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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수필]14.필리핀 엘리스 이야기

by 바이오스토리 2014. 2. 26.

필리핀의 알리사 이야기

인하대 생명화공학부 김은기

 

알리사는 세 남매의 엄마이다. 작달막한 키에 까무잡잡한 그녀가 오는 시간은 아침 일곱 시. 굿모닝이라는 아침인사와 함께 대문을 들어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다. 산 아래 동네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십 여분 오르느라 숨이 차다. 가쁜 숨을 고르며 메고 온 작은 가방을 벗어놓고는 부엌일을 시작한다. 알리사는 내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의 가정부이다. 이 하숙집은 삼층 건물로 산비탈에 위치한 다른 집들보다 큰 편이라 눈에 잘 띈다. 이곳 산비탈에는 백 여 채가 넘는 집들이 각각의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저 멀리 떨어진 건너편 산비탈을 마주보고 있다. 이들 집들은 대부분 필리핀 부자들의 별장이다. 산 중턱을 가로 지르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이곳의 출입구는 제복차림의 경비들이 지키고 있다. 조그만 요새처럼 되어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 이나 떨어진 수도 마닐라에 있는 부자들이 이곳을 오는 경우라고는 빌려 준 집들에서 돈을 받거나 집 계약을 할 때일 뿐이다. 필리핀 부자들은 오래전에 이곳에 별장들을 지었다. 이곳은 산꼭대기에 도시가 건설된 일종의 휴양도시이다. 전 대통령인 마르코스와 부인 이멜다의 여름 별장이 있는 것을 보면 필리핀의 더위를 잊기에는 이곳 고산도시가 제격인 모양이다. 마르코스의 거대한 여름 별장은 이곳 하숙집에서 시내 방향으로 십 여분 거리에 있고 그쯤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금방 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잡지에서나 나올듯한 고급주택형의 별장지대가 바로 아래 보인다. 그 가운데 우뚝 서있는 삼층집이 내가 잠시 머무르는 집이다. 조금 더 밑에는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별장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부자 저택과 가난한 판자촌을 가르는 것은 철조망. 각박하고 살벌할 이곳의 부조화의 풍경은 하지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녹색의 산들 덕분에 그나마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려하고 있다. 저 아래 철조망을 막 벗어난 언덕아래에 알리사의 집이 있다고 하였다.

 

알리사는 언덕길을 내려가면서도 계속 안절부절 못한다. 집이 작고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머물고 있는 삼층 별장과는 다르다는 등 필리핀 고유의 악센트가 있는 영어로 자기 집을 보여주기가 부끄럽다고 한다. 별로 내키지 않는 알리사를 이 핑계 저 핑계로 앞세운 이유는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은 이곳 아랫마을의 풍경 때문이다. 철조망을 벗어 나와서 언덕길을 내려서면 잘 포장되어있던 길은 갑자기 좁아지고 그나마 좁은 그 길에 누런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으르렁대는 폼이 네가 여기를 왜 오냐는 듯하다. 좁은 길 위의 개 배설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에 닭장들이 보이고 집들만큼이나 빼곡히 닭들이 들어차있다. 겨우겨우 지나갈듯한 집들 사이도 울긋불긋한 빨래들로 그나마 남아있는 틈들을 채워놓고 있다. 하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이런 집들이 이 마을로 들어 가보려는 나를 머뭇거리게 하지는 않았다. 나를 멈칫하게 했던 것은 좁은 길 양옆으로 무리지어 앉아있는 이곳 사람들, 특히 한 무리의 남자들이었다. 평일이건 대낮이건 몇 명씩 앉아서 지나가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그 좁은 골목길이 마치 흑인 할렘가의 입구이거나 필리핀 반군 게릴라의 본거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 곳을 들어가려면 노련한 여행자처럼 넉살좋게 다가서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동행이 필요했다.

 

알리사를 앞세우려는 나의 유치한 작전은 나를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단번에 해방시켜 주었다. 무리를 지어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제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을 자기 시동생이라고 소개시켜 준다. 악수를 나누었다. 할렘가의 우두머리처럼 보였던 그가 내가 아는 사람의 친척이었다. 갑자기 이 동네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둘러앉아있던 사람들은 우리 시골의 평상에 앉아서 화투치는 이웃집 아저씨들로 변했고 어슬렁거리던 하이에나 같은 개들은 꼬리 흔들며 반기는 집안의 멍멍이로 변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단순하기도 하다.

 

판자촌처럼 붙어있는 골목길은 곧 산 아래로 급하게 이어졌고 우리는 제법 나무들이 우거진 골짜기에 내려섰다. 길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잘 위장된 요새처럼 나무에 둘러싸인 좁은 지역에 십 여 채의 집들이 숨어 있었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밀림의 게릴라 소굴인 듯하다. 알리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안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온다. 알리사의 시어머니가 두툼한 손을 내밀더니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를 설명한다. 내가 알리사에게 이곳 나무에서 자라는 열매와 과일이 내가 하는 연구에 꼭 필요하니 너의 집에 있는 나무를 보여 달라고 핑계를 댄 까닭이다.

 

조그만 꼬마들이 알리사에게 달려든다. 눈이 또랑또랑한 딸내미는 이제 초등학교 일학년. 그 아래 남자 녀석이 나에게 매달린다. 나의 손목시계가 신기한지 만져보는 조그만 손에 알리사의 손바닥이 매섭게 날라 온다. 아마 시계를 탐낸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주저앉아서 우는 녀석은 아프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린 엄마에게 맞은 것이 더욱 억울한 모양이다. 늘 웃고 다니던 그녀에게 엄마로서의 엄격한 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소개를 하는데 모두가 알리사의 남편 쪽 친척들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집에 있다. 아직 저녁시간이 이른 것을 보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남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자다 나온 듯 부스스한 머리에 러닝 차림의 그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그는 직업이 없다. 알리사가 일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셈이다. 집이라고 해야 함석을 얹은 지붕이 땅에 닿을 듯, 보이는 부엌에 그릇 몇 점이 보인다.

 

세 남매를 집에 남겨놓고 하루 종일 청소와 부엌일을 하고 나면 받는 돈은 우리 돈 이천 원 정도이다. 삼층집이기 때문에 쓸고 닦아야 하는 범위도 넓다. 빨래와 부엌일, 그리고 아침이면 큰 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아오기도 하고 하루 종일 바쁘다. 그나마 알리사는 가정부로서의 일이 있는 것이 행운이란다. 더듬거리는 영어이기는 하지만 영어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 집에서 일을 얻기가 용이하다고 한다. 이곳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군의 점령 하에서 수십 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철수하였지만 이곳에도 미군캠프의 자취가 있는 것을 보면 모든 이들이 영어를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이곳 산꼭대기 도시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것도 시원한 날씨와 영어교육 열풍으로 몰려오는 학생들이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시아의 나라로는 싱가포르와 인도, 그리고 필리핀이 있다. 그 중에서 싱가포르는 잘 사는 나라로 변모했지만 필리핀은 그런 기회를 놓쳐버렸다. 세계의 국가, 기업들이 영어권인 필리핀에 건물을 세우고 은행을 세웠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싱가포르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곳 수도 마닐라의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친구도 그나마 있던 본사가 싱가포르로 옮긴다고 걱정스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예로부터 왕이 선정을 베풀고 정치를 잘하면 백성들이 배부르다고 했는가. 알리사를 비롯한 이곳 사람들은 그런 행운과는 거리가 멀었나보다.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마르코스는 이십 여 년간을 총으로 다스렸다. 그 부인 또한 구두가 몇 천 켤레니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그나마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필리핀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 섬을 근거로 하는 회교도들도 필리핀으로 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반군활동으로 필리핀을 불안한 나라로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내가 필리핀에 간다고 하자 게릴라에게 납치되지 말라고 농담반 진담반을 할 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내가 큰 기업의 사장이라도 필리핀에 공장을 세우기는 망설일 것이다. 하기는 이러한 선입관 덕분에 이곳 알리사의 집으로 가는 길이 마치 필리핀 반군의 소굴쯤으로 생각되었으리라. 마르코스 독재이후에 등장한 민주정권도 경제에는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했나보다.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 중에는 마르코스시대가 낫다고 하면서 그리워하는 눈치이다. 먹고사는 일이 다른 것에 우선하는 것임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늘 명랑하던 알리사의 목소리가 오늘은 풀이 죽어있다. 집주인에게 야단을 맞은 것 같다. 벌써 한 달 치를 가불해 갔다고 이야기하는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알리사의 사는 방식이 맘에 안 드는 눈치이다. 남편이 빈둥빈둥 노는 것도 그렇고 매번 가불을 할 것이 아니라 조금 참고 조금씩이라도 모아야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지만 알리사는 그저 눈물만을 글썽거릴 뿐이다. 남편이 일자리가 있다면 누군들 일하고 싶어 하지 않겠냐고,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참고 아이들을 굶기냐고 이야기하는 알리사를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알리사가 집이 너무 가난해서 보여줄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나의 방문을 머뭇거릴 때 나는 허락을 얻을 목적 반, 그리고 내가 겪은 경험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난한 것은 죄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 이다 라고. 알리사를 안심시키려고 이 말을 했지만 나는 곧 후회했다. 남편의 입장이라면 그런 말이 가슴에 와 닿을까. 배부른 자의 허튼 소리로 들리지나 않을까.

 

성경에서나 나옴직 한 그런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넘길 수 있었던 다행스런 여건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그 여건이라는 것도 내가 노력해서, 내가 잘 나서 라기보다는 한국이라는 땅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행운이 아닐까. 어쩌면 그 한국이라는 행운도 실은 밤늦게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내가 지금 밥술이나 뜨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만약 알리사 동네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이 호강을 누리고 있을까.

 

힘들지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 아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이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힘든 과정을 다 겪었다, 이런 이야기를 알리사에게 해주고 싶지만 나는 차마 말을 뗄 수가 없다. 몇 푼이라도 받겠다고 매일매일 주워 가는 빈 플라스틱 병 으로 하루 이천 원에 온 식구가 매달려있는 이 끈질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알리사의 치마 끝에 매달린 딸내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에 어린다. 다음에 알리사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풀이 죽은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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