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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티벳이야기]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3)

by 바이오스토리 2014. 2. 17.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4) 운전사 장씨 이야기

 인하대 생명화공학부 김은기

 

우리가 장씨를 만난 것은 숙소에서 사일이나 기다린 후였다,

 

우리라 함은 티벳 지역에서 연구샘플을 모으려는 나와 중국연변에서 온 K박사, 그리고 그의 제자로 통역의 역할을 하려는 L 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티벳의 수도인 라사에서 일부 연구샘플을 얻고 나머지는 수도를 떠나 외곽의 지방도시로 삼,사일 다니면서 구하는 것이었다.

 

쉽게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구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터무니 없이 비싸게 부르는 몇 팀을 제외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갈 수 있을까 할 만큼 이곳에는 차량이 적었다. 비좁은 숙소에서 사일을 기다린 후에 겨우 떠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었다. 어서 빨리 다녀와서 여행을 마무리지고 싶을 만큼 이곳의 고소증은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불편한 잠자리와 입에 맞지 않는 식사 등으로 이미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차량을 구했다는 소리는 태풍에 갇힌 섬에서 배가 뜰 수 있다는 소식과도 같았다.

아침 일찍 도착한 장씨는 허름한 잠바차림으로 차량에서 내려 인사를 한다. 오십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별 표정이 없다. 그의 잠바만큼이나 낡은 차량은 이십년이 지난 일제 토요타 짚차 였다. 아직 굴러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만큼 차는 오래되어서 녹슨 곳곳이 떨어져 나갔다. 그나마 창문이 모두 있는 것이 다행이다.

 

장씨는 티벳 원주민이다. 물론 수도에는 장씨 같은 티벳 원주민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중국인이 중국 각지에서 몰려와 살고 있다. 열명 중 다섯은 외지에서 몰려온 본토 중국인이다. 중앙정부가 이곳 변방의 티벳을 중국화하려는 속셈으로 티벳 침공이후 계속 사람을 이주시킨 결과이다. 티벳이 중국의 서쪽 끝의 고산지대에 위치해서 지금은 중국의 자치주로 편입된 것은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독립된 국가로 있다가 중국에게 무력으로 점령되면서 그때의 왕인 달라이라마는 지금 근접한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꾸리고 있다.

 

장씨가 사는 곳은 수도인 라사의 중심에 있는 시장지역 근방이라고 했다. 라사에서 티벳인은 주로 시장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조그맣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중심에는 아주 오래된 조캉사원이 있다. 이 절을 중심으로 많은 집들이 모여 있고 이들은 모두 언덕위의 포탈라궁을 바라보고 있다. 매일 이들의 일과는 사원 앞에서 엎드려 절하거나 사원주위를 탑돌이처럼 도는 일이다. 그 일이 끝나면 이번에는 좀 더 큰 규모의 포탈라 왕궁을 돌면서 중간 중간 맨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사원 앞의 큰 길을 건너면 갑자기 번화한 거리로 들어선다. 화려한 여인의 휴대폰 광고간판이 보이고 곳곳에 화장품, 가전제품 상가 등이 보인다. 규모가 백화점수준인 곳도 있다. 큰 규모의 잘 차려진 수퍼마켓들도 이곳에 있고 물론 숙박시설들도 몰려있다, 소위 신시가지인 강남인 셈이다. 관광객들이 주로 몰려다니는 곳도 물론 이곳이다. 이곳 주인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있으면서 이곳의 돈줄을 모두 쥐고 있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는 사이, 많은 걸인들이 이곳 식당가를 어른거린다. 하나같이 남루한 옷차림에 등에는 아이들을 업고 있다. 대부분 티벳인 들이다. 식당주인에게 매몰차게 내몰리며 외지인인 우리에게 몰려온다.

 

 

장씨는 이곳 티벳에 관광객이 오기 시작한 이후로 지프 차량으로 티벳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티벳에 제대로 된 정기버스가 거의 없고 도로도 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이런 짚차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장씨는 다른 운전사처럼 본인의 차가 힘이 좋다느니 자기가 몇 년 운전의 베테랑이니 하는 소리를 안 한다. 그냥 목이 기다란 학처럼 굽은 허리로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이렇게 차를 모는 장사는 처음에는 잘 되었지만 지금은 별로라고 한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장씨 같은 티벳 토박이들의 낡은 차는 점점 외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기는 우리가 돈이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차에 몸을 맡기고 삼, 사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차량영업도 외지에서 온 젊은 중국인들이 신형 짚차로 다니는 통에 관광객들이 그쪽으로 많이 간다는 것이다.

 

메마른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아들 이야기를 할 때였다. 이제 중학교를 막 졸업했다고 하면서 수첩에서 그의 아들 사진을 꺼내 보인다. 돈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낡은 수첩에서 사진을 공들여 꺼내는 그의 얼굴은 너무도 자랑스럽고 밝았다. 까까머리의 중학생소년이 거기 있었다. 집에서는 티벳어를 쓰고 학교에서는 중국어를 쓴다고 하니 일제시대의 우리와 같은 모습이다. 학교에서 제법 공부도 잘한다는 칭찬도 빼놓지를 않는다. 아들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냐는 우리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 것은 중국관리였다.

 

이곳에서 중국관리의 힘은 대단하다. 변방이기도 하지만 이십 여만의 군대가 주둔해 있고 모든 관청이 다 내려와 있으니 말만 자치주이지 모든 것은 중국관리에 의해서 결정되고 움직인다. 우리의 일제시대 시골마을에서 주재소 순경의 힘이 얼마나 컷는가를 생각하면 중국관리란 여기에선 권력과 돈의 상징이다. 하지만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중국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이지만 중국관리가 꿈이라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50 년전에 이곳 티벳인 백만을 죽이고 수천 곳의 사원을 태운 중국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차마 목을 넘지는 못했다. 꾸부정한 그의 뒷모습, 그리고 낡을 대로 낡은 그의 잠바 깃을 보면서 차마 그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 라사와 북경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었다. 밤새 험하디 험한 고갯길을 짚차를 몰면서 라사에 오던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그 고갯길 대신에 이제는 매일 수백명의 관광객이 기차로 온다. 한참 건설 중인 기차 길을 바라보던 장씨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철로가 개통되고 중국인들이 몰려 올 거라고 걱정하던 장씨는 지금도 그 고물 짚차를 몰고 있을까. 그 아들은 중국관리가 되었을까.

 

다시 라사를 방문하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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