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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비는 이제 가도 돼, 아빠가 왔쟎아‘
4살 손자 준현의 말이다. 제대로 배신 때리는 소리다. 오후 내내 같이 놀아주느라 기진맥진할 때 나온 소리라 그 충격이 더하다. ‘그래, 손자 놈에게 할아버지란 존재는 제 엄마 아빠 없을 때 대신 놀아주는 대타지. 나만 모르고 있던거네’. 아니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귀로 확인하고 나니 더 맥이 빠지는 거다.
손자 재롱을 보는 맛은 꿀이다. 수백 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꿀이지만 그 꿀이 떨어지면 어떨까. 다 큰 아들딸들이 떠가난 빈 둥지를 망연자실 쳐다보는 부모보다 더 할까 덜 할까. 꿀의 맛으로 비교해보자. 아들딸은 꿀맛이 혀에 아리다. 직접 부딪히고 속 썩이고 마음 졸였으니 온몸에 멍으로 기억들이 남는다. 반면 손주들은 한 단계 건너서다. 한결 여유롭다. 게다가 이미 자식들을 한번 겪어본 터다. 이런 손주들의 꿀맛은 뒤끝이 없을까. 아니다. 뒤끝이 더 아릴 것이다. 골이 깊을수록 그늘도 짙다고 했다. 손주들은 천연꿀맛, 그 중에서도 최상품인데 그 꿀이 떨어지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약 떨어진 아편환자처럼 속이 타들어갈까.
이런 떨떠름한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린다.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놈들이지 무슨 떡을 바라고 봐주는 건가. 제대로 자라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 아닌가. 맞다, 나도 안다. 큰 탈 없이 자라서 학교 다니고 성인 되는 것만 해도 엎드려 절 할 입장이란 것도 안다. 그래도 배신 때리는 손자 말 한마디는 새벽의 찬 공기처럼 정신 차리게 한다. 앞날을 미리 알고 배신당해도 견딜 수 있도록 단단히 먹고 있으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옛말에도 있었다. ‘애본 공은 없다’고. 이 말을 생각나게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P선생은 지방에서 아들부부와 같이 지내고 있다. 몇 십 년을 살던 서울 집을 정리하고 지방의 아들부부 근처아파트로 이사할지도 모른다 했다. 그 지방에는 아들 직장과 아들 처갓집이 있다. 주위에선 의견이 반반이었다.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에 가느냐, 아들은 장가가면 다른 나라 국민으로 생각해라, 연금으로 충분히 살터인데 차라리 실버타운에 가라 등 아들부부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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