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교수의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1)인체 건강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⑩ 알레르기ㆍ아토피 전쟁

by 바이오스토리 2013. 9. 11.

인체 면역세포에 ‘잽’을 날려라, 맷집 키우게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⑩ 알레르기ㆍ아토피 전쟁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37호 | 20130825 입력

1 아토피 피부염. 2 꽃가루 알레르기: 꽃가루가 몸에 들어오면 방어물질인 항체가 만들어진다. 꽃가루가 다시 들어오면 이 항체가 달라붙어 재채기콧물에 섞여 밖으로 내친다. 3 난초 꽃가루: 면역세포가 작은 돌기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꽃가루 알레르기의 원인이 된다. 4 인체 장점막(적색, 청색)의 경계(화살표)에서 장내 세균이 면역기능을 단련시키면 면역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여름철, 유난히 땀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손과 발에 붉은 반점이 가득한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이다. 특히 살이 접히는 부위는 더 심해 수시로 긁어대는 아이의 손을 잡아채는 엄마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사진 1). 너무 긁어 진물이 나는 아이의 피부도 걱정이지만, 금방 나을 병이 아니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엄마를 더욱 답답하게 한다. 이런 부모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1966년 뉴질랜드령의 조그마한 섬인 도게라우에 태풍이 몰아쳤다. 이재민 1950명이 도시로 이주했다. 도게라우 섬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원시에 가까운 섬인 반면 이주한 곳은 깨끗한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잘 정비된 현대 도시. 질병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14년 뒤 도시로 이주한 도게라우 섬 사람과 아직 섬에 남아 있는 원주민의 알레르기성 질환을 조사했다.

알레르기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과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이 이주민에게 모두 2~2.5배 높게 나타났다.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원시 시골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토피 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잘 걸린다는 조사 결과다. 가끔 듣는 ‘어떤 사람이 시골에 가서 아토피 피부염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조사는 1950명을 대상으로 14년이란 장기간에 비교실험을 한 것이어서 신뢰도가 높다. 조사가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알레르기를 낮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토피 피부염,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 모든 가족이 도시의 아파트를 떠나서 시골로 이주할 수는 없다. 더구나 10명 중 9명이 도시에 살고 6명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곳이 한국이다. 도시에 살면서 알레르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면역 반응의 두 버전, 공격형·수비형
아토피는 그리스어로 ‘Atopus’, 즉 원인이 분명치 않다는 의미로 그만큼 원인이 복잡한 병이다. 하지만 원인 중 두 가지는 분명하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주변 환경의 영향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토피 피부염 환자였으면 자식이 그 질환에 걸릴 확률은 80%인데 그게 개인적·유전적 원인이다. 그리고 같은 뉴질랜드 섬 출신이라도 지금 사는 곳이 섬이냐 도시냐에 따라 발병률이 다른 것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토피 피부염이 생기면 피부가 붉어지고 가려워져 긁게 되는데 그러다 진물이 나고 덧나서 더 가렵고 더 긁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보습제를 바르고 염증 연고를 바르지만 금방 낫지 않는 이유는 이게 단순히 한 곳만의 피부병이 아니고 몸 전체와 관련된 질환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체를 지키는 면역기능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오류가 원위치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봄이 되면 괴로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줄줄 흐르며 재채기를 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다. 알레르기(allergy)는 그리스어의 allos(변한다)+ergo(작용), 즉 ‘변화된 면역작용’이라는 뜻이다. 우리 몸엔 체내에 침투하는 외부 침입자를 격퇴하는 정상적인 면역작용이 있는데, 알레르기는 이 정상적인 방어가 잘못 ‘변화’해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인체는 외부 침입자가 들어오면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는 공격해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킨 뒤 소화하거나 분해시키는 ‘공격형 반응’이다. 이 기능은 주로 면역 담당 세포인 T-세포가 맡는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는 이런 공격에 대부분 파괴된다. 면역 반응의 또 다른 형태는 ‘수비형’이다. 공격형 방어와 달리 상대를 파괴하는 대신 몸에서 내보낸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꽃가루가 우리 몸, 특히 기관지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점막의 면적을 늘려 들어오는 꽃가루를 빨리 잡아 몸 밖으로 내친다(사진 2, 3). 재채기의 순간 콧바람 속도는 시속 200~400㎞로 엄청나게 빨라 들어오는 꽃가루는 즉시 밖으로 쫓겨난다. 아주 효과적인 퇴치 방법이다. 천식은 이런 알레르기가 심하게 일어나는 병이다. 허파와 연결된 기관지의 점막에 알레르기성 염증이 생기면서 기관지가 좁아져 색-색 소리가 나는 것이다. 알레르기 증상 자체는 괴롭지만 몸을 방어해 주는 이런 좋은 점도 있다.

알레르기가 이렇듯 인체에 득이 되는 정상적인 ‘퇴치 행위’ 혹은 ‘경보 사이렌’이라는 학설은 2012년 과학 잡지 ‘네이처(Nature)’에 소개됐다. 아토피 피부염도 알레르기의 한 형태라면 그런 피부염이 있는 게 몸에 득이 된다는 말인가?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과 천식이 동시에 있는 환자는 대장암 사망률이 17%나 낮다고 미 알레르기 학회에 보고됐다. ‘알레르기가 인체에 득이 된다’고 해서 알레르기에 시달리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런 긍정적인 점도 있으니 너무 절망만 하지 말라는 뜻이다.

꽃가루·진드기에 놀라 제 몸에 ‘총질’
지난 15년간 세계적으로 알레르기 환자는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인구의 40%가 아토피 피부염, 천식·알레르기성 비염에 시달리고 있다. 병으로 죽는 사람은 줄지만 알레르기 환자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한 환경이 오히려 알레르기 관련 질환을 키우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반대로 다른 생명체와의 접촉이 많으면 알레르기 질병이 적다.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사는 대가족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균, 예를 들면 감기 바이러스 등과 자주 접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국이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경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헬리코박터균을 접하게 돼 아토피가 적어진다. 특히 농가에서 가축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의 경우 월등하게 아토피 피부염 발생률이 낮다. 이런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은 많은 종류의 생물, 그중에서도 우리 몸의 면역을 자극하는 병원균이나 기생충 등에 접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의 발생률이 낮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은 태어나면서부터 길들여져야 한다. 마치 새로 산 자동차를 길들이려면 고속도로에서 액셀을 힘껏 밟아 달리듯이 면역 시스템을 미리 가동시켜 줘야 한다. 병에 걸릴 만큼 강한 병원균이 들어와 면역 기능에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날리면 딱 좋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어도 된다. 장내 점막은 인체 면역세포의 80%가 몰려 있는 곳으로 점막과 늘 접하는 장내 세균이나 기생충은 근처의 면역 세포들에 늘 살살 ‘잽’을 날린다(사진 4).

이런 잔매에 익숙해진 인체 면역세포들은 웬만한 세균만으론 호들갑스럽게 면역시스템 전체에 경보를 울리지는 않는다. 즉, 외부 침입자 중 사소한 것들은 봐준다는 얘기다. 이런 ‘길들이기’ 과정이 없이 자란 아이의 면역체계는 아주 예민해서 사소한 외부 물질과 닿기만 해도 난리를 일으키게 된다. 꽃가루를 적으로 인식해서는 경보를 발령해 콧물을 줄줄 흘린다. 마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알레르기의 본모습이고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다. 아주 예민해진 인체 면역 체계는 심지어 자기 몸 안의 물질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이런 질환을 ‘자가면역 질환(autoimmune disease)’이라 부르며 아토피 피부염,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이 해당된다. 결국 아토피성 피부 질환은 어릴 적에 길들이지 못해 너무 예민해진 면역체계가 꽃가루나 진드기처럼 흔한 물질에 놀라 자기 몸에 총질을 한 결과라고 봐야겠다.

아이가 흙에서 놀면 태열이 사라지는 이유
엄마 배 속에 있던 태아는 외부 침입자를 최대한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예민한 상태로 면역체계를 유지한 까닭에 아토피 피부염 같은 ‘태열’이 있는 아이가 많다. 그런데 옛말에 ‘태열은 아이가 흙에서 놀면서 없어진다’고 했다. 흙이나 동물,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외부 물질, 병원균들과 접하고 잔병치레를 하며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면역에 ‘잽’ 같은 잔매를 맞은 아이들은 아토피 피부염에 걸릴 확률이 상당히 낮다. 지금 도시의 아이들은 흙에서 놀 기회도, 여러 가족과 접촉할 기회도 없다. 또 간단한 잔병에도 광범위 항생제를 사용해 장내에서 면역훈련을 하게 돕는 장내 세균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도시 아이들을 모두 농촌에 보낼 수는 없다. 다만 최대한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토피 피부염을 치유하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흙 같은 자연환경과 자주 접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며 면역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아토피 피부염에 걸렸을 경우 치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예 피하는 방법, 즉 주위에서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모두 찾아 없애거나 접촉을 안 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더 적극적인 치료법으로 면역의 ‘맷집’을 키우는 방법이다. 최근 알레르기 물질을 조금씩 몸에 주사하는 방법이 연구·실행되고 있다. 예민해진 면역에 아주 약한 펀치를 날려 무뎌지게 하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인체에 무해한 선충(nematode)을 장내에 넣어 기생충처럼 면역 기능에 작은 펀치를 날리도록 해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이런 인공적인 방법도 효과적이지만 자연적인 게 으뜸이다. 즉, 어릴 때부터 자연, 동물 그리고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수천 년 동안에 사회는 빠르게 문명화됐지만 인체는 아직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았다. 인체는 자연에서 지내던 그 상태 그대로이다. 이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온실 같은 아파트에서 밖으로 내보내 흙도 만지고 지렁이도 접하게 하고 친구들과 모랫바닥을 뒹굴며 놀게 하는 게 아토피 피부염 같은 ‘현대병’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자의 철학이 정답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