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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수필]11.이웃사촌에의 꿈

by 바이오스토리 2013. 12. 18.

*****************이웃사촌에의 꿈*******************

 

덜커덩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멈추는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든다. 문을 무심코 나가려는 순간 두고 온 휴대폰이 생각나서 다시 15층을 누르려 하자 어느새 들어왔는지 젊은 부인이 15층을 누른다. 15층을 누르는 수고를 던 나는 다시 벽에 기댄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처음 볼 수밖에 없다. 여기는 복도식 아파트라 한 층에 열다섯 세대가 있다. 이곳에 이사 온지가 얼마 안 되기도 하지만 설사 오래되었다 해도 한 층 열 다섯 세대의 사람을 알기는 힘들다. 갑자기 조용해진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두 사람 만이 있는 경우는 공연히 거북스럽다.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그나마 짜낸 아이디어가 벽에 거울을 붙인 것이리라.

 

엊그제 등산을 오래했는지 그마나 검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게다가 출근복장이 아닌 산보복장의 반바지의 나는 그리 단정해보이지를 않는다. 그래도 웃음을 잊지 말아야지, 혼자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어본다. 흘낏 거울에 비친 젊은 부인이 얼른 고개를 돌린다.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눈이 부딪히자 당황스럽게 시선을 피한다. 아직 남의 눈을 끌만한 무엇이 나에게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 아직 눈길을 받을 만하지. 오늘은 기분 좋은 토요일 오전이구나.

 

다시 올라가는 숫자판을 보고 있는 그 여자의 표정이 심각하다. 나에게 호감을 가진 그런 얼굴이 전혀 아니다. 무슨 일인가 의문을 채 가지기 전에 15층의 문이 열린다. 앞서있던 여자가 나가야 하는데 멈칫한다. 나가려던 나도 잠시 멈칫하지만 그래도 레이디 퍼스트 아닌가. 잠시 기다리자 여자가 나간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나는 1502. 우측으로 돌아서야한다. 먼저나간 여자도 우측으로 돌아선다. 앞선 여자가 흘깃 뒤를 돌아보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1505호 앞에서 여자는 멈추어 선다. 그리고 기다린다. 문을 열지 않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리고는 주위를 돌아본다. 여차하면 소리라도 지르겠다는 모습이다. 일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도 않는 남자, 심지어는 본인이 내릴 층도 안 누르고 있다가 거울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범죄형 남자를 그 여자는 본 것이다. 더구나 같은 층에서 자기의 뒤를 쫒아오는 거무튀튀한 얼굴의 남자를 보면서 나름대로 침착하게 문을 열지 않고 대비한 것이다. 제기랄.

 

그 여자를 지나가는 나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흡사 오물바가지를 뒤집어 쓴 심정이다. 서둘러 1502, 내 집에서 문을 세게 두들긴다, 그리고는 들으라고 크게 소리친다.

나야 나, 문 열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자 비로소 그 여자는 문을 연다.

오늘은 아주 재수 없는 토요일 이다.

 

사실 재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은 오늘이 첫 번째가 아니다.

이곳 아파트에 이사 온지 이틀째 되던 날도 오늘처럼 토요일 오전이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이곳 아파트는 평일 같다. 아이들은 모두 학원으로 갔는지 아침시간이 지나면 아파트는 평일의 오전처럼 한가하다. 근처 산을 다녀온 뒤라 등산화, 등산모 그리고 선글래스를 쓴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일층 수위실에 있는 수위에게 아는 체를 하려는 데 지금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는지 애기 엄마인 듯한 여자가 앞서서 엘리베이터를 들어간다. 닫히려는 문을 겨우 잡고 들어선다. 마치 뒤를 따라 들어간 형태가 되었다. 여자가 순간 멈칫한다. 그리고는 층을 누르지 않는다. 나를 경계하는 기세가 역력하다. 여차하면 그냥 내릴 태세이다. 얼굴이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활활 타오른다. 내가 먼저 15층을 누른다. 그제서야 여자는 3층을 누른다. 어색한 내 얼굴을 숨기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본다. 확확 달아오르는 얼굴이 썬글래스에 가려서 보이지를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거울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검은 바지, 검은 자켓. 거울 속에는 썬글래스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범죄형의 수배자가 마주 보고 있었다. 여자는 3층에서 서둘러 내리더니 뒤를 연신 돌아본다. 내가 만약 따라서 내린다면 그냥 1층으로 도망가려는 듯 계단 옆에 서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간다. 그나마 내릴 곳도 3층이 아니고 4층이나 5층인 모양이다. 얼마 전 TV에 보도된 엘리베이터내의 납치미수사건의 후폭풍을 내가 고스란히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토요일 오전은 일진이 아주 안 좋은 시간인 모양이다.

 

내가 정말 범죄형인가. 썬글래스를 벗고 거울을 본다. 꺼칠한 수염에 햇볕에 탄 얼굴이 귀공자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벽에 붙은 수배자의 모습은 아닐 터 인데..

 

문득 이런 해프닝이 나에게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닌, 오래 전부터 전력이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의정부는 학창시절 자주 들르던 도시였다. 학교에서 멀지도 않았지만 그곳은 화려함과 흥청거림이 있는 도시였다. 물론 미군부대가 주둔하는 곳이어서 술집들이 많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관이 서울보다 많이 저렴했다. 더구나 서울과 같은 시기에 영화개봉을 하니 영화보고 술 마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같은 동아리 멤버가 의정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주말을 그곳에서 살다시피 보내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의정부를 가려면 꼭 통과해야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검문소이다. 모든 버스는 일단 정차를 한다. 하얀 철모를 쓴 헌병이 올라선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라는 딱딱 끊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버스통로를 좌우를 살피며 버스 뒤까지 다가온다. 그 뒤를 소리 없이 따라 오르는 사람은 사복경찰이다. 좌우를 살피며 뒤까지 온 그들은 창문을 내다보고 있는 나에게 여지없이 신분증을 요구한다. 순간 버스안의 시선이 쏠린다. 마치 수배자인 도둑놈이나 북쪽에서 내려온 간첩을 보는 눈들이다. 같이 가던 친구들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거린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학생증을 보여준다. 이제는 굳이 학군단이라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학군단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짧게 머리를 깎고 다녀야했다. 짧은 머리를 한 청년이 사복을 입고 뒷좌석에 앉아 있으니 탈영한 군인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헌병이 오는 것은 그래도 이해했다. 문제는 경찰이 혼자 검문할 때에도 나한테로 직접 온다는 것이다. 덕분에 친구들은 범죄형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나는 경찰이 검문하는 이유는 재소자들이 머리가 짧기 때문에 탈주범인가해서 검문하는 것이지 내가 범죄형의 얼굴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여하튼 검문하는 순간만은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 다음부터는 검문소에 버스가 도착하면 아예 학생증을 빼들고 흔들었다, 이리 오라고, 여기 범죄형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듯이.

 

이 아파트를 떠나야 할 것 인지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 옆집들에게 떡을 돌리자고 주장하는 나와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안사람과 실랑이를 벌였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전세이고 머무는 기간이 짧은 이곳 아파트의 특성상 이웃 사람과 지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또한 복도식이라 한 층에 많은 가구가 살고 있어서 친해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니 떡을 돌리는 일은 하나마나 일거라고 이야기한다.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다. 직장을 잡고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곳은 오층의 작은 평수 아파트단지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층 아파트의 중간층에 살다보니 며칠 되지 않아서 집사람들끼리는 서로 알게 되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층에 마주보는 두 집이 살고 있다는 것이 가깝게 하는 이유이다. 또한 오층을 매일 오르내리다보니 열 가구 모두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도 옆집에 익숙해졌다. 여름이면 입구의 철문 들을 활짝 열어놓은 덕분에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둘째 아이는 수시로 앞집까지 한 달음에 기어가곤 했다. 운동장인 셈이다. 계단을 조금씩 오르내리던 아이는 계단에 익숙해지자 이제는 오층 전체를 쓸고 기어 다니는 개구쟁이가 되었고 어느 층에서 아이 소리가 나는지를 듣고서 그 집에서 뭔가를 먹고 있구나 생각하고는 방치하다시피 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열가구가 늘 모이지는 않았지만 일곱 여덟 가구는 자주 놀러갔다. 근처 공원에 소풍을 다니기도 하였고 앞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장에도 놀러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앞집 아저씨가 술 마시고 음주운전에 걸린 사건이며 공장이 불경기 탓에 어렵다는 이야기며 집사람끼리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듣고는 했다. 그곳을 떠난 지가 이십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 두 집은 아직도 집사람들끼리는 연락을 하고 살고 있다.

 

두 번째로 살던 아파트는 완공 후 처음 입주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집을 짓고 한꺼번에 집에 들어오는 경우는 쉽게 이웃을 만들 수 있다.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들어온 사람들은 일종의 동료의식도 있게 되고 아파트를 상대로 무언가를 항의하고 요구할 경우라도 생기는 경우는 단합도 잘되어서 금방 친해지기가 쉽다. 새로 단장한 아파트는 12층의 고층이고 두 집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였다. 한 두 집이 떡을 돌리자 서로서로 인사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급기야는 어느 집에서 함께 저녁을 하자는 이야기가 돌더니 열 집 정도가 모였다. 부동산을 한다는 정씨는 이런 모임에 익숙한지 어시장에서 생선을 한 상자 사와서 회를 떠서 소주를 곁들이게 되었다. 고향이 바닷가 근처인지라 생선손질 하는 것 하며 회를 뜨는 손길이 익숙했다. 한 달에 한 두번 남정네들과 함께 모이는 것과 달리 안사람들은 수시로 모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쿵쿵 벽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상을 물리고 늦은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에 아랫집에서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안사람은 날 밀다시피 쫓아내고는 아래층으로 향한다. 이런 원시적이지만 효율적인 통신수단은 온 층에 퍼져서 오전 시간 수다를 떠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동네 모임은 언제나 안사람들 차지이다. 남자들이야 직장이나 사업 등으로 시간이 일정치가 않으니 주로 집사람 중심으로 모임이 이루어지고 남자들은 곁다리로 참석하는 형태가 된다. 대개 날짜를 정해놓고 등산을 가거나 근교를 드라이브 삼아 몰려다니는 모습이다. 전번 아파트에 살던 사람과의 모임은 우리가 잠시 이곳으로 나와 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점점 모임이 오래되면서 술 모임에서 등산으로, 다시 역사탐방으로 수준을 높이려고는 하지만 남자들은 소주잔에, 여자들은 수다에 집착하게 되는 현상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일 년에 한 번은 외국으로 여행도 가다보니 누군가는 그곳 역사공부를 해야 하고 그걸 설명해주어야 하는 목적을 찾게 된다. 아마도 이런 추세라면 그중의 한 두 사람이 고아원이라도 찾아가자고 하면 또 그리로 몰려갈 소지도 다분히 있는 사람 중심의 모임이 되고 있다. 때로는 다른 일정에도 불구하고 모임과 술자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같은 또래의 부부들이 모여서 같은 관심사를, 그래봐야 아이들의 공부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두 번의 재수 없는 토요일 오전을 보내고 나서 새로 이사 온 세 번째 아파트의 이웃집에 떡을 돌려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억지를 부려서 떡을 담은 접시를 들고 옆집을 두들기지만 밤늦은 시간에도 사람의 인기척이 없다. 아침에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저녁 늦게까지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가 늦게 학원에서 오는가보다. 그나마 열린 한 집은 아이 하나 덜렁 있다가 떡을 보더니 쓱 받아들고는 들어가 버린다. 옆집서 왔다고 전하라는 말은 닫히는 문과 함께 잘려버렸다. 졸지에 떡집에서 배달하는 중늙은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이런 참담한 패배를 집사람은 이미 예측한 듯 가타부타 말이 없다.

 

바로 옆집이 며칠간 쿵쿵거리며 내부공사를 하더니 배가 불룩한 아이엄마가 남자아이를 앞세우고 복도를 다니는 것이 보인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나이또래답게 시끄럽게 복도를 지나다닌다. 그나마 사람이 좀 사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이 아버지와는 한 두번 얼굴을 본 덕분에 인사를 하고 지낼 정도가 되었다.

 
이제 이 아파트의 계약도 끝나가고 이곳에 더 있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비록 떡 돌리기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저 꼬마 사내아이 집과는 말이 통할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시끌시끌 떠들고 다니는 아이가 있으니 말을 하기도 편하겠지.

  이 아파트에서 이웃사촌에의 꿈은 나만이 꾸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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