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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59> 죽더라도 맞겠다는 도핑, 악착같이 막겠다는 反도핑

by 바이오스토리 2018. 4. 3.

죽더라도 맞겠다는 도핑, 악착같이 막겠다는 도핑

: 도핑의 과학

 

 

서울 올림픽 3관왕 그리피스 조이너. 돌연사한 그녀에 대한 도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중앙포토]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3관왕인 그리피스 조이너, 그녀가 돌연사했다. 올림픽의 꽃인 100m200m 세계신기록, 붉은 립스틱, 화려한 성조기 유니폼으로 각인된 그녀다. 10년 뒤 그녀는 침대에서 사망했다. 도핑 부작용인가. 올림픽 전후 그녀가 도핑 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테스토스테론’, 조이너의 도핑의혹 물질이다. 박태환의 아시안게임 메달 6개를 박탈한 약물이다. 리우 올림픽위원회는 도핑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죽을지라도 맞겠다는 도핑, 뿌리 뽑겠다는 반()도핑, 쫓고 쫓기는 게임은 지금도 계속된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초기 올림픽선 도핑 공공연히 행해져

 

도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이다. 고환에서 만들어진다. 물개 생식기를 말린 해구신(海狗腎)은 동의보감에도 나온 정력제다. 정력은 건강에서 온다. 비아그라와는 다르다. 예전 사람들은 귀한 물개 대신 누렁이 황구신(黃狗腎)을 먹었다.

 

동의보감을 서양과학자가 본 걸까. 1889년 하버드대 생리학 교수 찰스 에드워드는 기괴한 논문을 냈다. 개 생식기를 추출해서 자기 피부에 직접 주사했더니 몸이 급격히 좋아졌다는 내용이다. 72세 그의 논문에 사람들은 망령이라고 비웃었다. 플라시보(위약) 효과라 했다. 38년 뒤 다른 과학자가 황소 고환 18에서 20의 호르몬을 얻었다. 고환(testes)에서 나오는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답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울퉁불퉁한 근육, 거뭇거뭇한 수염을 만든다. 고혈압·신장·당뇨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합성했다. 1939년 노벨화학상이 주어졌다. 노벨상은 니트로글리세린이 살상무기(다이너마이트)로 쓰이게 된 것을 반성하며 만든 상이다. 과학은 때로 의도와는 달리 쓰인다. 노벨상을 타게 한 테스토스테론이 환자 치료 대신 선수를 망가뜨렸다. 도핑 시작이다.

 

도핑(doping)의 어원은 남아프리카 원주민 알코올음료(dop). 고대 로마 전차경기에서도 마법 드링크를 마셨다. 초기 올림픽에서 도핑은 공공연히 행해졌다. 19006일간 장거리 사이클 선수에게 주사된 약은 니트로글리세린이다. 심장 비상약이 아닌 심장 도핑약으로 사이클 선수들의 심장을 더 뛰게 했다. 1904년 여름 올림픽 마라톤. 선두 토마스 힉이 비틀거렸다. 옆에 따라붙은 코치는 근육자극제 1을 주사하고 브랜디도 한잔 먹였다. 주자는 정신 차리고 다시 달렸다. 7앞에서 그가 다시 비틀댔다. 연이은 주사 한 방으로 결승선을 기다시피 통과했다. 정신이 오락가락, 서지도 못해 며칠 뒤에 메달을 겨우 받았다. 당시 신문은 이런 보조제는 선수 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도핑천국이었다.

 

1935년 테스토스테론 유사체(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다량 만들어졌다. 의료용이었지만 멀쩡한 사람이 이 주사를 맞고 근육이 늘어나고 힘이 강해졌다. 구미가 당겼다. 운동코치들이다. 1954년 미국 역도팀 의사가 러시아 코치에게 접근한다. “요새 무슨 주사를 맞는다고 하는데 좀 주라”. 스테로이드가 선수들 사이에 마법 주사로 은밀하게 돌기 시작했다. 10주간 스테로이드 먹으면 근육이 2~5증가하고 힘은 5~20% 늘어난다. 근육은 금메달을, 금메달은 평생 부와 명예를 보장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규제를 시작했다. 1960년 후반이다. 하지만 84년 올림픽 참가자의 68%가 도핑했다고 무기명 설문에 답했다. 몰래 주사를 맞는 선수와 이를 잡으려는 반도핑 기관의 쫓고 쫓기는 게임이 시작됐다.

 

 

1904년 여름 올림픽 마라톤 경기 도중 코치가 선두 주자에게 근육자극제를 주사 했다.

 

 

육상스타 벤 존슨과 칼 루이스도 적발

용도별로는 근육·두뇌·혈액·방해도핑으로 구

 

근육도핑은 근육을 늘린다.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계열이다. 주사를 맞거나 약으로 먹는다. 서울올림픽 육상 100m 1등이던 벤 존슨, 2등에서 1등이 된 칼 루이스, 둘 다 모두 사용했다가 적발된 약물이다. 심근경색·뇌졸중·간종양·무월경이 약물의 부작용이다. 도핑검사는 소변·혈액 속의 흔적물질을 찾는다.

 

두뇌도핑에 사용되는 도파민·노니페린은 두뇌 호르몬이다. 이 주사 한 방이면 근육은 탄탄해지고 손발은 민첩해진다. 카페인도 금지됐지만 2003년 이후 풀렸다. 선수들은 이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된다.

 

혈액도핑은 근육에 산소를 더 공급하게 한다. 산소가 많아지면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수혈로 산소 운반 적혈구를 늘린다. 타인이나 자기 피를 몇 주 전에 뽑아놨다가 시합 바로 전날 맞는다. 적혈구를 만드는 물질(EPO)을 주사하기도 한다. 혈액도핑은 마라톤·사이클 등 지구력 게임에 자주 사용된다. 고환암을 이겨낸 사이클 전설 랜스 암스토롱은 7번의 혈액도핑으로 7개 메달을 박탈 당했다. 혈액도핑은 검사하기가 만만치 않다. 다른 사람 피도 아닌 자기 피라면 더 힘들다. 피가 좀 많아진 것뿐 원래 몸 안에 있었던 성분들이다. 현재 검사방법은 혈액 이력제. , 평상시 선수 혈액 조성을 주기적으로 검사해 놓는다. 시합 전후에 이 조성이 변했는가를 조사한다.

 

방해도핑은 도핑약물이 검출되지 않도록 방해물질을 주사하는 것이다. 교묘하게 도핑을 감추겠다는 계략이다. 이뇨제로 소변량을 늘리고 수혈보조제로 혈액수분을 늘린다. 소변·혈액이 희석되면서 도핑약물 검출이 어려워진다. 숨기는 도핑, 찾으려는 반도핑이 숨 가쁘다. 하지만 반도핑 기술은 늘 뒷북을 쳤다.

 

 

사이클 경기(투르 드 프랑스)에서의 도핑 반대시위(왼쪽)와 혈액도핑이 적발돼 메달을 박탈 당한 랜스 암스트롱.

 

서울 올림픽의 꽃 조이너는 도핑의혹으로 수차례 검사를 받았다. 모두 통과했다. 당시 도핑검사는 구멍이 많았다. 채취시간을 미리 공지하면 약 소멸 시간을 계산해서 검사를 피할 수 있다. 실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 29% 선수들이 도핑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시 186073개 샘플 중 적발된 것은 1% 미만이었다. 검사 방법이 못 따라간다는 반증이다. 도핑은 반도핑보다 5~10년 앞서가고 있었다. 특히 선수와 코치는 새로운 물질이 나왔다 하면 귀를 바짝 들이댄다. 성장 호르몬은 키가 작은 아이를 크게 한다. 근육도 커진다. 1991년 미국 제넨텍 생명공학회사에서 상용화했다. 하지만 3년 전인 서울 올림픽 때 이미 도핑한 정황이 있다. ‘주사 10cc2000달러에 금메달리스트 조이너에 팔았다고 폭로했다. 미국 육상팀 동료였던 다렐 다빈슨이다. 하지만 그는 곧 육상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5세에 조기 은퇴 후 정신병원에 다녔고 두 번 자살시도를 했다. 조이너는 검사 방법이 미리 정해진 날짜가 아닌 무작위 샘플 방법으로 바뀌자 돌연 사퇴했다. 주위에서는 그녀가 도핑했다고 하지만 정작 검사는 증거를 못 찾았다. 그 약물의 검사가 가능해진 것은 10년 뒤였다. 도핑기술은 진화한다. 50년대 마약류 암페타민, 70~80년대 스테로이드 (테스토스테론), 1990년대 혈액수혈, 이제는 무슨 기술에 코치들은 눈독을 들일까?

 

 

 언제, 어디서든 혈액·소변 채취

 

2004년 인슐린유사물질(IGF-1) 유전자를 쥐에 집어넣었다. 쥐 근육이 30% 튼튼해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 결과가 보도되자 실험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고교선수 코치였다. 돈을 줄 테니 팀 전체에 그 유전자주사를 맞히자는 전화였다. 어떤 약물을 주사하는 대신 그 약물을 만드는 유전자를 몸에 주사하는 이른바 유전자도핑의 시작이다. 유명학술지 네이처는 치료목적 유전자치료방법이 도핑에 쓰일 경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코치, 선수들이 포기했을까. 독일 육상 코치는 혈액생성(EPO) 유전자주사를 시도한 혐의로 16개월 자격정지됐다. 어디선가 유전자도핑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리우 올림픽위원회는 유전자도핑검사를 선언했다. 하지만 증거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인체의 30억 개 DNA 염기 속으로 들어간 수십 개 염기를 찾아내야 한다. 사전에 DNA정보가 없으면 유전자 검사가 불가하다. 유전자도핑 다음은 뭘까. 지난해 미 일리노이대 연구팀이 중간엽 줄기세포를 쥐에게 주사했더니 근육량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그 연구자에게 코치들의 전화가 가지 않았을까. 도핑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쫓고 쫓기는 도핑과 반도핑 대결에서 리우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위원회 측이 칼을 빼들었다. 최후통첩을 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혈액·소변을 채취한다. 비록 지금은 못 찾더라고 계속 찾아서 10년 뒤라도 모든 메달을 박탈할 것이다’. 4년 전, 8년 전 올림픽 샘플에서 32, 23명 도핑선수를 찾아냈다. 당시는 불가했지만 새로 개발된 검사 덕분이다. 러시아 육상팀이 리우에 참가 못한 이유다.

 

반도핑은 무관용이다. 해구신 들어간 한약 모르고 먹어도 테스토스테론으로 걸릴 수 있다. 알아야 한다. 도핑을 보는 일반인의 눈은 싸늘하다. 조이너 사망 당시 시신 도핑 검사를 하자고 했다. 샘플미비로 불발되었지만 반도핑은 이제 무덤까지 쫓아갈 기세다. 베이컨은 말했다.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히는 것만큼의 치욕감은 없다.” 올림픽의 기본은 페어플레이다. 맨몸으로 맞짱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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