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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5)개인 발간수필모음

[수필] 10.뮤초그라시아

by 바이오스토리 2013. 12. 6.

뮤초그라시아

 

뮤쵸 그라시아라는 말은 대단히 감사합니다에 해당하는 스페인어이다. 또한 이 단어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스페인 단어이기도 하다. 스페인어 지역을 다닐 일이 있을 때 꼭 한번은 써보리라 하고 입으로 중얼거린 말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은 그 사건이 있은 후였다.

 

머무는 호텔에서 택시로 십분 거리에 있다는 스페인 역사관을 찾은 것은 바쁘게 돌아가던 일정이 끝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아시아 및 미국, 유럽 등에 대해서는 보고 들은 것이 조금은 있는 것 같지만 스페인이란 나라는 투우밖에 떠오르지 않는 무식함에 머무르고 있었다. 별로 내켜하지 않는 동료를 가까스로 달래며 도착한 곳은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허름했다.

 

큰 길 뒤편의 조그마한 출입구는 그나마 닫혀있다. 분명히 안내책자에는 일요일 오전 10시로 되어있건만 해석이 안 되는 팻말만이 덜렁 걸려있을 뿐이다. 그리고 보니 주위에는 관광객이라고는 별로 보이지를 않는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는 동네 뒷골목에 해당되는 분위기이다. 그런 생각이 미쳐서 주위를 둘러보니, 매주 열리는 벼룩시장 같은 장터가 서 있고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있는 동네 근처의 공원이 바로 곁에 있었다.

 

돌아서려는 우리에게 웬 여자 아이 둘이 무어라며 다가선다. 열대여섯 정도나 되었을까. 조금은 시대에 지난 듯한 옷차림에 누런 색의 푸석푸석한 얼굴들이 오지에서 만난 아이들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이곳 원주민의 모습이 남아있는 아이들이 손가락을 펴면서 일레븐이라고 이야기한다. 표정으로 보니 이곳 개관시간이 11시 임을 알려주려는 몸짓이다. 어수룩한 동양인들이 닫혀있는 건물 앞에서 헤매고 있는 보습을 보니 그 모습이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런 얼굴을 보니 스페인 계통의 유럽사람 들과 남미의 원주민 피와 섞이면서 메스티조라 불리는 혼혈 인디언 인 것 같았다. 같은 색깔의 동양인들에게 호감이 생긴 것일까.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들이 아는 단어는 아마도 일레븐이 전부 인가보다.

 

아침 시간이기는 하지만 약간은 따가운 햇볕을 피해서 우리는 나무 아래에 서있었다. 그 아이들이 무어라며 내 동료의 등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동료의 등 뒤에 무언가가 묻어있다. 새똥처럼 생긴 것이 방금 묻은 듯하다. 오늘은 역사관도 못보고 아침부터 새똥 세례이구만. 그러고 보니 둘러맨 배낭과 내 잠바 위에도 떨어져 있다. 서 있던 곳이 나무밑 이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푸르른 나무 사이로 새들은 어디론가 가버린 듯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휴지를 찾지만 조그만 배낭에는 여행책자와 메모지만이 들어있다. 맞은 편 상점에 가 보지만 휴지대신 과일만이 늘어 서있다. 그 아이들은 휴지를 꺼내는 것 같더니 건네주지는 않는다. 그리고는 급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휴지하나도 아까운 나라인심인가 아쉬워 하지만 더 이상의 친절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조금은 한가한 동네인 까닭인지 휴지나 물이 있을만한 곳이 안 보인다. 저쪽 골목길에서 아까 그 아이들이 무언가를 들고 서둘러 오고 있다. 어디선가 물병을 들고 왔다. 휴지로 닦기보다는 물로 닦는 것이 낫다는 그들의 몸짓이다. 잠시나마 그들의 인색함에 투덜거렸던 것이 미안하다. 고마움을 표현할 한 단어가 떠올랐다.

 

뮤초 그라시아

 

그러자 아이들은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다 따듯한 가슴을 가지고 있나보나. 우리가 다만 그것에 다가가기가 쉽지가 않고 의심이 있어서 이지 그것을 넘어선다면 비록 말이 안 통하는 그들이지만 내 조카들 같고 재잘거리는 동네 아이들 같기도 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이런 것을 접한다면 마음이 좀 더 넓어지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손짓으로 한 군데를 가리킨다. 저 공원 건너편에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가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그 곳으로 향한다. 공중변소가 거의 없는 이곳 형편에 맥도널드는 지금의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주는 아주 적당한 곳이다. 미국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제일 많이 들르는 곳이 아마도 맥도널드가 아닌가 할 만큼 그 곳은 편리한 곳이다. 무엇을 꼭 사야 되지도 않고 잠시 앉아서 쉴 수도 있는 곳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휴지와 물이 필요한 때에 그곳은 마치 목마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시골길의 우물 같기도 하다.

 

들어선 그곳은 여느 맥도널드와 다르지 않았다. 몇 명의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들어서는 우리를 그들은 약간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는 관광객들이 다니는 코스가 아닌 까닭이다. 그러니까 나와 우리 일행은 관광코스에서 이탈한 일종의 배낭여행객이 되어 버린 셈이다. 창문에 비친 우리 모습은 그들과는 완연히 달랐다. 우선 얼굴이 전혀 달랐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동료는 전형적인 관광객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선글래스와 어깨에 둘러멘 조그만 가방, 그리고 손에 든 카메라. ‘우리는 관광객입니다를 광고하고 다니는 형태였다. 동료는 커피 한잔을 하며 기다리겠다고 밖에 있었고 나는 화장실로 들어섰다. 조그만 화장실의 구석에 있는 세면대에 조그만 배낭과 잠바를 벗어놓고 물로 씻기 시작했다. 다행이 새똥은 쉽게 물로 닦여나갔다. 마치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검녹색의 새똥이 어쩌다 차의 유리창에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조금 더 묽은 것이어서 지역마다 새똥도 형태가 다른 모습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세면대에 한 두 사람이 줄을 서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눈치이더니, 한 노란 잠바의 중년의 남자가 새똥이 묻었냐는 시늉을 하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리고는 손 좀 같이 씻자면서 옆으로 다가선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잠바를 씻고 겨우 일을 끝냈다고 하는 한숨을 돌리는 그 순간 가방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면대 바로 옆에 놓았던 것인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누구에겐가 심한 모욕을 당했을 때와 같은 노여움이 몸에 차올랐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당한 셈이다. 후다닥 화장실을 뛰어나와서는 놀라서 쳐다보는 동료를 뒤로 하고 맥도널드 문을 밀치고 나섰다. 저기 그 노란 잠바가 길을 막 건너고 있다. 100 미터 육상선수처럼 달려가서는 다짜고짜 그를 돌려세웠다. 그리고는 몸을 더듬었다. 순간 놀란 노란 잠바는 순간 무어라 하면서 손을 내 흔든다. ‘왜 그러냐보다는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 의미의 손짓이다. 가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한 허탈감에 비로소 그 노란 잠바를 쳐다보았다. 뚱뚱한 몸매에 허름한 잠바 차림의 그는 길에서 흔히 만나는 중년의 남자였다. 얼굴에 조그만 칼 자욱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동네 복덕방에서 화투를 치고 있는 동네 아저씨 모습이다. 영화에 나오는 험상궂은 불량배의 모습도 아니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제비족 같은 모습도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면 반기는 아이들이 있고 가끔은 투덜거리는 아내가 있음직한 남편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다짜고짜 주머니를 뒤져보는 나의 손에 퉁퉁한 몸의 촉감이 전해졌고 단단한 근육질이 아닌 그 촉감은 당황하면서도 화가 나 있는 나를 조금은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전혀 생소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근처의 사람 인 듯하고 살아가기에 조금은 힘든 모습의 그들이기도 하다. 후즐그레한 노란 잠바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다.

 

소매치기의 허름한 맵시와 중년의 모습에 허탈해진 나를 동료가 잡아끌었다. 뛰어나가는 나를 좇아온 그는 이미 사태의 전모를 파악한 듯 나를 안심시킨다. 배낭에 안내책자와 메모장밖에 없었다고. 아마도 배낭은 다른 패거리가 가지고 갔고 저 사람은 바람잡이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있었던 두 사람이 한 패거리 인 셈이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니 그들은 두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 역사관 앞에서 만난 두 여자아이도 한 팀이니 모두다 네 명인 셈이다. 비로소 우리들이 네 명의 팀으로 이루어진 조직 소매치기에게 당했음을 알았다. 남아 있는 새똥을 자세히 보니 이것은 문방구에서 파는 수채물감이다. 새똥치고는 색깔도 균일하고 냄새도 다른 것임을 알고는 관광안내서에서 나오는 주의사항이 생각났다. 관광객에게 접근해서 케첩등을 몰래 뿌리고는 닦아주는 척하면서 소지품을 훔쳐가는 형태의 수법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알고도 이렇게 뻔히 당하다니..

 

노여움과 허탈감에 다시 맥도널드로 돌아오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물어본다. 스페인어로 무어무어라 하지만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외지에서 온 동양인들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이 이 곳 사람으로서 자랑스럽지 못한 모양인 듯한 표정들이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또 웬 사람들인가 하는 내 눈 앞에 다시 그 노란 잠바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누구에게 끌려 온 형국이다.

 

그 노란 잠바를 끌고 온 사람은 놀랍게도 아주머니였다. 등치가 노란 잠바보다 더 큰, 조금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 중년의 여인은 다시 보니 길 건너 공원에서 뭔가를 팔고 있던 사람이었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내가 노란 잠바를 붙잡고 몸을 뒤지고 놓아주는 상황을 보고는 다시 그를 끌고 온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무어라 하자 노란 잠바는 지갑을 꺼내서 뒤집어 보인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표시이다. 이제 비로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조금은 당황스러워하고 반은 두려워하는 그는 약간 통통한 얼굴에 군데군데 곰보 자국이 있다. 내가 영어로 설명을 한다. 동료가 두 명이, 아니 네 명이 짜고 가방을 훔쳐갔다고 손짓발짓으로 설명을 해보지만 말이 통하지를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까 잡혀온 그 길로 노란 잠바가 서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뒤를 연신 돌아보면서 가는 모습이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디에서인가 아까의 그 여자아이들을 만나리라. 다시 그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 나이라면 혹시 그 노란 잠바의 딸들이 아닐까. 설마 자기 딸들을 소매치기에 같이 참여시킬까.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면 전 가족이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얼굴이 백색인 유럽계통의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남미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그들의 삶은 이곳 대도시에서는 빈민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구걸행위를 하는 어린 아이들의 대부분이 이들이기도 하다.

 

그곳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점점 흥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동료와 다시 한번 소지품을 점검했다. 노란 잠바와 여자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선가 모여서 우리처럼 안도를 하고 있지 않을까. 붙잡혀서 경찰서로 끌려갈 뻔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기대에 차서 배낭을 열어 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관광안내 책자만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실망을 할까. 그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동료와 나는 실소를 했다.

 

나는 안심은 했지만 마음이 석연치가 않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내 손을 잡아끌며 구걸하는 아이들은 얼굴이 누르스럼한 혼혈 인디언 아이들. 그들이 매달리는 것은 주로 흰 피부의 유럽인들. 스페인어 권을 다니면서 이런 광경에 매번 부딪히지만 나의 감정은 정리가 잘 안 된다. 황색의 원주민과 이들을 정복한 백색의 유럽인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침입자인가. 이런 생각은 아마도 여행자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나의 생각에 동료가 제동을 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행자의 티를 내지 말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 혼혈 원주민들을 조심하자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가 않다. 노란 잠바의 허름한 모습과 무엇보다도 여자 아이들의 부석부석한 얼굴들이 계속 어른거린다.

 

뮤초 그리시아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스페인어를 힘들게 발음했을 때 그 여자아이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가방에 십불짜리라도 있었더라면 못된 놈들이라고 욕이라도 실컷 해줄걸... 그렇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치는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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