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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3>연탄가스와 고스톱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15.

연탄가스와 고스톱


얼마 전에 중국 북경을 다녀 올 일이 있었다. 여름에 왔을 때와는 달리 겨울의 북경은 매콤한 냄새와 함께 눈이 따갑고 시내 전체가 뿌연 안개 속에 싸여 있었다. 연탄으로 인한 심한 매연이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허름한 옷차림, 붉은 벽돌의 변두리 집들, 그리고 매콤한 연탄 냄새. 이런 모습은 내가 자랄 때의 동네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연탄은 19개의 구멍을 가지고 만들어져서 흔히 19공탄이라고 불렸다. 대학시절의 자취방은 늘 연탄과의 전쟁터였다. 연탄은 두개를 줄로 세워서 화덕에 넣고 아랫것이 타서 하얗게 변하면 새로운 것을 위에 올려서 갈아야 하는, 말하자면 늘 신경을 써야하는 어린 아이 같은 존재였다.  자취방의 유일한 난방수단인 연탄은 늘 갈아주어야 제대로 화력을 유지하지만 시간을 놓칠 경우 옆방의 할머니에게 연탄을 빌려와야 한다. 하지만 불규칙한 생활에 연탄은 늘 꺼뜨리기 일쑤이고 덕분에 자취방에 떠 놓은 물은 늘 얼어있게 마련이었다.


졸업반 시절, 지금은 모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H와 하숙을 시작하였다. 연탄을 제대로 갈지 못해서 냉방으로 보낸 일년을 다시 반복하기는 몸이 더 이상  버틸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고소식이 심심찮게 보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화학공학을 배우고 있었던 그 시절, 연탄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연탄가스는 나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심지어 기말시험에 19공탄의 구멍크기에 따라 얼마나 많은 연탄가스가 발생하고 언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가를 계산하는 고난도의 문제가 출제되어 애를 먹이기도 하였다. 그때는 연탄에서 얼마나 많이 연탄가스가 나오는 가를 배웠다면 지금은 왜 연탄가스가 사람을 기절하게 혹은 죽게 만드는가를 가르치고 있으니 연탄가스와 나와의 인연은 대학시절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나보다.


사회면을 장식했던 연탄가스에 의한 일가족 사망 등의 기사는 나 같은 자취생에게는 잠을 잔다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고 동치미 국물을 먹으면 살아난다고 하더라는 등의 응급처치 기사에 눈이 가곤 하였다. 동치미 국물의 시원함이 연탄가스에 취한 정신을 들게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

 

연탄가스의 주성분인 일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이라는 산소운반물질에 달라붙어서 정작 정상적으로 붙어야 할 산소를 못 붙게 하고 있으니 산소가 필요한 몸속의 세포는 죽게 되고 사람도 죽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탄가스에 중독 되면 고압산소기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급선무라고 방송했고 어디어디에 고압산소기가 있다고 알려주기도 하였다. 고압의 산소이면 산소의 수가 일산화탄소보다 많으니 일산화탄소를 떼어 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어느 병원에 그것이 있다는 기사를 오려서 벽에 붙여놓을 만큼 연탄가스의 공포는 늘 나의 곁에 늘 있었다.  늘 곁에 있다는 것은 언젠가 한번은 만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은 대학졸업반 겨울이었다.


그날은 12월의 어느 일요일 이었다.

저녁에 청량리 성당에서 젊은 신부님과 고스톱을 치고 오는 길 이었다. 그 성당이 위치한 곳은 청량리역 뒷골목, 속칭 오팔팔 이라는 창녀촌이 근접한 곳으로 성 바오르 병원과 붙어있었다. 밤늦은 시간의 버스 정거장에는 늘 여인들이 서성이면서 휴가 나온 군인들, 술 취한 이들, 때로는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슬근슬근 접근하곤 했다. 그 신부님은 고스톱을 즐겨 친다고 했고 고스톱을 쳐야만 그곳 여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술집에도 가고, 술잔 앞에서 성호를 긋고 마신다고도 했다.

 

우리와 말이 통했던 신부님은 우리 또래였고 젊었던 H와 나는 신부에게서 처음으로 고스톱을 배웠다.  그 일요일의 고스톱은 수학공식에 절어있는 우리에게는 충분히 재미있었고 우리는 배운 것은 늘 복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층의 하숙방에서 H와 또 다른 두 친구 이렇게 넷이 둘러앉아서 소주내기 고스톱을 시작하였다. 그 늦은 시간에 고스톱을 친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대부분 그 맘이면 이불 뒤집어쓰고 잠을 자기 시작할 때였다.


이층의 하숙방은 거실에 있는 나선형 나무계단으로 올라가야 했고 하숙방은 실내에 있었지만 윗바람이 센 덕택에 늘 썰렁했다. 방의 한쪽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쪽문이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 연탄을 사용하는 화덕이 있었다. 나는 그 문가에 기대여 열심히 내기 고스톱을 즐겼다. 한 시간 여 만에 빈털터리 가 된 나는 아래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고 순간 아뜩해지면서 계단으로 굴렀다.

 

나선형 나무계단의 중간쯤에 거꾸로 매달린 나는 거실의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았다. 격자무늬의 천장이 출렁출렁 움직였고 위로 들려 걸쳐진 발 사이로 천정의 형광등이 밝았다 어두워졌다 했다. 그것은 그래도 덜 무서웠다. 이제 내가 죽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등 부분에 일직선으로 찬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낀 것은 거꾸로 매달린 나의 두 손을 본 순간이었다. 나의 두 손은 비틀려지고 있었다. 손목과 손가락이 마치 불에 구운 오징어다리처럼 꼬여지고 있었다. 아무리 돌리려 해도 손은 반대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인 방에는 아무도 없었는지 혹은 넘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친구들이 계단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뛰어나온 것 것은 10여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밖으로 나가야만 산다고 나를 부축하는 그들의 발걸음도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렸다. 문 옆으로 새어 들어온 연탄가스를 그 곳에 기댄 내가 제일 많이 마셨고 다른 친구들도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연탄가스를 마신 셈이다.

 

맨발의 겨울밤은 차가웠다. 등이 켜진 골목길을 어깨동무하면서 비틀거리면서 우리는 내려왔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전등이 매달린 전봇대를 붙잡고 우리는 한참을 서 있었다. 차 소리가 들리고 흔들리던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전봇대를 부여잡은 두 손에 감각이 돌아온 것과 발이 얼다못해 아프다고 느낀 것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통을 붙잡고들 있었다.  아마도 내가 살 수 있다고 모두들 느꼈던 모양이다. 어느 병원의 고압산소통에 눕히지 않아도 된다고 모두들 스스로 판단한 모양이다.


고스톱을 가르쳐주던 그 젊은 신부는 지금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그때 가르쳐준 고스톱으로 한 젊은이가 살아남아서 지금은 어떻게 연탄가스가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아니면 왜 학생들에게 고스톱처럼 재미있는 것을 가르치지 않느냐고 책망하지는 않을까. 너는 지금은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보지는 않을까. 


 

한 겨울, 리어카에 실려 가는 연탄을 보기만 하면 여러 가지 상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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