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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7)자연모방기술-생활속 바이오

생활 속 바이오(10) 흡혈 종결자, 거머리의 필살무기- 심장마비를 살린다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14.

 

(1)손가락 접합수술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다급한 목소리만큼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 전화만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오히려 가라앉아있다. ‘아이는 괜찮고?’. 목소리의 한쪽 끝에 무사함을 빌어본다.

 

 

다행히 아이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응급실 앞에 앉아있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 단지인지라 주위가 어수선했다. 아파트 입구도 마찬가지이고 우편함도 막 가져온 듯, 금속을 덮은 비닐이 그대로 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우편함을 지지대 삼아 잡았는데 그 모서리에 손가락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떨어진 살점을 다시붙이는 수술을 막 끝냈다고 한다. 울음을 터트릴 줄 알았던 아이는 조용하다. 한참 뛰어놀 나이이지만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한 줄 아는지 말이 없다.

 

 

떨어진 살점을 찾아서 동네 성형외과로 달려갔고 다시 대학 병원 성형외과에서 접합수술을 받을 때까지 떨어진 살점은 식염수 세척 후 수술 전까지 잘 보존되었다. 수술 성공의 관건이라 했다, 발 빠른 지인의 대처 덕분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했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성형외과 입원실을 둘러본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모두 손가락 사고의 환자들이 눈에 뜨인다. 세 손가락을 잘린 청년이 손을 높이 쳐들고 있다. 저 정도에 비하면 천만다행이지 라는 동지의식이 생긴다. 사람은 저 편한 대로 생각을 하나보다.

 

 

지인이 위로 차 들렸다. 얼마 전까지 근무한 곳이라며 안심을 시킨다. 덕분에 특사대접을 받는 것 같아 주위에 미안하다. 미세수술을 했다고 한다. 손가락 등이 절단된 경우 절단면에서 뼈, 동맥, 신경 그리고 정맥을 연결하는 수술이라 한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으니 동맥을 현미경을 보면서 꿰맨다고 한다. 바늘 끝만한 동맥을 바늘과 실로 연결하는 일이다. 나처럼 손이 맵지 않은 사람은 밤새도 하지 못할 일이리라. 동맥에 이어 신경을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정맥을 잇는다고 했다. 새삼 그의 손을 본다. 저 손으로 수백 번의 미세접합수술을 해 냈다고 하니 참으로 보배 같은 손이다.

 

 

이제 접합수술을 끝냈으니 1주 정도 입원 후 경과를 보면 된다고 했다. 1 주간에 붙인 곳에서 혈관이 연결되어 조직이 살아나면 손가락이 다시 예전처럼 된다고 한다. 지금 붙인 살점이 내일이면 다시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혈관이 잘 연결되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번 안심을 시킨다.

 

 

오늘 아이는 기분이 좋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선물을 한 아름 사가지고 왔다. 게다가 피가 흐르는 데도 울음 한번 터트리지 않았다고 한 마디씩 한 까닭이다. 로봇트 장난감에, 먹을 것에, 훈장같은 붕대가 있는 그리 아프지 않은 손에,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있다. 그런데 왠지 불길하다. 사고 이후부터 모든 게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찾기 힘든 살점을 찾아 동네병원으로, 그리고 즉시 수술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잘 진행된 수술, 그리고 살아나기 시작한 선홍빛 피부. 불길한 예감은 밤에 현실화되었다.

 

 

지인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루에도 두 번씩 의사들이 다녀갔다. 관심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특혜성 인 것 같아 불편하던 그때 그 의사가 왔다. 어린 용모가 신참인가 보다. 아이의 손가락을 이리 저리 보던 그 의사는 접합이 잘 된 것 같네요 하면서 접합부를 눌러본다. 순간 접합부에 검은 피가 스며 나온다. 불길하다. 상처는 건드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다음날부터 선홍빛 피부가 조금씩 검어지고 있었다. 아침 회진을 돌던 과장이 이상하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밤새 무슨 일 있었나요. 혹 아이가 상처를 건드렸나요. 행여나 자면서 건드릴까봐 침대에 붕대로 고정시킨 손을 보면서 대답한다. '그게 아니고 어느 의사가....' 고자질이 아닌 고자질을 하자 당황한 과장이 나간다.

 

 

결국 아이 손에 산소마스크가 씌어졌다. 연결되었던 혈관을 건드리면서 혈관들이 끊어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혈관이라도 살리기 위한 방편 이라한다. 하지만 한번 검어진 접합부위는 점점 선홍빛을 잃어갔다. 색이 검어짐에 따라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타 들어갔다. 아이도 달라진 상황을 알았는지 조용하다. 손끝은 이제 완전히 검은 색이 되어버렸다. 접합부는 조금 붉은 빛이 도는 가 했지만 전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다. 결국 손가락의 일부만이 달라붙게 되었다.

 

 

지인이 다시 찾아왔다. 직접적인 말은 안하지만 실수가 있었음을 아는 말투이다. 하지만 그도 최선을 다해주었음을 상기시키고 오히려 그를 위로한다. 이정도면 다행인거야. 그래도 손모양은 제대로 나왔잖아. 사실 손가락이 약간 짧지만 큰 티는 나지 않는다. 정 마음에 안들면 엉덩이 살로 붙이면 된다고 한다. 그래, 지내보다가 맘에 안 들면 살 가져다 붙이지 뭐. 스스로 위로를 한다. 약간 짧아진 손가락으로 악기를 제대로 치기는 쉽지 않을 터 인데.  입원실을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제대로 손가락이 붙었더라면, 약간의 실수가 있었더라도 피가 엉겨 붙지 않고 잘 흘렀더라면, 그래서 붙어있는 살에 피가 흐르고 조직이 살아났더라면.

(그림; 수지접합수술; 정교한 수술로 가장 손이 많이가서 힘드는 '3D' 수술로 통한다)

  

 

 

 

 

(2)거머리의 기억

 

 

아쉬움이 남아있으면 자꾸 그곳으로 향한다. 접합부위의 살점에 피가 제대로 흘렀더라면. 현재 의료기술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거머리를 이용한 성형수술의 기사를 접했다. 실소가 나온다. 아니 그 징그러운 거머리를 상처에 어찌 한다고?.. 거머리의 흡혈기능을 모방하여 성형수술후의 접합부분에 적용한다고?..

 

 

거머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처음부터 곱지가 않았다. 아니, 이것은 내 탓이 아니고 내가 자라오면서 들어오던, 보아오던 것이 모든 것이 거머리를 몹쓸 벌레로 만들었다. 거머리는 남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로, 혹은 남의 등을 처먹는 상종못할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것도 삶의 바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등쳐먹는 아주 못된 인간을 지칭 할때 주로 쓰인다.

 

 

이렇게 인간에 비유하여 거머리를 비하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것은 사람들이지 벌레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거머리 자체도 종종 비난을 받게 된다. 어느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거머리는 그 중의 하나이다. 인도 시골의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만든 것은 거적만 덜렁 걸쳐있기 떄문이 아니라 일을 보고 있는 사이 나무에서 떨어져 몸에 달라붙는 새까만 거머리 떄문 이라는 것이다. 소설 혹은 영화뿐만 아니라 TV에서도 낙인이 찍힌다. 밀림의 흐르는 개울에서 민물게를 발견하고 구워먹을 욕심으로 집었다가 게속에 가득 찬 거머리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은 이제 완전히 몹쓸 벌레로 거머리를 낙인 찍게한다.

 

 

거머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런 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전이다.

 

채 열살이 안 되던 초등학생인 나에게 농촌의 논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했다. 땡볕의 벼는 날카로운 잎사귀로 여린 다리를 할퀴었고 물을 퍼 대는 짚으로 된 펌프간은 무덥기만 했다. 그곳을 도망치듯 도랑으로 가면 뱀풀이라 부르는 갈대가 무성한 수로는 짙은 초록이어서 별로 다가가고 싶지가 않다. 더구나 그곳에 물결이라도 일게 되면 구석구석에서 실처럼 몰려나오는 거머리들. 소름과 함께 도망치기 바쁘다. 게다가 늘 논도랑에 꽈리를 틀고 있는 거무틱틱한 뱀들.

 

 

나는 땡볕 여름의 논이 싫다. 봄이 되면 모내기에 꼬마들도 한 몫 해야 한다. 처음엔 단순히 논 바깥에서 모를 안으로 던져주는 비교적 순탄한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면 이제는 흙탕물이 가득한 논으로 들어가서 흩어져있는 모를 모아야한다. 잠깐 있어도 총총거리며 나는 불안하다. 장단지에 새까맣게 붙어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해야한다. 거머리이다. 한번 붙은 녀석은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흙으로, 콩잎으로 비벼야한다. 떨어진 그곳에서 흐르는 피는 한참 뒤에나 멎었다. 어른들은 아예 스타킹을 신었다. 나한테까지 돌아올 스타킹이 없는 시절이었다.

(사진; 모내기 봉사 대학생; 좌측 학생의 다리의 스타킹은, 패션이 아닌, 거머리 퇴치용)

  

 

거머리는 피를 빨기 위한 최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기능은 흡혈을 하는 동물의 경우 공통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지만 특히 거머리에게는 이런 유용한 물질 등이 침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혈액응고방지제, 조직침투제, 혈전용해제, 혈소판 항응집제, 마취제, 모세혈관 확장제, 동맥경련 완화제,... 침 속의 물질들은 모두 한 가지를 위해 모였다. 조용히 접근해서, 혈관에 침을 박고, 혈관도 확장시키고, 쉬지 않고 피를 빨아도 모르도록.. 아마도 지상에 존재하는 흡혈동물 중 가장 발달된 녀석이 아닌가 한다.

 

 

첫 번째 대표적인 기능은 피를 엉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거머리가 흡혈을 할 경우, 사람의 혈관은 당연히 거머리 이빨로 해를 입고 출혈이 생긴다. 혈관이 파괴되면서 혈관내에 있던 혈소판이 파괴되고 혈소판속의 트롬보키나제를 분출한다. 이 물질은 혈액속의 칼슘이온과 결합하여 프로토롬빈을 트롬빈으로 전환시킨다. 즉 본격적으로 혈액응고 준비를 하는 셈이다. 이 트롬빈이라는 물질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물질이 피브리노겐이라는 물질을 피브린으로 고분자화해서 망을 치기 시작한다. 구멍이 난 혈관에 피브린물질로 망을 쳐서 혈액속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멍 난 곳을 막는다. 소위 혈전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면 피가 엉기고 지혈이 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15초. 아주 효율적인 지혈방법이다.

 

 

하지만 거머리에게는 이 응고작용이 흡혈하는 데에는 방해물이다. 피가 엉기지 않고 계속 흘러내려야 거머리는 피의 성찬을 즐기게 된다. 따라서 거머리는 혈관부위에 침을 분비하면서 혈액응고방지제인 히루딘(Hirudin)이라는 단백질을 내보낸다. 이 물질은 직접적으로 트롬빈에 달라붙는다. 달라붙는 정도가 아주 강한 65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히루딘은 가장 효과적인 혈액 항응고제이다. 기존의 항응고제인 헤파린보다도 심장병 치료 효율이 30%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헤파린에 부작용 있는 환자에게 유용하며 의료용으로 개발된 재조합 히루딘은 효모에서 생산되며 거머리의 뛰어난 혈전방지 기능을 모방한 제품이다.

(사진; 의료용 거머리, 부은 곳에서 피를 빨아내는 데에 최적이다)
(그림; 혈액 응고 기작, 프로트롬빈이 활성화되면 화이브리노겐이 회이브린(피브린)이 되면서 망을 형성한다)

 

 

 

사실 거머리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시로 장단지를 둘러보면서 거머리가 달라붙지 않았나 살피는 것이 논을 돌보는 내내 하는 중요일과였다. 그만큼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도 모르게 피를 빨기 시작했다. 한번 붙으면 떼어내기 힘든것도 거머리의 특성이다. 흙으로 박박 문질러야 할 정도이니 어떤 구조로 피부를 침투하는지 관심사항이다. 제일 공포 스러운 것은 피가 멈추지를 않는 것이다. 거머리를 떼어내고 남은 자리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보통의 경우 상처부위를 쓰-윽 문지르면 대부분 얼마가지 않아서 딱지가 앉지만 거머리가 문 곳에서는 피가 엉기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야 그것이 혈액응고 방지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엉기지 않는 계속 흘러내리는 피는 어린 시절의 공포의 대상이다.

 

 

이런 거머리의 능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 있어서 3000년전 약용 거머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피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거머리를 사용하여 피를 제거 한 적도 있고 피부병을 치료키 위해 거머리를 사용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성형 수술 후에 접합부위에 피가 굳지 않고 잘 흘러서 접합된 조직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접합부위에 거머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곳에 사용할 경우, 거머리에 붙어있을지 모르는 병원성 미생물 등이 제거된 경우이어야 한다. 미관적인 문제와 위생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사실 이만큼 완벽한 흡혈동물은 없다.  갖가지 물질을 내보내서 두 접합부 사이의 혈전 등을 제거해서 피가 잘 흐르게 하면서 아프지도 않게 하니 수술 후 처리에는 최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성형수술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거머리를 상처부위에 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에부터 써 왔다고, 괜찮다고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거머리 혈액속의 여러 가지 성분을 최대한 모방해서 위생적으로 완전한 기기(거머리 기기)를 접합부에 사용하는 것이 낫다. 실제로 버지니아 공대에서는 거머리의 기능을 모방해서 혈전응고 방지제가 상처부위를 흐르면서 두 접합부 사이에 혈액이 잘 흐르도록 고안한 '거머리 기계'를 특허냈다.

 

 

이런 기기가 상용화되었더라면 아이의 손가락이 혹시 완전해 지지 않았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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