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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에 담긴 과학의 맛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1. 6.

고추장에 담긴 과학의 맛

(전라북도 순창)

 

 

김유정 단편소설 <동백꽃>에 보면 점순네 닭과의 싸움에서 매번 지는 자신의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싸움을 잘 할 것 같다는 믿음으로 장독대에서 고추장을 떠와 닭에게 먹이는 다소 엉뚱한 동심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아이답게 정말 엉뚱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일리가 없는 대목은 아닌 것 같다. 실제 스포츠 분야에선 자신들보다 체구도 작고 체력도 약해보이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 매일 먹는 고추장에 있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엉뚱하게 들리는 이 부분은 직접 임상체험(?)을 통해 얻어진 통계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무더운 여름 무뎌진 입맛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별다른 찬 없이 고추장 하나에 밥을 비벼 한 그릇 뚝딱 한 적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역시 식욕이 떨어질 때면 별미로 고추장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도 소개되었듯이 무수리의 아들 출신인 조선의 21대 왕이었던 영조의 초상화 분석한 전문가들은 영조의 성격이 매우 예민하며 다소 신경질적이었다고 유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조는 정치적인 이유로 늘 불안하고 긴장된 삶의 연속이었으니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학업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초등학생들 위장질환을 호소한다고 하는데, 저런 상황이면 영조 역시 위장질환을 달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실제 <승정원 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영조는 많은 양의 밥을 먹지도 않았을 뿐더러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영조의 입맛을 확 사로잡은 식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순창 고추장이다. 더욱 놀라운 건 영조는 궁 안에서 만든 고추장이 아닌 궁 밖에서 만든(순창지역) 고추장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은 나중엔 한나라의 지엄한 왕이지만 고추장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어쩌면 순혈왕족이 아닌 어머니가 일 잘하고 튼튼한 평민출신의 영조에게 고추장 그것도 지역 고추장이 입맛에 맞았다는 것은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 같다. 사실 고추장에 대한 일화는 영조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 옛날 아버지의 고단함에 입맛을 잃어 밥맛이 없을 때면 밥을 물에 말아 반찬으로 고추장을 한 수저씩 떠드시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셨다. 밥맛이 없다는 누나는 맨밥에 고추장을 쓱쓱 비벼 해치우기도 했다. 또한 고추장에 푸르디푸른 풋고추를 찍어먹으면 상상만해도 없던 식욕마저 돌아올 것 같다. 그렇다면 고추장의 어떤 성분이 입맛을 자극했던 것일까?

그건 바로 고추장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은 고추씨와 껍질에 많이 들어 있다. 이 캡사이신은 체내의 지방을 분해하고 살균작용을 하며 동시에 미각을 자극해 잃었던 식욕을 돌아오게 한다. 캡사이신의 지방분해 효능은 여성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면서 캡사이신 다이어트라는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스트레스 받으면 매운 맛을 찾는 사람이 많다. 현대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얼큰하고 매운맛을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왜 스트레스와 매운맛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그 이유가 입술과 위가 아픈 정도의 매운 맛을 먹고 나면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데 여기에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우리가 흔히 사랑에 빠지거나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면 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이 아드레날린은 심장박동을 높이고 혈액의 흐름을 원만하게 하여 모세혈관을 수축시켜 에너지 대사를 높인다고 알려졌다. 사랑에 빠질 때 느껴지는 행복감 도취감도 이런 현상의 일종일 수 있다. 말하자면 극도의 흥분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거나 흥분상태가 아니어도 사람이 캡사이신을 섭취하면 이와 같은 성분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뇌신경을 자극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맵지만 자꾸만 더 매운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먹는 현상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피로회복과 괴혈병 예방에 좋은 비타민 C가 고추에 들어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텐데, 사실이다. 고추 한 개에 들어 있는 비타민은 귤의 2, 사과의 약 30배가량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추장을 만들었을 경우 이 영양성분들은 어떻게 될까?

삼국시대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고추장은 삶은 콩을 으깨어서 메주를 만들어 일정기간 숙성시킨 다음 소금물에 띄워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대표하는 여러 발효식품 중에 하나다.

 

자 그렇다면 순창 지역은 왜 고추장으로 유명할까? 순창은 고추장의 고장으로 그 명성을 조선중기에 이미 얻어냈다. 상기한 데로 영조의 사랑까지 받은 순창은 지역 특성상 기후가 습하여 사계절 내내 습기가 많다. 이 습한 기후는 고추장의 발효균이 활성화 되는 것에 큰 작용을 하여 고추장의 맛이 더욱 깊고 풍부해 지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

 

또한 고추장을 하면 미생물을 빼 놓고 얘기 할 수 없는데, 고추장이 발효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하는 고초균과 효모균의 발효 미생 균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큼큼한 향의 메주를 볼 수 있었는데, 손주들에게 늘 관대하셨던 할머니도 이 메주만큼은 귀하여 여기셔서 한창 개구진 손주들에게서 메주를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놀이 행동반경이 메주가 있는 방 쪽으로 향할 때면 늘 서릿발 가득한 으름장을 먼저 놓곤 하셨다. 고초균은 바로 이 메주균의 일종으로 메주 겉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거미줄 곰팡이가 아닌 메주 안에 있는 미생물 중의 하나로 메주의 독특한 냄새를 내고 콩의 주 성분인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해주어 장의 깊은 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어린 우리 형제들은 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메주가 모셔져(?)있던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최근 한국식품연구원 발효식품연구센터에서 우리나라 전통장류 미생물 지도를 완성했는데,

우리나라 전통 장류에서 혈당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미생물을 발견하고 이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점점 서구화되어지는 식습관으로 인해 당뇨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이런 만성질환자들의 건강관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 발효음식인 고추장 안의 작은 미생물이 건강을 지키는 키워드였던 것이다.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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