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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짦은 글]: 솔잎의 공중부양

by 바이오스토리 2023. 11. 19.

마술쇼에서  사람이  누운 채로  붕 뜨는 것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덩달아 떠오른다하지만  그건 마술 속 다른 사람 이야기다. 내가원하지 안 했는데도,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의 기분은, 좋기는커녕,   '이젠 죽었구나' 라는 극심한 공포다. 그런  공중부양의 공포를 맛본 건  분당 중앙공원 돌계단에서다.

 

가을의 절정에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걷는 길에 낙엽들이 많다. 평지 낙엽은 낭만이다. 밟고 걸었다. 내리막길 낙엽은  지뢰다. 내리막길을 피해 돌계단을 택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에 발을 내려놓는 부분은  낙엽이 전혀 없었다. 다만  계단 뒷 쪽, 앞발이 안 닿는 곳에는 솔잎이 조금 쌓여있었다. 이 정도면 위험은 없어 보였다. 돌계단의 돌 부분에 오른발 앞쪽을 디디었다. 착 달라붙는 운동화 바닥 느낌이  '안전해'라는 신호를 뇌로 보냈다. 이어 왼발을 내디디고 오른발 뒤꿈치를 계단에 내려놓는 순간, 오른발 뒤꿈치에 닿은 솔잎이 오른발을 미끄럼 태웠다. 왼발은  공중에 떠 있고, 오른발마저 미끄러지자 두 발이 공중에 떴다. 계단 경사와 평행으로 온몸이 순간적으로 공중부양 된 셈이다.

 

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몇 장면이  지나갔다. 뒤통수가 깨져 혼절하는 장면, 튀어나온 돌이 허리를 찍어 휠체어를 타는 상상, 땅을 짚은 손이 그대로 부러지는 스냅 샷이었다세 장면이 지나고 정작 충격이 온  곳은  엉치뼈였다. 세 개의 상상을 피해 엉덩이부터 돌계단의 튀어나온 부분과 부딪혔다. 이게 얼만큼의 충격인지를 헤아려 보기도 전, 계단 아래에 있던 몇 사람의 부인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어르신, 괜찮아요?’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안전지침서에서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움직이지 말고 어느 부분이 통증이 있는가를 확인하라. , 허리 등 척추신경이 지나가는 부분에 부상이 있으면 119를 불러 부목을 대어 신경이 다치지 않도록 한다등등, 하지만 안전지침서가 떠 오르기 전에 들려온 여자들의 어르신, 괜챦아요?’ 소리에 어찌된 영문인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엉치의 통증보다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가 만져봤지만 멀쩡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길거리에서 어느 여인이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괜찮으냐고 물어봤지만, 여인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앉아서 울고 있더란다. 많이 다치었는지 알았지만, 본인은 멀쩡했다. 창피해서 울었다 한다. 정신적 창피가 물리적 통증보다 더 아프다.

 

동네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골절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중년의 여자 의사가 말한다. ‘어르신,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생기면 벌떡 일어나지 마세요다시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를 그제야 찾았다. ‘어르신그 단어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공원 계단 옆에 있던 부인들이나 정형외과 의사나 모두 나와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극존칭의 어르신이라니. 병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들여다본다. 주름진 얼굴의 하회탈이 보인다. 혼자 중얼거린다. ‘어르신이 맞네. 다음부터는 솔잎 밟지 마세요 어르신. 공중부양됩니다

 

(2023.11.019)

 

(돌계단에 솔잎이 있으면 절대 밟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공중부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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