늘. 그 한구석의 산 능선에 걸린 구름은 지리산에서 본 반야봉의 비온 후의 구름이다.

 

낮에 본 인도부부의 모습이 떠 오른다. 저 부부는 왜 여행을 다니는 것일까.  나도 수많은 여행기, 그 중에서도 배낭 여행기를 많이 접하곤 하지만 이곳 티벳 수도에서 방문을 열어두고 젖은 빨래를 말리는 부부는 왜 여행을 하는 가하는 의문이 새벽 찬 기운과 함께 찾아온다. 얼핏 들여 본 그 방에는 2개의 커다란 배낭과 작은 배낭 3개가 보인다. 때가 잔뜩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하루 이틀이 아닌 일년 내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저 부부는 집은 어떻게 했나, 아이들은 없나. 직장은 그만두었나. 여행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저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은 역사공부를 하려함인가, 더 다니고 싶을 만 한가 등등의 많은 질문이 입을 맴돈다. 같이 이야기를 해 보았으면 했지만 남의 방에 불쑥 들기가 부자연스럽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도 배낭여행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배낭족의 특성인걸 보면 나는 배낭족은 되지 못 할 성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행기에 씌여진 낭만적인 단어- 배낭, 별빛, 우연, 들판, 버스, 이런 단어들이 주는 환상과 기대감에 배낭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것처럼 여행기는 낭만으로 도배되어 있다. 티벳이란 곳도 많은 여행객들이 낭만이 철철 흐르는 여행기를 남겨 놓았다. 푸른 하늘, 높은 사원, 신비한 수도승, 미소 짓는 아이들. 신비스런 새벽의 안개..... 여행기속의 새벽은 열어 제친 발코니에서 두터운 담요를 걸치고 한손에 커피잔을, 또 한손에는 사랑스런 연인의 손을 잡고, 동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는 낭만으로 늘 과대포장 되어있었다.


누군가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까지 티벳 여행은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의 연속이다. 우선 나를 식초처럼 쳐지게 만드는 것은 겨우 늦게 잠든 나를 깨우는 새벽의 소음이다. 매일 새벽 계속되는 바깥의 소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경운기이다. 이른 아침 새벽시장에 나서는 경운기는 트럭을 대신하여 시골길 아닌 라싸수도 한복판을 가로 지른다. 우리나라 시골길의 경운기는 운치가 있다고 느꼈지만 라싸새벽에 여러 대의 질주는 얇은 유리창을 덜덜 흔들리게 만들고 새벽공기를 칼칼하게 매연으로 가득 채운다.  며칠동안의 불면과 찬물에서 얻은 감기로 나는 식초 친 배추처럼 쳐져 있었다. 

 

이렇게 초쳐진 여행의 낭만의  기억은 또 있었다. 안면도의 밤바다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주위의 이야기로 텐트를 가지고 가족과 같이 간 안면도 바닷가. 칠흑 같은 어둠 덕에 파도치는 밤바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환히 밝힌 랜턴들로 날아드는 나방들,  촘촘히 늘어선 텐트에서의 부르는 술 취한 유행가들.  화장실의 넘치는 오물로 나는 악취. 낭만에 초쳐먹는 여행의 기억은 때로는 괴롭다. 이러한 낭만을 즐기지 못하는 나는 배낭여행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인가


그런데 저 인도부부는 늘 아침 얼굴이 평화롭다. 별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우리처럼 차량을 수배하려고 동분서주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아니 아예 갈 곳을 정해놓은 것 같지도 않다. 이곳 근처 시장에 가면 한 끼 식사가 우리 돈 삼백 원 정도이다. 그리고 방이 하루에 천이백 원 정도이니까 계산으론 부부가 한달을 먹고 자면서 지내는 데 단돈 십만 원이 안 든다. 아무데도 안가고 그냥 근처 사원을 매일 산보삼아 다녀오고 저녁이면 근처 시장에서 한 그릇 식사로 해결하고 저녁에는 누워서 책을 보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여행 일 것이라는 생각. 역사를 공부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알아가야 하고 무언가가 남아야 하는 것이 여행이여야 한다는 생각에 유럽여행 때에도 여행가이드의 말을 여행 내내 메모하던 나의 모습과 저 인도 부부는 많이 달라보였다.


외곽으로 나가는 차량을 주선하는 사람과 K교수와의 이야기로 조그만 방안은 더욱 좁고 정신이 없다. 어디어디 약초시장을 들르고 그 와중에 어디 유적지를 보고 열심히 조사해온 이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계획을 짜면서 여행준비에 나는 정신이 없다. 하지만 옆방의 인도부부의 방은 여전히 조용하다. 벌써 한달 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나 같으면 이삼일이면 볼 것은 다 보았다고 떠날 곳인데 아직 갈 곳을 못 정했나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조그만 차량에 온갖 짐을 다 실고 북적거리는 거리를 빠져나온 것은 해가 머리를 훌쩍 넘어선 오후였다. 좁은 길과 사람들을 빠져나와 산을 오르고 고개를 지나니 사람이 갑자기 안보이고 황량한 벌판에 들어선다.

 

울창한 산림도 아니고 나무도 거의 없이 벌건 황토가 뒤덮고 얼마 전 내린 비로 군데군데 깊은 골이 패여 있는 자갈 산의 모습의 연속이다. 들리는 것도 별로 없고 변하는 것도 별로 없는 메마르고 거친 들판의 모습이 그날 오후 내내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늦게 출발한 덕에 계획된 곳에 들르지 못하고 밤늦게 여관에 도착하였다. 전기공급이 안되어서 촛불을 켜고 외양간이 가까워서 소똥냄새가 물씬 나는 시골의 여관.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한일이 없다. 목적했던 약초도 못 얻었고 유적지공부도 못 했고 그냥 창으로 흐르는 황량한 산야만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왔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허탈감에 젖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했다. 그냥 지나가는 산만을 하루 종일 보았는데 일년이 지나도 그 산의 모습이 손에 잡힌다. 물에 패인 골의 자갈모양까지 아직 기억이 난다. 갑자기 인도부부가 생각이 난다.

 

‘왜 좀 더 많은 것을 하려하지 않나요? 빨리 이곳을 보고 다른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보면 좋지 않습니까. 나는 이곳에서 빨리 약재를 구하고 유적지도 보고 또 내일은 더 많은 계획이 있는데요’.  내 물음에 부부의 반문이 들려오는 듯하다. 왜 그래야 하나요?.

 

나는 답이 궁해진다. ‘그러면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결과를 내고 더 많은 연구비를 얻을 수 있고 다음에는 더 많은 예산을 들여 여기를 탐사하고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요?.

별로 말이 없던 부부는 미소로 답한다. ‘우리는 지금 너무 좋습니다’.


아주 매운 맛은 사람을 중독 시켜서 다시는 안 먹겠다던 그 매운 음식을 다시 찾게 한다고 한다. 일년이 지난 지금, 여행을 다시 간다면 좁고 지저분한 그 숙소가 있는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은 것을 보면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의 그곳은 나에게는 매운 음식과 같나보다. 예전 같으면 한참을 준비하고 책을 보고 무얼 해야지 잔뜩 맘을 도사리며 떠났던 나는 이제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차창에 흐르는 산을 바라보며 여행을 떠난다.


나는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찾기에는 지쳐있거나, 아니면 천성적으로 역마살이 낀 배낭 족 인지도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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