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이다. 지하철역 가는 길에는 늘어선 포장마차와 출출해진 속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늘 북적인다. 비까지 부슬거리는그 날의 지하철 입구는 어느 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로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북적거림의 일상은 전철 입구에 있는 매표소 부근부터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황급히 움직이는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찰구를 밀고 아래 승강구의 계단을 내려서자 건너편 철길에는 열차가 출발하지 않고 서 있다. 그 안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바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내려선 바로 정면의 열차 아래에는 제복 차림 사람들 사이로 들것이 열차 밑에 놓여 있고 무언가가 그 위에 얹어져 있음을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삐죽이 솟아있는 두 발을 보는 순간 그것이 사람의 주검이고 바로 눈앞에 있는 열차가 역내로 들어올 때 사람이 뛰어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눈앞에 있는 누워 있는 꾀죄죄한 운동화 위로 K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우리가 K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여름 무렵이었다. 내가 ‘우리’라고 한 것은 그가 속한 연구 분야가 내가 속한 연구 분야와는 다르고 우리 분야 학술 단체에서 계획한 중국 대학 방문에 그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의 신청자여서 행사를 준비하던 우리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보통 외국 대학 방문은 그 분야 사람들만 참여하고 그것도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형태여서 친목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공항에서 처음 만난 K 연구원은 우리 일행들과 인사를했다. 우리 일행은 이런 학술 모임에 자주 참여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 일행들이 모난 사람이 별로 없고 같이 어울리기를 좋아해서인지 K 연구원도 처음 만남의 부담을 덜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말주변이 별로 없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나누는 데 오래 걸리던 나와도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우리 쪽분야 지식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우리 분야지식이 많지 않아서 이번 모임을 통해서 사람도 알고 내용도 배울 겸해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K 박사가 욕심도 많다고 하면서 그의 용기를 칭찬도 해주고 또 부러워하기도 했다.
외국 대학에서의 세미나 내내 K 연구원은 발표 내용에 많은 관심을보였다. 그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하루 종일 계속되는 세미나에도 전혀 피로한 기색도 없이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중에 그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하였다. 원래부터 술을 잘하지 못하고 얼굴이 금방 붉어지기 때문이라 했다. 저녁에 이은 맥주 자리는 만담과 웃음소리가 넘친다. 같은 분야 사람들이란 점도 있지만 이런 식의 모임을 가진지도 십 년이 넘어가고 있다.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때로는 심한 농담으로 상대방을 놀려주기도 하였다. 배타적이 될 수도 있는 모임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좋은 심성의 사람들 덕분에 말주변이 별로 없던 K 박사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즐거워하고 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네 번의 술자리에 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미나와 연이은 다른 도시의 방문 때도 그는 우리 그룹과 같이 있었다. 하지만 2~3일의 여정 동안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붙임성이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처음 만난 사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새로운 풍경 속에 파묻히는 걸 즐겼다.
그 학회 이후 K를 다시 만난 것은 매년 실시하는 우리 단체 망년회 장소에서였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을 보면 아마도 처음 만남 이후로 우리단체에 새로이 가입을 했거나 아니면 그 전에도 가입을 했는데 우리와같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망년회에 참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K는 벽 근처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반갑다고 간단한 인사만 한 후 나는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몇 사람이 함께 다니던 여름 해외 학회 행사와는 달리 망년회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한다. 따라서 테이블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앉는 것이 보통이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K는 건너편 테이블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K가 내가 있던 테이블로 온 건 망년회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별로 말주변이 없던 그와 역시 마찬가지이던 나는 그저 간단한 안부만을 묻고 있었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끊기면서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자리는 파장 분위기로 한두 사람씩 일어나서 나간다. 아는 친구가 나를 부르며 귀가를 재촉한다.
데면데면한 자리를 떠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나는 일어섰다. K가 손을 내밀었다. 입구를 나오면서 그를 돌아보았디. 그는 여전히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내가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정초였으니 연말 망년회 모임 후 3주가 지났을 때였다. 저녁 뉴스는 어느 연구원의 자살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가 업적 문제로 힘들어했고 본인의 차에서 연구실에서 사용하던 독극물을 마셨다고 했다. 이번 말고 이미 한 번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가 K라는 걸 몰랐다.
오늘도 매일같이 다니는 지하철 그곳 승강장에 내려선다. 들것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K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2005, B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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