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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4>오지마을 다섯 가구 이야기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15.

(오지마을에서 바라본 진달래 가득한 산)
 

오지마을 다섯 가구 이야기


“TV에 나온 원조 할머니 집‘

쓰러져가는 허름한 판잣집, 몇 개의 식기들과 비뚤비뚤 쓰인 글씨가 이곳이 밥집임을 알린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이 깊은 산중에 뜬금없이 부닥뜨린 간판이 생경하다.


서울로부터 차로 다섯 시간의 오지마을. 산 입구에서 걸어서 시간 반. 깊은 계곡과 폭포를 통과하면서  “오지마을”이란  안내판이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이윽고 계곡을 질러 넓은 분지가 보이고 다섯 가구가 등산로를 따라서 붙어있다. 오지마을. 수십 년을 수려한 풍경과 아름다운 분지에서 살던 마을이 불과 1년 만에 어떻게 서울 뒷골목으로 변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곳이다.


다섯 가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건 20년 전부터.

다섯 번째 집을 빼고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어서,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섯 번째, 그러니까 어쩌다 오르는 등산객이 제일 마지막으로 보는 집에는 홀로 살고 있는 턱수염의 “시인”이 살고 있다. 20년 전, 그냥 산이 좋아서, 별이 좋아서 이곳에서 살아온 그가 끼적끼적 적어놓은 것을 어떤 등산객이 그의 시와 함께 이곳 다섯 가구의 삶을 소개했다. “오지마을, 무공해마을”........ 곧이어 지방방송국 TV가 이곳을 취재했고 중앙방송국TV에서도 사진을 내보냈다. 연이은 TV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등산객이었다.


많은 등산로 중에서도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등산로로 사람들이 몰려 올라왔다. 예전에 어쩌다 지나가던 등산객들은 집 앞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마시거나 아니면 다섯 번째 시인의 집에서 산나물차를 한잔 얻어 마실 뿐이었다. 이제 주말이면 이곳 분지에는 형형색색의 등산객들이 산의 나무보다도 더 많이 몰려온다. 첫 번째 집의 마당에는 지금 100개도 넘는 의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면 음식 만드는 냄새, 술 달라는 소리, 누군가가 틀어놓은 노래 소리에 서울명동 뒷골목을 방불케 한다. 주말은 외부에서 주방아주머니만 10명이 넘게 원정을 온다.


둘째 집은 사슴 할아버지 집이다. 지난번 TV에서 잘생긴 용모와 어울리는 수염의 “스타할아버지”는 더 이상 사슴을 기르지 않는다. 그는 대부분을 첫 번째 집 마당 한쪽에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진모델이 된다. 이제 그는 평일 낮에도 늘 모자와 등산화까지 차려입고 앉아있다.


셋째 집은 “TV에 나온 원조 할머니”라는 팻말을 붙인 할머니집이다. 첫째 집과 마찬가지로 길에 붙어있어서 주말등산객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등산객은 첫째집의 넓은 공터에서 머무르고 돌아갈 뿐, TV에서 제일 오래 살았다고 하는 할머니의 누추한 집에는 별로 손님이 없다.  주말이면 할머니는 늘 첫째 집이 원망스럽다.  자꾸만 공터를 넓히고 식탁을 놓으면서 이곳으로는 손님을 보낼 생각을 안 한다.  TV방송 이전에는 저녁이면 계곡에 모여서 옥수수를 구어 먹던 다섯 가구는 이제 더 이상 서로 말을 안 한다. 원조할머니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얼굴은 침울해졌다. 그리고는 어느 날, 판자에 글씨를 써서 붙였다. “TV에 나온 원조 할머니 집”


넷째 집은 이곳에서 50년을 산, 다섯 가구의 대표 반장이다. 이집은 요즈음 전화를 설치하느라 바쁘다. 점점 민박을 하는 등산객이 늘면서 예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밥집을 할까하다 첫 집이 밭쪽으로 공터를 넓히면서 포기하고 이제는 민박을 본격적으로 늘리려하고 있다. 이미 계곡 쪽으로 한 채 집을 만들었다. 그의 밭에는 더 이상 배추를 볼 수가 없다.


내가 들른 곳은 다섯 번째 집이었다. 아니 다른 집은 들를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집은 무언가를 잔뜩 쌓아놓고 음식을 만드느라 인기척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의 할아버지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셋째 할머니는 팻말너머로 첫째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넷째 집은 "안녕하세요." 라는 나의 인사에 힐끗 고개를 돌릴 뿐 계속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다섯 번째 집은 아랫집들과는 약간 떨어져 산기슭 쪽으로 있었다. 인기척이 없었지만 자연스레 그 길로 들어선 것은 그 뒤로는 더 이상 집이 안보였고 집 앞에 몇 개의 통나무 의자가 나무그늘아래 있었고 졸졸 물이 흐르는 샘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증을 채울 겸 앉은 의자에서 바라보는 정면의 산은 짙은 유화를 그려놓은 커다란 병풍처럼, 옅은 녹색의 나무와 짙은 붉은 색의 꽃 그리고 푸른 하늘로 채워졌다. 어느 산을 다녀오는 지, 망태하나 나물을 메고 돌아온 “시인“은 미소한번 짓더니 샘물가에서 발을 썩썩 씻는다.


그는 이곳 산을 20년간 다녔고 지금은 어디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어디에 송이버섯이 많은지를 훤히 알고 있다고 하면서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냈다고 하는 시집을 두 권 보여준다. “오지마을 이야기” 그 시집에는 다섯 가구 사람들의 이야기가 써 있었다. 구름, 밭, 새,  바위, 할머니 그리고 계곡에서 먹던 옥수수가 나온다.


요즈음 그는 고민이 많다. 이제 나이가 점점 차면서 이곳 다섯 가구들의 이야기 거리가 많아지기는커녕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시를 쓸 거리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하던 마을이 왜 이리 짧은 시간에 서울시내 뒷골목으로 변했는지, 왜 계곡에 안 보이던 깡통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지, 그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20년을 산에만 있던 그에게는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나는 이곳 오지마을이 변하는 모습이 낫 설지 않다. 내가 살던 동네의 개울가도 이제는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얼마 전 산을 조금 더 올라 간 곳에 있는 널찍한 남향의 분지가 움막을 짓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내년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를 만나러 좀 더 깊은 산으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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