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토리 Bio Social) 얼음 속 에스키모인이 남긴 말

제목 : 얼음 속 에스키모인이 남긴 말

키워드: 스페인 독감, 요한 V 훌틴 박사

내용:

 

얼음속 에스키모인 덕분에 인플루엔자 정체가 밝혀졌다

(CCL)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2월. 중립국 스페인에서는 독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몸살, 두통과 함께 고열증상이 나타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심함 감기정도로만 생각했다. 두 달 후, 스페인 도시 곳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스페인에서는 알폰소 13세까지 포함해 무려 800만 명이 독감에 걸리고, 게다가 수도마드리드 시민들 3분의 1이상이 독감증세를 보여 정부 청사의 업무가 마비되고 대중교통인 전차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상황은 심각했고 전염속도는 아주 빨랐다.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국 병영에서도 독감환자가 속출했고, 빠른 속도로 군인들이 숨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윽고 1918년 8월에 이르러서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일부지역까지 전염됐고 대부분이 오한, 근육통, 열 등의 몸살 증상과 더불어 헛소리를 하다가 호흡곤란으로 혼수상태나 사망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몇 시간 내지 길면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시체가 쌓여만 갔고 그 후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5천만 명 이상이 감기와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집계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치면 최대 사망자 수가 1억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 중 1918년 7월부터 9월까지 독감과 폐렴으로 사망한 미 해군 수는 4,136명이었다.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대재앙에 빠뜨린 이 질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동시다발적이고 강력하다는 것밖에 알려진 게 없는 스페인 독감은 수천 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학·과학적 기술력의 부재 때문이었다. 독감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을 분리 혹은 보존해 연구를 했었어야 했는데 이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정확한 원인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던 것. 하여 의학자, 생물학자, 병리학자 등 그 누구도 이 병원체의 존재를 몰랐고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할 전자현미경도 없었고 심지어 바이러스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던 때였다. 다만 추측으로나마 흑사병을 일으킨 세균과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한 병리학자가 마침내 비밀의 실마리를 풀었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질 때 이곳 알래스카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는데, 알래스카 수어드반도의 동토지역 ‘텔러루더(현재의 브레비그)’ 마을에서는 무려 성인 51명 중에서 46명이 사망했다. 이때 미국의 병리학자인 요한 V 훌틴 박사는 알래스카 공동무덤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채취하던 중 차디찬 얼음 속에 묻혀 있는 시체를 발견했고, 그 중 한 구가 썩지 않은 걸 발견한다. 여인의 시신이 냉동 상태에서도 썩지 않았기에 그녀의 폐에 붙어 있는 바이러스 조직이 원 상태 그대로, 즉 유전자 배열이 그대로 유지된 채로 박사에게 발견되었다. 박사는 혼자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가 40년이 지나고서야 바이러스 전문가에게 알려준다. 당시 그는 일흔이 넘은 노신사였으나 직접 알래스카를 다시 방문하는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십 년 만에 에스키모 여인과 조우하게 된 박사는 여인의 폐 조직을 다시 떼어내 독감 바이러스 전문가에게 넘겼고, 마침내 87년 동안 꽁꽁 얼어있던 바이러스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독감 바이러스 전문가(토벤 버거 박사)는 오랜 작업 끝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후 피터 팔레스 박사팀이 이를 토대로 유전자를 다시 만들어 미국 질병센터로 보냈다. 질병센터 내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유전자를 인간의 신장세포에 넣어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수십 년 전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게 됐고, 스페인 독감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