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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역특산물속 바이오이야기

(6) 공주 밤이 아닌 정안 밤이랍니다. (정안 밤)

by 바이오스토리 2022. 7. 11.

6. 공주 밤이 아닌 정안 밤이랍니다.

 

밤나무는 조선시대부터 국가에서 중히 여기는 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밤나무를 심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부터 약 2000년전 낙랑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몇 알의 밤이 발견되었고, 1700년 전인 진나라 때 편찬된 [삼국지]의 마한(馬韓)이란 대목에서는 '마한에서 굵기가 배만한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약 1550년 전 송나라 때의 후한서(後漢書)라는 책에서도 마한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길쌈을 하고 큰 밤을 생산하고 있는데 크기가 배만하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당나라 위징(魏徵)의 수서(隨書)나 이연수(李延壽)의 북사(北史)라는 책에도 백제에는 큰 밤이 생산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한국 밤이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밤나무를 보호해온 것 같다. 한국에서는 쌀 없이는 지낼 수 있어도 장작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온돌의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그 때문에 임목의 남벌이 행해졌다. 그 결과 다른 수종의 큰 나무는 거의 없어진 반면에 밤나무는 아주 좋은 대경목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밤나무를 귀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밤은 대추, 잣과 함께 관혼상제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일정도로 귀중하게 여긴 증거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전으로서 밤을 보호권장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고려시대 睿宗(예종)13(1118) 明宗(명종)18년에 뽕나무, 옻나무, 닥나무, 참나무, 배나무, 대추나무등과 함께 토지의 성질에 따라 식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초의 법전인 경국대전(1485)에 의하면 관리에게 植栽管理를 시키고 이에 소홀히 한 사람은 처벌하였다. 또한 옻나무, 뽕나무 등과 함께 밤나무를 벌채한 자도 처벌하였다. 이조 22대 영조대왕은 산업을 진흥시킨 왕으로 栗木敬査官에게 밤 산지를 조사시켰던 일도 있다. 그리고 경국대전에 이어 성종23(1492)에 속대전이 편찬되었는데, 이를 보면 밤생산 농민들은 국가에 제공하는 부역을 제외시켜 주었는데, 잡역이 면제된 곳들은 경기도 과천, 고양, 강화, 양주, 남양, 부평 등지로서 옛날부터 밤 산지로 유명하였다.

또한 밤나무 목재가 귀중하였으므로 이를 생산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나라에서 밤나무 보호림(栗木封山)을 지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성종 11(1480)1531) 및 경상도읍지(순조, 18011835)에 따르면 경상남도 창원에 일본밤이 도입되어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림경제][통속산림총서], [임원십육지]에서는 밤이 구황작물 뿐만 아니라 제사에도 쓰이는 과실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밤나무는 제사에 쓰이는 위폐나 제사기구를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 이처럼 밤은 제례의식에 쓰일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여러 고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밤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먹거리였으며, 궁중에서도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밤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고 옛날부터 보호하여 생산량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밤을 구황식량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을 보면 '해충이 벼를 해졌으니 밤,도토리를 채취해 흉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나와 있으며, '흉년 때 밤과 상수리를 주워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산과 등을 불태우는 일을 금해야 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밤은 구황작물으로도 귀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이 토종밤에 큰 시련이 닥쳤다. 밤나무 혹벌이라는 해충이 크게 번져 수많은 토종 밤나무들이 말라 죽었다.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다. 196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밤나무 식재에 적극 나섰다. 일본에서 가져온 품종이 주로 심어졌으며, 토종 밤나무를 개량하여 선발한 품종도 있었다.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이 주로 심어지면서 밤 주산지의 변화가 생겼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도 양주, 용인, 가평, 수원 등이 밤 주산지였는데, 1960년대 이후 경남 하동과 진주, 전남 광양과 순천 등 일본의 자연환경과 비슷한 남부지역이 주산지로 떠올랐다.

 

정안 산자락에는 밤 군락지가 모여있다. 토양이 물이 잘빠지고 낙엽도 많은 유리한 밤 재배지역이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은 차령산맥 안에 있는데, 서북부 쪽은 갈수록 산이 높고 남쪽으로는 산지가 낮다. 이 비탈의 산자락에 밤나무가 자란다. 땅은 모래가 많아 물 빠짐이 좋다. 사질토라도 메말라 있지는 않다. 밤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시커멓게 거름기가 돈다.

정안에 밤나무가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1960년대 말이다. 품종은 일본에서 도입한 것이었다. 그중에 단택[단자와, 丹澤]이 인기를 끌었다. 단맛이 좋은 품종이다. 특히 구우면 속껍질이 잘 벗겨져 군밤용으로 많이 팔려나갔다. 그 외 은기[긴요세, 銀寄], 축파[쯔구바, 筑坡] 등이 심어졌다. 이후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선발된 품종도 심어졌다. 그 대표적인 품종이 옥광과 대보이다.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국내 밤 생산량이 급증을 하였다. 일본 수출이 활발하여 밤은 큰 돈벌이가 되었다. 국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 수출하였다. 1990년대 들면서 일본 수출이 주춤해졌으나 대신에 국내 수요가 크게 늘었다. 정안에서 재배하는 여러 품종 중에 우리 입맛에 맞는 품종을 선발하여 집중 재배하고 품질 관리를 해나갔다. 브랜드를 공주 밤으로 할 것인지 논란이 있었지만 공주 전체 밤 생산량 중 40%에 달하므로 정안 밤을 고집하기로 했다. 현재 정안 밤은 국내 밤 브랜드 중에 최상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한국의 중국계통의 밤은 집산지가 평양이었으므로 평양밤(약밤)이라 부르기도 했다. 중국계통의 밤은 현존지가 평양을 중심으로 50km 이내(평안남도 성천군, 강돋군, 순천군, 중화군, 강서군 등이 주산지)에 한정되었고, 중국 산동성 및 하북성에 생산되는 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가진 것으로 밝혀져,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 믿고 있다.

강서군 지방의 밤은 옛날 咸從의 해변(군면의 병합이전은 함종군, 병합 후에는 강서군 풍정면 또는 장안면 부근에 해당하는 지역)에 중국의 난파선이 닿았는데 그 배안에는 밤이 있었으며 그 밤은 작지만 감미가 많아 본국의 것과 비교하여 매우 맛이 좋았으므로 귀중하게 여겨 이것을 파종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점차 부근에 전해졌으며 또한 야생동물에 의해 산간지방에 전해졌다고 한다.

 

자료출처

한국의 임산물- 밤의 기원 http://forestproduct.at.or.kr/contents/fpko311200/view.action

팔도식후경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3&contents_id=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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