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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3)두뇌 바이오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⑪ 천생연분과 과학

by 바이오스토리 2013. 9. 16.

사랑하는 배우자 사진 볼 때만 뇌에 ‘굿 뉴스’ 신호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⑪ 천생연분과 과학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40호 | 20130915 입력

큐피트의 화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유전자의 지령에 따르는 본능인가, 아니면 평생의 동반자를 찾으려는 이성인가. [위키피디아]
“나도 짝을 찾고 싶다.” 현재 인기몰이 중인 TV프로그램의 주제다. 사람들은 왜 짝 찾기 프로그램에 열광할까? 사람이면 누구나 천생연분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하늘이 맺어준 운명적 인연과의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이성을 처음 본 순간 사람들은 무엇에 끌리는가? 별로 로맨틱한 건 아니지만 만일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나 백년해로 모두 ‘사랑의 유전자’가 풀어내는 현상이라면, 그래서 서로 선택한 것이 최선임이 과학적으로 설명된다면 그것 자체가 운명적 만남이고 진정한 천생연분 아니겠는가?

첫인상, 즉 상대를 처음 보고 나서 수초 내지 수분간의 모든 정보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고 뇌에 각인된다. 하지만 사업상 만나는 경우와 달리 배우자를 찾는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라면 뭐가 작용할까. 무의식 속의 동물적인 본능? 아니면 ‘쌩쌩’ 돌아가는 두뇌의 현실적인 계산?(사진 1)

동물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놀랍다. 대부분의 동물엔 가장 튼튼한 후손을 낳도록 유전자에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고 따라서 선택 기준은 ‘종족 번식에 가장 유리한지 여부’라는 것이다. 즉, 상대가 새끼를 많이, 또 잘 낳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수컷엔 ‘암컷이 배란기에 있는지 확인한 뒤 씨를 퍼뜨려야 한다’는 한 가지 본능이 깊게 새겨져 있다. 반면 암컷은 좀 복잡하다. 임신을 통해 본인 유전자를 전파하고 자신과 새끼를 돌봐줄 수컷을 잘 골라야 한다는 두 가지다. 그래서 짝을 고를 때 수컷보다 훨씬 더 신중하다.

사람의 경우 처음 본 이성을 판단하는 순서는 얼굴, 몸, 목소리 그리고 체취 순이다. 얼굴을 보자. 여성의 경우 대칭형 얼굴, 작은 턱, 가는 눈썹, 높은 광대뼈가, 남성의 경우는 큰 턱, 굵은 눈썹, 네모난 머리가 상대방에게 ‘섹스 어필’하는 얼굴이다. 몸의 경우 여성은 둥근 히프, 가는 허리, 긴 다리가 남성의 눈을 끌며, 남성은 넓은 어깨와 강한 가슴이 여성의 눈에 확 들어온다. 목소리의 경우 여성의 하이 톤, 남성의 저음이 점수를 딴다. 이런 요소들에 끌리는 것은 다 성호르몬의 영향이며, 그 의미는 ‘상대가 임신 가능기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상대방이 종족 번식에 적합한 ‘짝’인지를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 시각·청각이라면 쥐에겐 냄새다. 그 냄새는 어떤 것일까.

마젤란펭귄 연구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상대와 짝짓는 게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위키피디아]
새 둥지 속 새끼 40%는 불륜의 자식
2013년 과학잡지 ‘네이처’에는 쥐가 짝을 고를 때 냄새로 판단하며 이는 자신과 유전자가 다른 상대를 선택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유전자가 다른 놈을 만나야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새끼들을 낳을 수 있고 그래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외부 병원균에 대항하는 면역 무기가 자신과는 다른 짝을 선호하는 것이다. 외부 균에 대한 무기의 종류가 A인 쥐는 무기가 B인 쥐를 만나 A·B를 모두 가진 자식을 낳아야 그 자식이 다양한 병원균에 대항해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 상대가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졌는지를 판단하는 데 후각이 동원되고 대상은 상대의 오줌이다. 상대 쥐의 오줌에 담겨 있는 생존 무기, 즉 면역유전자(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가 풍겨내는 단백질 냄새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다. 상대의 소변 냄새를 통해 유전적으로 자신과 다른 놈을 짝으로 만나는 것이 비슷한 짝을 만나는 것보다 자식들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2012년 유전학 잡지(J. Heredity)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1997년부터 10년간 섬에 있는 새의 번식을 관찰해 보니 한 부부 새가 낳은 새끼의 40%는 암컷이 다른 새와 바람을 피워 낳은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륜 자식’들이 원래 부부의 유전자를 가진 ‘적자’들보다 두 배나 더 오래 살았다. 즉 전체적으로 볼때 다양한 유전자가 단일 유전자보다 자연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암컷만 뭐라 할 일이 아니다. 그 불륜 자식에게 유전자를 주는 것은 어차피 다른 수컷이기 때문이다. 암수 서로 피장파장이다. 또 마젤란펭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체 내 면역유전자(MHC)가 다양한 암펭귄이 알을 더 많이 낳고 새끼를 더 잘 키우는 반면, 원래 짝인 수놈 펭귄과 같은 MHC를 가진 암컷은 새끼도 적게 낳고 게다가 새끼를 전혀 돌보지도 않는다. 즉 비슷한 MHC를 가진 펭귄 부부는 ‘태만형 부모’라는 것이다.(사진 2)

더 건강한 새끼들을 얻으려고 바람까지 피우는 새들에게 ‘삼강오륜도 모르는 것’들이라 호통칠 게 아니다. 새들은 도덕윤리보다 다양한 자손들을 낳아 자자손손 씨를 퍼트리는 ‘적자생존’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그럼 과연 쥐나 펭귄처럼 사람들도 실제로 나와는 다른 면역유전자(MHC)를 가진 짝을 좋아할까?

사람의 경우도 유전적으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쥐의 경우처럼 그게 MHC 때문이라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물적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실험이 있었다. 남성들이 입었던 T셔츠의 체취를 여성들에게 맡게 했다. 그 결과, 그 여성의 가족에 속한 남성, 즉 유전자 풀이 같은 남성이 입었던 셔츠보다 가족이 아닌 다른 남성들이 입었던 셔츠를 여성들이 더 좋아한 것이다. 사람의 체취는 주로 땀 냄새인데 성분은 그 사람의 유전적 특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나와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더 끌리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자손을 치명적인 유전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까운 근친과 결혼하면 유전병이 자식들에게 나타날 확률이 급증한다. 예를 들어 피가 굳지 않는 혈우병 유전자(a)를 가졌으나 문제는 없는 정상인(Aa)이 근친 중에서 같은 유전자(Aa)를 만나면 후손 유전자로 AA·Aa·Aa·aa 넷이 가능한데 한 명(aa)은 치명적인 혈우병 환자다.

지금은 유전자 검사가 수십만원이면 가능하지만 이런 방법이 없었던 시절에는 체취가 ‘근친 유전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결국 타인의 체취로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짝’을 고르는 것은 다양한 면역 무기를 갖는 것 외에도 치명적 유전병을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들도 다른 동물처럼 ‘근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지만 어쩌다 결합한다 해도 그런 커플에겐 문제가 더 많다. 결혼 뒤 다른 이성들과 더 바람을 피우고 불협화음이 더 많으며 임신 초기에 유산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보고가 있다. 최근 이런 연구 결과, 즉 체취가 이성 간의 끌림에 작용한다는 점을 과대포장해 ‘인간 페로몬 향수’라는 상품이 나온 해프닝도 있다. 페로몬은 같은 종의 나방이나 곤충끼리 소통하는 물질이다. 이 중에서 성 페로몬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수㎞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방을 유인한다. 하지만 페로몬은 MHC와는 다른 물질이고 페로몬을 맡는 부위도 다르다. 더구나 사람에게는 이 기관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한번 만난 짝을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사랑을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사람도 유전자가 완전히 다른 짝 선호
사람에 대한 연구 결과는 ‘동물처럼 확실하진 않지만 사람도 유전자가 완전히 다른 짝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본능에 따라 ‘짝’을 고르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고 단순화할 수 있을까. 동물적 본성을 ‘사랑’의 바탕이라 하는 것은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인간의 이성적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동물의 암수 97%가 ‘부부의 맹세’를 지키지 않고 바람을 피워 ‘씨 다른’ 새끼들을 키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번 부부는 영원한 부부’라는 결혼 약속을 지키려 평생 노력한다. 또 새끼가 다 자라면 ‘임무 끝’이라며 돌아서는 동물과도 크게 다르다.

나이 60이 넘은 금실 좋은 부부에게 상대 사진을 보여주고 뇌 기능을 무의식까지 보여주는 기기로 검사해 보았다. 그 결과,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나 좋아하는 것을 오래 소유할 때의 감정, 즉 중독성 애착감이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뇌의 복측피개부(VTA:Ventral Tegmental Area)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즉, 오래 사랑하는 부부의 경우, 상대 얼굴만 봐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나에겐 아주 중요한, 꼭 지켜야 할 사람이라는 감정이 중독의 단계처럼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약수터를 손잡고 오르는 나이 든 부부들은 서로에게 뗄 수 없는 ‘짝’인 것이다.

사람의 경우 첫눈에 반해 심장이 뛰며 눈에 콩깍지가 끼는 ‘감정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4~5년이다. 끓어오르던 사랑의 호르몬이 정상을 찾고, 태어난 자식들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사랑은 형태를 달리한다. 이성으로서의 ‘짝’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반려자’로 바뀐다. 동물과 달리 오직 사람만이 나이 든 상대를 보살피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와 같이하는 ‘헌신적 사랑’을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자식을 끝까지 잘 키우려 하고, 배우자와 오랜 정으로 끈끈하게 맺어지는 ‘진정한 사랑’에 있는 것 아닌가? 사랑의 본질을 설명하기에 과학은 여전히 부족하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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