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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체공생균/장내세균 시리즈(잡지연재)

(2)누렁코를 없애는 유익균을 찾아라

by 바이오스토리 2021. 4. 24.

사진:샤터콕

 

현기영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는 누렁코 이야기가 나온다.

 

누렁코 두 가닥이 지렁이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와 마침내 윗입술 가에 가 닿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르면 바로 후루룩 소리와 함께 급히 콧구멍 속으로 도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후루룩,그야말로 우동 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린이의 노란 콧물, ‘코가 누렇다는 말은 콧 속 어딘가가 곪아있다는 증거다. 축농증은 성인의 10%가 걸릴 만큼 흔한 질병으로 코에 염증(비염)이 심해져 코 주위의 뼛속 빈 곳인 부비동에 옮겨가 고름이 찬다. 의학 교과서에서 축농증의 첫 번째 증상으로 끈끈한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소설 속 우동 가락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주기적으로 감기에 걸리는데, 이들 중 일부는 부비동까지 감기 바이러스가 퍼져 급성 세균성 부비동염에 걸릴 수도 있다. 바이러스 부비동염은 자연 치유될 수 있지만, 세균성일 경우 방치하면 다른 심각한 합병증이나 축농증으로 발전한다.

 

소설 속 작가가 성인이 된 후 그 지독한 코흘리개를 다시 만난다. 누렁코 주인은 자라서 대기업 이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에게서 어릴 적 누렁코의 흔적을 발견한다. 소매 끝으로 누렁코를 훔치던 그 어릴 적 버릇이 어른이 된 뒤에도 남아있는 거다.

 

말하자면 그 코흘리개 친구는 어린 시절 내내 누렁코를 달고 다닌 만성 축농증환자인 셈이다. 1950년대 후반, 지독하게 못 살던 시절이니 제대로 치료도 못 했을 것이다.

 

축농증은 어떤 이는 자연 치유되는데 어떤 이는 낫지 않는 만성질환으로 발전한다. 코는 비염, 축농증, 천식, 폐렴, 중이염으로 진행되는 길목이 된다. 이곳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연구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는 게 따로 있다. 바로 콧속 미생물이다.

 

 

부비동 상피세포에 섬모로 달라붙어 있는 유익균 사진출처_리서치게이트

 

2020년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셀리포트> 학술지에서 축농증 환자의 콧속 미생물이 정상인의 콧속 미생물과 완연하게 다름을 보여주었다. 미생물 균이 일반인처럼 정상화된다면 유해균이 일으키는 비염, 축농증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 코에 있던 유익균(락토바실러스)을 배양해 다시 콧속에 집어넣었을 때 전혀 문제없이 콧속에 정착했다. 이제 콧속 유해균을 평정하고 유익균을 늘림으로써 콧속 균을 정상화하는 게 가능하다.
그 속을 들여다보자.

 

축농증 환자 콧속 균은 정상인과 다르다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 연구진은 만성 비염, 만성 축농증 환자 225명과 정상인 100명의 콧속(상기도)에 있는 30여 종의 미생물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정상인에게서 다량 검출된 특정 균이 만성 축농증 환자에게는 90%가량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이 균이 부족해서 다른 유해균들이 염증을 일으켜 만성 축농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균을 콧속에 집어넣으면 축농증이 치료되지 않을까?

 

이 균은 산소가 거의 없는 곳, 예를 들어 김치나 사람의 몸속 대장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진 유산균의 일종인 락토바실러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기가 통하는 콧속에서 버젓이 사는 것일까? 연구진이 락토바실러스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다른 유산균에는 거의 없는 산소 독성중화 유전자(카탈라제)’가 발견됐다. 산소가 없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락토바실러스가 공기가 통하는 콧속에 살면서 환경에 적응하여 산소를 없애는 유전자가 생성된 것이다.

 

사진=Shutterstock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콧속 균이 머리카락 같은 섬모를 연결해서 벽에 붙어살고 있었다. 마치 암벽등반가가 암벽에 앵커를 치고 로프를 걸어 매달려있는 원리와 같다. 코와 연결된 부비동은 눈, , , 치아 사이 4개의 작은 공간으로 음성의 공명, 외부 공기에 대한 가습, 두개골 보호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비동은 정체된 공간이 아니다. 빈 공간 벽을 코팅하고 있는 상피세포에서 하루 1.5점액을 분비한다. 흐르는 점액이 공기 중의 이물질을 잡아 밖으로 내보낸다. 액체 공기필터인 셈이다. 부비동에 사는 미생물이 점액에 쓸려나가지 않기 위해 코 세포벽에 섬모를 연결해서 붙어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연구진이 락토바실러스의 앵커 기능에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다른 연구자들이 축농증 치료 목적으로 김치유산균이나대장유산균을 분리하여 부비동에 주입해봤으나 효과는 없었다. 부비동은 대장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콧속 부비동에 살고 있던 락토바실러스 만이 점액이 흐르는 부비동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주입한 유익균은 콧속 세계를 평정했다

 

축농증 유해균은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해모필루스 인플루엔자(Haemophilus influenzae)균이 대표적이다. 건강한 사람의 콧속에서는 이놈들이 유익균(락토바실러스)에 기를 못 펴고 찌그러져 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이들끼리 싸움을 붙였고, 결과는 명확했다. 유익균은 유해균 성장을 방해했다. 유익균이 우세하면 콧속 세포들은 염증반응이 없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유해균이 우세하면 콧속 세포들이 비상 신호(인터루킨)를 울리고 이 비상 신호에 따라 면역이 출동한다. 다른 곳에 있던 공격용 면역세포(마크로파지, 수지상세포 등)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몰려온 면역세포들과 유해균간의 전투로 부비동은 아수라장이 되고 혈관이 커져서 붉게 부어오른다. 급성부비동염이 생긴 거다. 유익균과 유해균의 우위에 따라 염증발생여부가 결정된다. 유해균 중에는 바이러스도 있다. 10일 정도 전투가 벌어지는데, 바이러스성이면 10일 이내 가라앉고, 세균성이면 10일이 지나도 지속할 수 있다. 결국 콧속 염증은 유해 바이러스나 세균이 우세해서 생긴다. 이걸 억누르는 유익균이 있다면 설사 유해균이 들어와도 면역-염증반응이 안 생긴다.

 

연구진이 골라낸 유익균(락토바실러스)을 성인 20명을 대상으로 콧속에 주입한 후 2주 뒤, 주입한 유익균의 73%가 콧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연구자들이 김치에서 분리한 균을 주입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치다. 더구나 균 주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첫 관문인 동굴 속에서 살아 버티기가 성공한 것이다. 콧속 동굴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유익균의 수를 불려 다시 집어넣은 것이 성공 요인이다. 한마디로 토종의 힘이다.

 

유익균 대체기술 핵심은 토종균이다

 

이번 연구 핵심은 유해균을 누를 수 있는 유익균을 외부에서 공급하는 기술로 원하는 균으로 바꾼다는 ‘Cell Replacement’ 방법이다. 이론은 간단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다. 하나의 미생물을 다루는 것이 아닌 수많은 미생물이 얽혀있는 생태계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익균은 잽으로 면역 훈력을 하고, 유해균은 펀치로 면역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 출처_위키미디어

 

예를 들면 연못에 물고기 한 마리를 입수 시켜 원래 살던 물고기들을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못 속 물고기처럼 미생물도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서로 돕고(공생), 싸우고(항생), 한쪽만 이익(기생, 편리공생)을 보기도 한다. 우리 몸은 늘 미생물과 접촉한다. 외부에 노출된 피부, , 대장, 허파 등에 미생물이 붙어산다. 이 미생물이 때로는 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신 외부 침입자를 막아주고 몸의 면역세포들과 잽을 주고받으며 면역을 훈련한다. 이 인체 미생물을 과학이 현미경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더 나아가 병을 일으키는 유해균을 억누르는 유익균을 공급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항생제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차라면 유익균은 잔디에 물을 공급하는 스프링클러다. 튼튼한 면역과 함께 정상적인 인체 미생물생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건강의 핵심이다. 이제 누렁코를 유익균으로 없애보자.

 


이 글의 저자 김은기 교수는 한국생물공학회장 및 과학문화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 사업단장을 역임하고 국제 SCI급 논문 150편 및 4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저서로는 2019 미래의 최고직업, 바이오가 정답이다, 톡톡 바이오 노크 : 바이오 세상을 바꾸다, 2020 피부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바이오 화장품10권의 바이오 분야 책을 출간했다. 저자의 더 다양한 정보는 바이오융합연구소 www.biocnc.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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