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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6)사이언스올(창의재단) 바이오에세이

아삭 아삭 배, 껍질째 먹어야 더 좋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0. 22.

 

아삭 아삭 배, 껍질째 먹어야 더 좋아.

전라남도 나주시 

 

현대인의 생활은 서로 바쁘고 멀리 산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다 모이는 일이 드문데, 나 어릴 적엔 설날 추석 등의 명절은 흩어진 식구들이 한 장소에 모여 맛있는 음식 먹으며 그동안 각자의 삶을 얘기하고 들어주는 행복함으로 북적 북적대는 날이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이 설렘과 즐거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또한 명절에는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을 먹을 수도 있었는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어린 내가 양손으로 들어도 묵직함을 느낄 수 있었던 배였다. 우리나라에서 삼한시대 때부터 배가 재배 되었다는 기록을 확인 할 수 있는데, 본격적인 배 재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였다. 일본 개량 배 품종은 우리나라 재래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여서 전국 각지에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장십랑, 금촌추, 만삼길, 신고, 행수, 신수, 이십세기 등등 다양한 품종이 있지만, 이 중에 우리에게 친숙한 신고(신고 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배 재배 면적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니 과연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남 나주의 신고 배는 나주의 특산물로 유명한 팝가수 마이클잭슨이 먹고 그 맛에 반했다는 유명한 일화마저 있다. 우리나라 신고배가 서양 배보다 월등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말엔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마치 작은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는 서양 배는 낯선 모습만큼이나 맛 또한 낯설다. 유학시절 당시 룸메이트가 권하던 한 조각의 서양 배를 먹고 든 생각은 과연 우리의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선조 초에는 우리나라의 토종 배인 나주 배는 과일로 먹기보단 약재나 요리에 첨가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주 신고배는 사실 일본의 개량 품종이기도하다. 일제강점기에 나주에서의 배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아지고 품질 좋은 나주 신고배는 이때부터 널리 알려졌고 현재는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아졌을까? 그건 바로 나주가 지리적으로 배농사를 짓는 최적의 환경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어서다. 나주지역은 좋은 품종의 배가 생산되는 천연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과실나무가 그렇듯이 그냥 땅에 심어만 놨다고 해서 모든 나무에 열매가 맺는 것은 아니다. 더욱 배는 재배시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기온에 따라 배의 모양과 맛에 큰 차이가 나는 엄청 까다로운 과실이다. 품질이 좋은 배를 생산하기 위해선 최적의 평균 기온은 11 16정도 되어야하고, 더욱이 생육기인 410월에는 평균 기온은 20정도, 89월의 평균기온은 22정도를 맞춰야만 품종이 좋은 우수한 배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이 말은 1일 평균 기온이 10이상 유지되는 날짜가 215240일 정도를 유지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이 좋은 품질의 배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나주는 연평균기온은 14.1, 생육기간인 410월 동안은 평균기온이 20.6로 배가 자라는 최적의 기상 여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배 재배에 필요한 연강수량도 알맞아 다른 지역에서 재배되는 배보다 더 좋은 품종을 생산 해 낼 수 있다고 한다. 땅이 좋아야 식물이 잘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배 재배를 위해 바람직한 토양은 배수가 잘되고, 재배지의 하층토까지 통기성이 좋아 공기와 수분을 많이 함유한 상태여야만 한다. 나주지역의 토양은 양토, 사양토, 점질양토로 토질에 유기질이 많고 배수가 양호하며 대부분의 재배지가 경사도 15이하의 완만한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어 배 재배의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나주 배는 양호한 기상여건과 양질의 토양이 갖춘 배 재배의 최적의 자연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어 육질이 연하고 부드럽고 과육의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은 최고 품종의 배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의 겉모습을 보면 사과처럼 식욕을 자극시키는 붉은색도 아니요 심지어 표면에선 꺼칠함마저 느껴져 과연 이게 맛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한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그리고 팔뚝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달콤한 과즙에 배를 맛본 이들은 그 맛에 단박 반하고 만다. 요즘 제철과일이란 말이 따로 없을 정도로 대형마트나 시장에 가면 철이 아니어도 아무 때나 원하는 과일을 먹을 수 있다지만, 배는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과 설날에 먹어야 제 맛이 아닌가 싶다. 옛말에 치아가 건강하면 오복 중 하나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 놀랍게도 배에 함유되어 있는 석세포(Stone cell)와 솔비톨은 충치예방은 물론 치아를 튼튼하게 유지 할 수 있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석세포는 우리가 배를 먹었을 때 입 안에서 오돌토돌 작은 알갱이가 굴러다니는 듯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배 안에 들어 있는 석세포이다. 이 석세포가 입 안과 치아 표면에 굴러다니면서 프라그를 제거 해 주는 기능을 발휘 입안을 깨끗하게 해 준다. 어릴 적 양치하는 것을 유난히 귀찮아했던 나에게 식후에 어머니가 주셨던 배 한쪽엔 배도 먹고 귀찮은 양치질도 좀 있다하고라는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배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성분 중, 루테올린은 감기, 기침, 기관지염, 천식을 예방하고 증상을 완화하는데 효능이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일 년에 감기 한 두 번 정도는 앓는다. 독한 감기에 걸리면 기침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민간요법에 기침에 관한 민간요법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그 민간요법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이 배다. 간혹 입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잃거나 심하게는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례가 있어 민간요법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배를 이용한 기침을 억제하는 것에는 의과학적인 지혜가 담겨 있다. 기침은 우리 몸이 기도로 들어오는 각종 유해물질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기동에 먼지나 세균 등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경계태세를 갖추고 강한 기침으로 이를 몸 밖으로 내보는 것이다. 기침감기에 걸려 본 사람들이 제일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잦은 기침으로 인해 목이 붓거나 편도선이 자극이 되어 나중에는 물 한 모금 삼키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된다. 우리가 기침으로 병원을 가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바로 물을 많이 마시라인데, 그 이유는 목을 촉촉하게 유지하면 기침을 하더라도 목에 통증이 덜하기 때문이다. 옛 선조들은 목이 칼칼하거나 목마름, 또는 기침을 많이 할 때 배를 깍아서 먹었다고 한다. 배의 특별한 성분인 루테올린은 잦은 기침으로 상처 난 기관지 점막이 수축하는 것을 막아주며, 체내의 염증예방, 면역체계 조절 해 줌으로써 기침을 완화시켜주고 몸을 더욱 건강하게 한다. 최근에는 배의 기능성 성분의 생리활성 효과가 현대과학으로 검증되었다하여 신약 개발의 소재로도 적극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추운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에 잦아지는 가족들의 기침소리가 방문으로 새어 나올 때면 얼굴만큼 큰 신고배의 속을 도려내어 꿀과 도라지를 담뿍 넣어 푹 달여 주시던 그 옛날 어머니의 과학적 지혜가 듬뿍 담긴 배 즙이 생각나는 날이다. 나 역시 식구들에게 옛날 어머니처럼 신고배를 달여 주어야겠다.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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