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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바이오(8) 대기만 하면 붙는다, 벨크로 (식물씨앗 모방한 만능 접착포)

by 바이오스토리 2013. 3. 14.

대기만 하면 붙는다, 벨크로 (식물씨앗 모방한 만능 접착포)

 

1)부츠, 군화 신기의 어려움

 

이번 장마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이상기온에 밀려드는 수증기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우중충한 하늘과 함께 후덥지근한 기온은 무언가 상큼한 것을 기다리게 한다. 반바지와 샌들로 가득 찬 대로변에 돌연 빨간 장화가 나타났다. 상큼한 색깔이다. 한 여름철, 우비를 뒤집어쓴 농부가 논둑에서 물고랑을 낼 때에 신고있던 장화가, 도시에, 그것도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백화점거리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장화인지 부츠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삽 대신 핸드백을 메었다는 것, 농사용 우비가 아닌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인 것으로 보아서 패션을 가미한 장화인 것임에 틀림없다. 알록달록한 레이스가 달려있는 것은, 하지만 장화보다는 부츠에 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 겨울도 아니고 여름의 꼭대기인 7월말에 발을 꼭꼭 둘러싼 부츠 형 장화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패션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참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패션은 무좀도 무섭지 않다.

 

부츠를 파는 매장은 백화점의 일층에 위치하고 있다. 백화점, 그중에서도 일층이란 가장 유행에 민감한 곳이고 고가의 수입화장품이 즐비한 곳이다. 그것에서 부츠가 팔리고 있다. 부츠를 바라보는 젊은 여성들의 눈빛은 명품 백에 대한 동경만큼이나 강렬하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추워서도 아니고 가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인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길게 뻗어 내린 각선미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미에 대한 동경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은 이를 신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부츠는 원통형이다. 따라서 부츠의 입구부터 발을 밀어 넣어야한다. 발이 작거나 발 폭이 좁은 경우는 쉽게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온 힘을 다해서 밀어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각선미가 그나마 살아난다. 헐렁한 부츠는 아버지의 헐렁한 옷을 입은 아이들처럼 코믹하기도 하다. 공들여 힘들여 신은 부츠는 벗기도 힘들다. 그러니 웬만하면 부츠를 신은 채로 생활한다. 물론 한 여름의 부츠에서 생기는 땀, 무좀 등은 각선미와 패션의 열정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옆에 지퍼를 낸 부츠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좀 더 타이트하게 조여서 잠글 수가 있어서 각선미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 부츠는 조금씩 진화한다.

 

사실 부츠는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유래된 부츠는 남성들이 험한 지역이나 질척한 지역을 다닐 때에 반 부츠 형태로 끈으로 무릎까지 매고 다녔다. 이후 부츠는 카우보이, 기병대, 사냥용 남성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실용성도 있지만 고대그리스 극장에서 키가 더 커 보이도록 부츠를 신은 것을 보면, 남성들에게도 잘 보이기 위한 심리는 여성 못지않은가 보다. 그리스 시대의 반 부츠 형태는 여성에게는 패션용 부츠로 진화했지만 남성에게는 좀 더 튼튼하고 견고한 부츠, 즉 군화로 진화했다. 같은 물건이 여성에게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남성에게는 전쟁을 위한, 즉 생존의 수단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조금은 불공평하다.

 

한국 성인 남자에게 군대는 애증이 겹치는 기억속의 장소로 남는다. 근무하던 곳을 향하여는 오줌도 눕지 않는다는 절대 혐오장소이기도 하지만 술 한 잔 들어가면 시작 하는 것이 군대에서의 무용담이다. 군대에서 군화의 힘은 대단하다. 발에 잘 맞는,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군화를 신은 군인은 우선 모습부터 달라 보인다. 허리띠의 버클과 군화, 이 두 개는 늘 군장 검사 시에 빛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계급장까지 빛나고 있다면 군대생활이 편하리라고, 잘 나가는 군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늘이 짙은가. 군화는, 적어도 나에게는, 골치 덩어리의 첫 번째였다.

 

9개의 구멍에 촘촘히 끼우진 줄은 당기기만 하면 금세 군화를 졸라 신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칸 한 칸 조여야한다. 게다가 발이 유난히 크고 뒤꿈치가 튀어나온 기형의 발을 가진 나에게 착 달라붙는 군화는 없었다. 따라서 최대한 끈을 헐겁게 해놓고 발을 집어넣은 다음 군화 줄을 한 칸 한 칸 조여야한다. 9개구멍의 끈을 하나씩 죄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 이겠냐만 비상 훈련 시에 후다닥 튀어나가야 하는 훈련병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다른 장비를 챙기는 데에도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군화의 끈 졸라매기는 내무반에서 나를 제일 늦은 고문관으로 만든 원흉이었다.

(사진; 군화, 9개의 구멍을 한 번에 조이기는 쉽지 않아, 나를 골탕먹인다)

 

그때부터 군화를 보면 떠 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왜 지퍼 달린 군화로 만들지 못해서 이 고생인가. 만약 지퍼로 만들기만 하면 단 숨에 군화를 신을 것이고, 그렇다면 매번 기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고 늘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군대 초반의 힘든 시간이 흘러가고, 군화 줄을 죄어 신는 일보다도 더 마음을 죄는 일들이 생겼다. 또한 헐겁게 군화를 신어도 될 만큼 고참이 되면서 군화로 인한 불안감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군화를 서둘러 죄던 그 숨 가쁜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듯하다. 행여 등산이라도 가려고 등산화 끈을 죌 때면 여지없이 그때의 가파른 숨 생각이 떠올라 실소를 머금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군화는 9개의 구멍으로 끈을 조이는 형태이다. 지금까지 유지 된 것을 보면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사실 급히 군화를 죄여야하는 정신적인 압박만 없다면 군화는 지금의 형태가 가장 적합하다. 많은 군인들의 서로 각각 다른 장단지의 두께를 다 맞출 수는 없는 상황에서 가장 단단히 발에 고정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끈으로 당겨서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만약 지퍼를 사용한다면 장단지의 두께가 미리 결정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면 군화는 발의 사이즈와 장딴지 사이즈 두 종류로 나와야 한다. 대단히 비합리적인 방법이고 복잡한 방법이다. 또한 지퍼는 쉽게 고장이 날 수도 있다. 역시 내 불만이 잘못된 것이지 군화자체는 잘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벨크로, 즉 찍찍이가 부착이 된 신발을 보면서부터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사진; 벨크로가 부착된 신발, 이런 군화면 어떨까)

 

좀 일찍 벨크로가 만들어져서 군대에 보급이 되었다면 군화에도 벨크로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 군화가 있었다면, 단 한 번에 발목을 조여 군화를 신을 수 있고, 혹시 아는가. 비상 훈련 시에도 맨 먼저 군장을 꾸릴 수 있게 될지. 그리고는 집합한 줄의 맨 앞에 서서 유유히 다른 사람들이 선착순 달리기의 기합을 받는 광경을 즐겨 보고 있을지.

 

벨크로가 달린 신발이 시중에 나온 지도 수십 년이 흘렸다. 하지만 벨크로가 달린 군화는 아직 없다. 지퍼 달린 군화가 군화에 적당하지 않은 것처럼, 벨크로가 군화에 쓰이지 않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윤이 나는 가죽으로 된 군화는, 나에겐, 잘 나가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지나가는 젊은 군인의 늠름한 모습을 슬쩍 바라보는 수줍은 여학생의 눈을 끄는 것은 모두 빛나고 있는 것들이다. 금빛의 소위 계급장, 맑고 잘 생긴 눈, 그리고는 반짝이는 구두. 완벽한 빛의 삼박자이다. 이 삼박자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있던 나의 모습이기도하다. 이것을 훼손한다는 것은 군인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군인 나름대로의 패션 감각을 망치는 길이다.

 

만약에 군화에 실용성을 강조해서 벨크로로 만든 군화가 나온다면, 그래서 모양이 러시아 군인의 방한화처럼 둔해 보인다면, 나는 고민했을 것이다. 반짝이는 삼박자의 패션을 위해서 끈 달린 군화를 고집할 것이냐, 아니면 숨이 턱에 차는 기합을 받지 않으려고 한 번에 신을 수 있는 벨크로 군화를 택할 것이냐. 지금도 그런 종류의 선택 앞에서 나는 매번 망설여진다. 그러나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속은 벨크로, 겉은 가죽군화".

 

 

2)벨크로, 자연모방기술의 대표작

 

자연을 모방하여 성공적으로 상업화 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벨크로, 섬유 부착포(fabric hook and loop fastener)이다. 벨크로를 잡아당겨서 뗄 경우에 찌-익 소리가 난다고 해서 찍찍이라는 별칭의 이 발명품은 자연에 있는 식물의 형태를 그대로 흉내 내서 만든 최초의 상품이다. 이후부터 자연모방에 관한 문헌, 아이디어에 관한 책등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벨크로에 얽힌 이야기의 백미는 이것이 실용화되는 과정이다.

 

미스트랄은 사냥을 좋아하는 스위스출신의 전기기술자이다. 1941년, 알프스 산 주변에서 사냥개와 함께 산을 다녀 온 후에 옷에 무언가 붙어 있음을 발견한다. 끝에 작은 가시들이 달려있는 원형의 이것들은 잘 떨어지지 않는 귀찮기만 한 것 이었다. 그러나 평소 주위의 모든 것에 무심하지 않은 미스트랄은 이것의 모양의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 구조에 놀란다.

 

 

 

(사진; 조지 드 미스트랄, 우연히 옷에 붙은 씨앗을 벨크로로 연결시킨 세기의 발명가)
(사진; Verdock, 우영 이라고 불리는 식물의 모습)

 

식물의 씨앗주위에 많은 갈고리가 붙어있고 이것이 옷에 달라붙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은 이후 세계 최초의 섬유로 만든 접착포를 발명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런 유의 식물들은 물론 지금도 바지에 달라붙는다. 스위스가 아닌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미스트랄이 아닌 내가, 알프스가 아닌 관악산을 다녀 온 후에도 달라붙었다. 벨크로가 이렇게 달라붙는 성질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그 당시에도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니까 똑같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어도 나는 그것을 모른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는데 설마 이것도 한번으로 치는 것은 아니겠지?

 

씨앗의 많은 갈고리가 옷의 섬유에 달라붙는 것을 발견한 미스트랄은 곧 이 아이디어를 프랑스 리옹에 몰려있던 방적회사들에게 개발 제의를 했으나 거절당한다. 이후에 이 기술이 성공하여 발생한 막대한 부를 생각하면 방적회사는 땅을 치고 아쉬워 할 일이었다. 나중에 큰 이윤을 남겨 줄 아이디어를 못 알아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절망하지 않은 미스티랄은 이 아이디어를 스스로 구현시킨다. 먼저 그가 만든 것은 면(cotton)으로된 갈고리(hook)와 고리(loop)였다. 하지만 면은 곧 헤져서 부착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면이 아닌 다른 소재를 찾아야했다. 이 시기는 나일론이 상용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보편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소재인 나일론을 대상으로 한 시도가 계속 되었다.

 

나일론을 어떻게 해야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지는지를 고민하기를 한참. 드디어 뜨거운 적외선 하에서 여러 매듭이 겹쳐서 고리가 되는 현상을 찾아내게 되었다. 일단 고리를 만들어야 그 다음에는 그 고리를 갈고리 모양으로 자르면 hook과 loop 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Loop가 만들어진 후에 열을 가해서 탄성을 준 것까지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문제는 loop를 적당한 선에서 자르는 일이 남아있었다. 이때의 작업 도면(후의 특허도면)을 보면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사진; 현재 velcro의 loop와 hook. (상, 좌우) 전자 현미경 사진.(아래 좌)  (Loop와 Hook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흔적(아래 우)

 

어떤 길이의 loop를 만들고 이로부터 hook을 만들어야 쉽게 연결되고 또 잘 떨어지지 않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이 발명의 핵심은 loop를 만든 후에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잘라야 적당한 모양의 hook이 되는가이다. 미세한 구조를 하나하나 손으로 자를 수는 없었다. 몇 년을 허비한다. 결국 포기를 하려는 순간에 떠오른 것이 머리를 자르는데 쓰이는 트림형 가위이다. 정원에서 나무나 가지를 솎아 낼 때 쓰는 가위이기도 하다

 

드디어 천(velour)에 고리(crocket)가 만들어져 있는 벨크로(velcro)가 만들어진 순간이다. 이때까지 소요된 시간이 무려 10년. 1941년 처음 발견해서 10년 동안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켜서 1951년 특허를 신청, 등록한 것이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좋은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현실에 쓸 수 있도록 변형하고 맞는 재료를 택하는 일은 아이디어의 현실화에 제일 중요하다. 그때에 나일론이 나오지 않았다면 면으로 시도한 벨크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디어를 받쳐 줄만한 다른 기술이 당시에 있었다는 것도 미스트랄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1957년 벨크로는 드디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는 하나의 hook과 하나의 loop이 있는 의류용 단추가 많이 쓰였다. 물론 이것은 브래지어의 뒤 단추 등 현재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것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아주 작은 미세한 hook-loop가 천에 붙어있는 벨크로는 나오자마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신문에서도 지퍼 없는 지퍼(zipperless zipper)라고 호평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대박을 기대했던 미스트랄에게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였다. 우선 당시 많이 쓰이고 있던 지퍼와 비교하면 쓰다 남은 천 조각을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의류용 hook과 loop 모습, 당시 사용되던 지퍼의 모습; 나름대로 패션 감각이 살아있다).

 

의상의 패션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단점과 함께 특별히 일반 대중에게 쓰일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이것 저곳 용도를 찾던 중 NASA에서 우주선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주선내에서는 무중력 상황으로 모든 것이 떠다니기 때문에 사람의 등에 벨크로의 한 면을 감고, 벽에 또 다른 면을 부착해 놓으면 언제라도 쉽게 붙었다 떨어졌다 할 수 있다. 또한 우주복처럼 두터운 장갑과 부자연스러운 헬멧 등으로 일일이 단추를 잠글 수가 없는 곳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NASA 같은 유명한 곳, 최첨단 장비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도 쓰인다는 점은 큰 반향을 부를 줄 알았으나 오히려 특수목적의 접착 포라는 인식만을 심어주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 NASA 우주선에서 떠 다니는 인체를 고정키 위한 벨크로-좌측 끝)

 

주춤하던 응용분야는 우주복과 유사한 환경, 즉 손을 자유로이 움직여서 옷을 입지 못하는 환경에 있던 스키복에서 그 숨통을 찾기 시작했다. 장갑을 낀 손으로는 쉽게 채우지 못하는 스키복의 단추와 지퍼대신 단숨에 죄일 수 있는 벨크로 접착포가 스키복에 붙기 시작했다. 이는 또한 아이들이 단추, 지퍼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곳에 착안해서 아동용 옷, 신발 등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활황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1970년경으로 한국에도 찍찍이 신발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NASA에서 잘못된 시작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필요한 용도를 찾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벨크로의 용도는 옷에 붙이는 것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침실의 커튼처럼 하나하나 고리를 끼어서 연결하던 것을 벨크로로 한 번에 척 붙이게 되었으니 의자를 받혀놓고 천정에 커튼 고리를 거는 곡예를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벨크로의 장점은 간편하게 두 면을 접착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4cm 조각만으로도 70kg 거구를 들 수 있는 접착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10cm 조각에 3000개의 고리와 연결고리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어린 아이도 쉽게 사용하고 안전하다는 점, 많이 사용해도 접착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한 여름에 테니스를 칠 경우 손에 감는 보호대를 사용한다. 이 경우에도 벨크로로 쉽게 착용한다. 하지만 사용 후에 그대로 방치하고 며칠 뒤에 다시 사용한다면 그 악취 때문에 기절할 정도이다. 이러한 땀 냄새이외에도 먼지, 머리카락 등이 끼이게 되면 떼어내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접착포를 떼어 날 때에 나는 찌-익 소리, 이 소리덕분에 찍찍이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누가 지갑을 연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난방지 역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이 소리 때문에 적에게 들킬 염려도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는 벨크로도 개발했다.

 

 

3)씨앗이여, 널리 퍼져라.

 

오늘도 등산을 하고나면 여지없이 무언가 옷에 달라붙는다. 그 붙은 모양을 보면,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1941년 미스트랄이 발견한 그 식물체인 우엉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지만 달라붙는다는 것은 모두 같다. 도꼬마리 씨앗, 엉겅퀴 씨앗, 도깨비 풀 씨앗 은 이렇게 바늘 모양의 고리로 지나가는 동물에 붙어서 자기의 씨를 퍼트린다.

 

종족번식이 모든 생물의 제1의 숙제 인 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경우에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물가에 있는 나무들은 흐르는 물에 씨앗을 떨어뜨리게 되면 멀리까지 보낼 수 있다. 봄에 피는 버들강아지, 그리고 냇가에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등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물을 이용하는 방식이 있다면 바람을 이용한 방법도 있다. 봄 되면 바람타고 날라 다니는 민들레 씨앗, 엉겅퀴 씨앗, 박주가리 씨앗 모두 씨를 널리 퍼트리기 위한 전략이다. 낙하산 전법이다. 그중에서도 만들레 씨앗은 퍼지기 전에 그 모양이 구름 사탕 같아서 손으로 톡 치면 불꽃처럼 사방으로 날라 간다

 

앞서 가던 외국인 등산객이 뭐라면서 민들레 씨앗을 들어서 나에게 보여준다. 자기네 나라, 호주에서는 이 씨앗을 입으로 불면서 소원을 말하면 성취가 된다고 하면서 민들레씨앗을 훅 불어 하늘 높이 흩어 날린다. 그리고는 뭐라고 중얼거린다. 터키 중부지방의 산비탈에서도 민들레는 오늘도 씨앗을 퍼트리는 중이다. 식물은, 지나가는 동물에 붙어서, 아니면 흐르는 물을 이용해서, 또는 부는 바람을 이용하더니 이제는 사람의 입김도 이용해서 씨앗을 전파하는가 보다.

 

가만히 땅에 심어 있는 생물이라 해서 식물(植物)인가 했더니 아주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신물(神物)인가 보다.

 

 

 

(사진; 도꼬마리, 도깨비풀, 박주가리, 엉겅퀴씨앗, 민들레 씨앗, 모두 멀리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전략들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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