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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4)바이오에피소드

[수필]13.죽어본 사람

by 바이오스토리 2014. 2. 7.

인하대 생명화공학부 김은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L사장에게서 무슨 연락이 없었냐고 하는 것이다. 벌써 며칠째 핸드폰도 꺼진 상태이고 그의 부인 핸드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회사에는 본인이 연락 할 터 이니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는 전화만 왔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우리가 알던 평상시의 그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L 사장은 키가 180을 훌쩍 넘는 거구이다. 그의 체구만큼이나 큰 목소리와 커다란 이목구비의 얼굴을 보노라면 모래사장에 우뚝 선 씨름선수를 연상케 한다. 지방에서 태어나서 그곳의 대학을 거치고 그곳의 공장에 입사하여 처음부터 뼈가 굵은 현장 통이다. 입사하여 계속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공장장까지 지내고 그런 경우로는 드물게 사장으로 발탁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일에 대한 끝없는 정열 덕분이었다.

남자들만 모이는 자리는 말할 것 없고, 어쩌다 부부들이 동석하는 자리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일로서 시작하여 일로서 끝난다. 어쩌다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싶으면 그것도 결국은 회사일로 이어지기 위한 전초전 일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알게 되었고 어떤 경우는 우리가 먼저 회사에 관하여 물어보기도 하였다.

 

덩치가 있는 만큼 술도 많이, 자주 마셨다. 하기는 그를 처음 만날 때의 모습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동네 슈퍼 앞에서 맥주 캔 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고 술상무 라는 역할을 스스로 도맡아서 하고는 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모습이 여러 가지 형태이지만, 말하자면 그는 몸으로 직접 뛰는 형태이다.

 

그런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일주일을 넘긴 후였다. 한손에는 우리에게 나누어 주겠다며 강원도 속초에서 산 젓갈을 들고 호프집으로 들어섰다. 궁금해 하던 우리에게 그는 지난 일주일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L사장은 중국출장길에 올랐다. 한 달에 서너 번 은 다녀 올만큼 요즘 중국에서의 거래가 늘어났다. 어제 마신 술 덕분인지 약간 불편한 속을 달래러 비행기내에서 맥주를 마셨지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늘 있는 정도의 불편한 속이려니 했지만 조금씩 더해지더니 이제는 따끔 따끔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으려 했지만 여기는 중국이었다. 통역을 구하는 것도 번거로웠지만 심심찮게 보도되는 중국병원에서의 의료사고소식은 병원 행을 망설이게 했다. 다행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어서 여행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늘 출장을 다니는 남편을 위해서 아내가 챙겨주는 구급약봉지를 찾았다. 전에는 여러 종류가 있던 것 같더니 이번에는 진통제라고는 몇 알만이 보였다. 머리가 아플 때 아내가 한 알씩 먹던 하얀 알약이었다. 그 하얀 진통제는 머리 아픈 것이 금방 가라앉아서 지금처럼 많이 아플 때에는 아주 긴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정작 필요할 때 몇 알만을 넣다니.. 툴툴거리며 두 알을 털어놓고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도 중국 측 회사와의 미팅은 계속 되었다. 저녁에는 여지없이 술자리가 이어졌고 술기운으로 통증이 가셨지만 밤이 되면 다시 쓰리기 시작했다. 삼사일간 속이 계속 아팠고 그때마다 진통제를 털어 넣었다. 열 알정도 되던 진통제가 떨어졌다. 진통제를 충분히 넣지 않은 부인의 부주의함을 탓하였지만 호텔에도 진통제는 없었다. 계속 복용을 하였지만 복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속은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일을 중간에 마치고 급히 귀국 항공기편을 찾아야 했다. 공항 화장실에서 뱉어낸 침에는 붉은 색이 보였다. 비행기 입구에서 혹시 탑승객 내에 의사가 있는가를 물었다. 혹시 더 아프면 어떨까하는 마음에서 물어보았지만 정작 승무원들은 이 사람을 태워야하는가를 고민 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고는 기내로 들어갔다. 우선 서울로 가야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L 사장은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늘 같이 소주를 해서 잘 알고 지내던 의사이자 친구의 병원에 도착하여 서둘러 진료 대에 누웠다. 급히 내시경을 마친 의사의 표정이 굳어있다. 그리고는 큰 병원으로 급히 가라는 것이었다. 늘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이지만 정색한 모습에 순간 무엇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잘못된 듯하다. 하지만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의사는 위암말기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위암말기.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위암말기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만을 한참 생각했다.

그의 시야를 어지럽게 맴도는 것은 검붉은 색의 핏빛덩어리가 위의 절반을 덮은 위내시경 사진이었다. 위암말기. 갑자기 울음이 터진 것은 정작 그가 아니라 옆에 있던 부인이었다. 중국에서부터 진통제를 더 찾더니 급기야 아프다며 일찍 와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다니..

 

두 사람은 그날 짐을 꾸려 강원도로 향했다. 수술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었고 부부는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채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강원도로 가는 차안에서 제일가고 싶었던 곳과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았다. 그래서 L사장은 제일가고 싶었던 설악산 백담사 계곡으로 차를 몰았고 가는 도중에 시장에 들러 청바지를 사 입었다. 평상시 청바지가 늘 입고 싶었는데 회사업무상 입지를 못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우선 회사에 연락을 해야 했다. 그만두어야겠다는 L 사장의 말에 회장은 펄쩍 뛰었다. 그만큼 회장의 신임은 두터웠다. 이제 회사는 L사장 취임이후로 급성장하고 있었고 그것을 L사장의 성실함 덕 인 것을 회장도 알고 있었다. 사정을 듣고 난 후에도 회장의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술 받고 나면 회복이 될 수도 있다, 공석이어도 좋으니 사표를 내지마라, 끈을 놓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회장은 회사의 운영을 걱정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염려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신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내가 오랜 직장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크게 잘못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감사함과 동시에 지금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일이 왜 나에게 생긴 것일까 하는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겨우 사는 것처럼 살기 시작했고 그동안 바닥부터 고생하면서 이제 겨우 터를 잡고 살려고 했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젊은 나를 데려가려 하는 것일까.. 내가 왜.. 왜 나만을.. 누군가를 향한 원망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 싫어졌다.

L사장은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떼 내어 세상과의 단절을 하듯 연락을 끊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차안에서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들들은 오히려 담담했다. 위암말기라는 것이 무었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갑작스런 아버지 앞에 닥쳐진 죽음이라는 단어에 넋을 잃은 것인가. 말이 없어진 아들들에게 하는 말들이 갑자기 유언처럼 들리는 것 같아서 흐려진 눈시울을 감추려고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거기 동해안의 파도가 있었다. 출장을 다닐 때나 여행을 갈 때 매번 보아오던 파도였다. 늘 거기 있었기에 그것이 파도라는 것조차도 그리고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파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달라보였다. 갑자기 파도 한 알 한 알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물방울과 검푸른 바다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검은 물방울이 처음 보는 빛처럼 새로웠다. 이렇게 파도가 생겼구나, 이렇게 파도가 하얀 빛으로 부서지는구나, 이렇게 파도 소리가 바람소리와 같구나, 이렇게 모래에 쓸리는 파도소리는 처음 다가 올 때와 밀려 갈 때가 다르구나. 왜 이런 것들이 예전에는 안 보였을까.

 

L 사장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파도의 모습에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살고 싶었다. 이렇게 눈부신 파도를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저기 바다, 그리고 먼 산이 눈에 박히는 듯 다가왔다. 좀 더 머물게 해주세요. 여기 아름다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었다.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스런 모습의 그들이 눈에 와서 박힌다. 저들과 더 지내고 싶다.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웃고 싶다. L 사장은 살고 싶다는 생각에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서울을 떠나 올 때부터 꺼 놓았던 휴대폰을 켰다.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살고 싶었다. 종합병원에 진료를 의뢰하기 위해서 전에 위암말기 판정을 내린 친구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의사가 아주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가 꺼져있어서 무척이나 걱정했었다고 한다. 의사가 말하는 투로 봐서는 L사장이 동해안 절벽으로 차를 몰지나 않았었나 걱정했다는 투이다.

 

이상한 것은 조직검사 결과 음성, 즉 암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본인의 눈에 보였던 검붉은 핏덩이, 그리고 거의 구멍이 난 형태의 위의 모습은 여지없는 위암 말기여서 그렇게 이야기 했던 것인데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수십 년 의료 경험상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넓은 범위로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러운, 그리고 의심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L 사장, 혹시 중국서 술 먹고 속 쓰려서 배 아플 때 아스피린 먹었어?...”

아스피린? , 있던 열 알 다 먹고 없어서 더 못 먹었는데....”

열 알씩이나? ”

의사가 말이 없다.

, 뭐 잘못 되었어 라고 물어보려는 그 순간, 그의 귀에 의사의 고함이 날라든다.

 

이런 정신없는 사람같으니... 배 아플때 아스피린 먹으면 피가 멈추지 않아서 위출혈이 생기는 것도 몰라?. 그것도 열 알씩이나!.. 더 없었으니 천만다행이야.....더 먹었으면 갔지 갔어... 여하간 자살 않고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돌아와서 약 먹어!!

 

L 사장의 이야기에 우리들은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그를 죽어본 사람이라고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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