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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1)인체 건강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⑦ 비만·우울증까지 잡는, 참 기특한 배 속 유익균!

by 바이오스토리 2013. 6. 25.

비만·우울증까지 잡는, 참 기특한 배 속 유익균!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⑦ 장내 미생물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28호 | 20130623 입력

 1 인체 장내 상피세포(자색)와 접하고 있는 장내 미생물(녹색). 2 장내 세균들(박테로이드(적색), 대장균(녹색))이 점막(청색) 속에 있는 인체세포(녹색)에 신호물질을 보내며 상호 소통하고 있다. 3 대표적 장내 유익균인 유산균의 전자현미경 모습. 발효음식(김치 요구르트) 등으로 장내에서의 수를 늘릴 수 있다. 한 마리의 실제 길이는 2㎛(㎛; 100만분의 1m) 자료: 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Univ. Bern·flickor
얼마 전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한국인의 암 발생률 3위를 차지한다는 대장암도 무서웠지만 맥주 한잔에도 쌀쌀해지는 아랫배가 영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병원 검사대에서 스크린에 비춰진 대장의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검사를 위해 속을 비운 탓에 오늘은 저렇게 동굴처럼 텅 비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 속에 음식과 장내 미생물이 꽉 차 있었다는 것 아닌가. 스크린을 보면서 내 대장에 있는 장내 미생물들은 설사나 일으키는 적군은 아닌지, 아니면 아무거나 먹어도 비교적 살이 안 찌는 나의 ‘날렵한’ 몸매를 지키는 숨은 아군인지 궁금했다.

2013년 3월, 유명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에는 출렁이는 뱃살이 걱정되는 사람에게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실렸다. 날씬한 쥐의 장내 미생물을 비만 쥐의 내장으로 옮겼더니 쥐의 체중이 비만에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면, S라인 몸매나 식스팩을 가진 TV 탤런트의 배 속 미생물을 내 배로 옮기기만 하면 힘든 다이어트 없이도 뱃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남의 배 속 것을 빌려온다는 게 상쾌하지 않다면 내 배 속에서 살고 있는 장내 미생물 중에서 ‘좋은 놈’들은 계속 유지하고 ‘나쁜 놈’들을 쓸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날씬한 쥐 장내 미생물 비만 쥐로 옮겼더니
사람의 몸은 무려 7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보다 10배 많은 다른 세포들이 우리 몸에 동거하고 있다. 즉 피부, 장 등에서 붙어 사는 미생물이다. 그중 소화관 즉 위·소장·대장에 사는 미생물은 대부분 박테리아여서 장내 세균이라고도 부른다. 최근 이 장내 미생물들이 건강에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해 왔다는 말은 아니다. 그동안은 이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알아내는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었는데, 최근 이들의 유전자만으로도 정체를 밝히는 기술이 가능해져 연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 분석 결과는 놀랍다. 사람의 대장 속에 사는 장내 미생물은 크게 세 가지다. 박테로이데스 문(門), 프로보텔라 문, 루미노코커스 문이다. 이 세 종은 사람의 혈액형 같아서 나이, 남녀, 인종에 관계없이 크게 3분류된다. 그래서 이제 병원에 가면 의사가 혈액형처럼 ‘당신의 장내 미생물은 무슨 형이냐’고 물을 날도 멀지 않았다. 3종의 문으로 구분되는 장내 미생물의 전체 종류는 1000종이 넘는다. 신기한 사실은 개인이 매일 같은 식사를 하고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미생물의 종류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으며 또한 사람마다 각각 다른 종류의 장내 미생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개인별로 장내 미생물의 종류를 파악하면 그의 체질, 건강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개인마다 고유한 장내 미생물은 바로 그의 체질, 건강 상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사진 1).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의 건강(비만, 동맥경화, 우울증)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러스트 박정주
내가 식사하면 나의 장내 미생물도 그 밥을 같이 먹는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밥을 먹이듯 ‘내 새끼’들에게도 밥을 먹이는 셈이다. 장내 미생물은 세 가지 중요한 일을 한다. 첫째, 대장으로 들어온 음식물 잔해를 추가 분해해서 영양분을 획득한다. 둘째로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 예를 들면 식중독균 등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셋째로 비타민 등 인체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받아먹는 것만이 아니고 나의 건강에, 예를 들면 나의 허리 둘레나 동맥 혈관에 쌓인 혈전에, 심지어 나의 우울증에도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맥경화증을 앓는 사람 중에 세 번째 유형의 장내 미생물 타입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 타입에는 염증 유발 물질인 펩티도글리칸을 만드는 균이 많다. 이 균은 비만에도 관여한다.

2012년, 과학 잡지인 ‘네이처(Nature)’에 의하면 ‘지방 생성’ 미생물, 즉 대장으로 들어오는 음식물에서 에너지를 뽑아내 지방으로 만드는 미생물의 종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허리 둘레는 늘어나는 비만 증세가 나타났다. 비만 과정은 이렇다. ‘지방 생성’ 미생물이 장 점막에 있는 세포의 문을 두드려 인체에 신호를 보낸다. 즉 TLR(Toll-Like-Receptor)이라는, 세포의 대문에 해당하는 수용체에 신호를 보내면 신호를 받은 세포는 영양분을 지방으로 만들도록 세포에 지시한다.

즉 에너지원인 지방을 쌓아놓는 것이다. 나중에 먹을 게 떨어져 배고픈 때를 대비하는 것이 ‘생물’의 생존전략이다. 이 장내 미생물이 소장·대장에 있는 세포에도 비상시를 대비해 배 속에 지방을 쌓아놓으라고 꼬드긴 결과물이 결국 내장지방이다. 이 두 녀석들, 즉 장내 미생물과 세포들이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는지를 좀 더 정확히 밝힌다면 내장지방을 줄이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사진 2).

이런 대사 질환 외에도 2012년 ‘사이언스’ 잡지에는 장내 미생물들이 인체면역에 중요하다는 사실이 실렸다. 즉 장내 미생물 중에는 인간의 면역세포, 특히 T세포를 활성화하는 ‘유익한 미생물’이 있고 이것이 적절한 선을 유지하지 않으면 면역에 문제가 생겨 대장염, 알레르기 등이 생기며 소아당뇨, 류머티즘같이 자가면역질환, 즉 자기 세포를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배 속의 ‘그놈들’이 없으면 속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몸의 면역력만 떨어진다니 ‘그놈들’이 귀중한 줄 알고 자식처럼 키워야겠다.

또한 2013년 뉴로사이언스(Neuro science) 저널에는 걱정이나 우울증에 장내 미생물들이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었다. 즉 스트레스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세포의 발달에 배 속에 있는 놈들이 관여해 세로토닌 같은 우울증 전달 호르몬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사질환, 면역 그리고 정신건강에까지 내 배 속의 ‘그놈들’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배 속의 놈들’이란 말 대신 ‘나의 파트너’라고 격상시켜야겠다.

항생제 과용하면 장내 유익균 못 살아
날씬한 쥐의 장내 미생물을 뚱뚱한 쥐의 대장으로 옮겼더니 똑같이 먹고도 체중이 줄고 비만의 다른 부작용이 감소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좋은 장내 미생물들을 잘 키워 볼까’ 하는 욕심이 생기게 한다. 특히 유아의 경우 초반에 좋은 미생물이 장에 자리를 잡는 게 건강에 중요하다. 태아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장내에 미생물이 하나도 없다. 출생 후 아이가 먹는 우유가 모유냐 분유냐에 따라 장내 미생물 종류가 달라지고 이후 면역 유전자 활동도 달라진다. 유아의 장내 미생물은 자라면서 먹는 음식, 그 음식에 붙어있는 다른 미생물들, 그리고 장내의 환경에 따라 평생 살아갈 미생물의 종류양이 결정된다. 장내에서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들어오는 음식물을 놓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적자생존 논리가 이곳에서도 적용된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자라는 놈만이 무조건 대표 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좋은 균들을 유지하기 위해 인체는 맘에 드는 놈들을 공들여 선택해야 한다.

인체와 장내 미생물의 관계는 하숙집 주인과 하숙생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주인이 제공하는 식사의 종류, 그리고 그 집의 환경에 따라 모여드는 하숙생들의 면모가 달라진다. 일단 하숙생을 받으면 주인은 맘에 드는 하숙생에게는 좋은 방을 주고 때로는 밤참도 수시로 만들어준다. 반면 술이나 퍼 마시는 ‘불량’ 하숙생은 신 김치나 주어 스스로 나가도록 만든다. 이처럼 인체의 장에 있는 세포도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고른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장의 점막에 있는 세포, 즉 상피세포에서 특정 영양분, 예를 들면 푸코스라는 당을 분비해서 그 당을 잘 먹는 유익균이 더 많이 자라도록 한다. 그리고 디펜신이라는 항균제도 분비해 유해균들이 못 자라도록 한다. 하지만 최근 항생제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장내 미생물의 종류가 많이 줄었다. 어릴 때 항생제를 많이 사용한 경우 천식, 알레르기, 비만 등이 늘어나는 걸 보면 항생제 과용이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없애는 데에 직격탄임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균들을 골라 키울 수는 없을까. 최근 바이오 기술로 장내 미생물들의 종류양 등을 유전자 검사법을 통해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유해균이 줄어들고 유익균들이 많이 생기는가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개인의 체질별로 맞춤형 식단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평소 식습관을 어떻게 하면 좋은 장내 미생균을 키울 수 있을까. 전통발효식품, 예를 들면 김치에는 유익균인 유산균이 요구르트만큼 있다.

또한 김치의 섬유질도 장내 유익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사진 3). 반면 기름기 있는 음식이나 밀가루 식사는 장내 미생물에는 반갑지 않은 음식이다. 식약동원(食藥同源), 즉 몸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보약이다. 내 장 속의 파트너에게 잘 맞는 음식을 공급해주자. 그것이 무병장수의 지름길이다. 이제 100세까지는 ‘배 속 편하게’ 지낼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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