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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미있는 바이오이야기/(6)사이언스올(창의재단) 바이오에세이

막걸리 한 잔에 고단한 삶 잠시 쉬어 갑니다.

by 바이오스토리 2014. 10. 6.

막걸리 한 잔에 고단한 삶 잠시 쉬어 갑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심부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누런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아오던 막걸리 심부름이 떠오른다. 행여나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스레 걷는 모습은 오간데 없이 중간에 슬그머니 주전자에 입을 대어 한 모금 맛보았던 그 달콤하고 텁텁했던 맛. 그 맛을 형제들이 알았는지 막걸리 심부름은 으레 서로 가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돈다.

 

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술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없다. 이름 또한 멥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뒤, 그대로 걸려냈다고 해서 막걸리라 불리는데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의 이름은 말 그대로 집집마다 키웠던 누렁이, 똘똘이, 개똥이처럼 우리에게 친근하다. 지금의 막걸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량화로 인해 모든 과정이 기계화되어 만들어지는게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뜨거운 술밥을 쪄내고 누룩을 섞어 직접 손으로 일일이 빚어 만들어내곤 했다. 군것질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 막걸리를 만드는 날은 아이들이 어머니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막걸리를 걸러내고 난 후의 술 찌꺼기를 한주먹씩 얻어먹었던 것이 생각나곤 한다. 그러다 코끝이 빨개지면서 술기운이 올랐던 녀석도 있었다. 같은 나물을 무쳐도 만드는 이의 손맛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듯 막걸리 또한 만드는 이의 정성과 손맛에 따라 다양한 맛과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옛날에는 각 집 각 고장의 막걸리는 모두 조금씩은 다른 맛을 냈다. 이름도 탁주(濁酒)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 다양하게 불렸다.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도 약 6~7도 정도로 술치고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독하지 않아서 더 서민과 친밀함을 나눴던 막걸리는 바쁜 농번기 들일을 하는 일꾼들의 식사를 대신 해 주기도 했는데, 논두렁 밭두렁에 삼삼오오 마주 앉아 막걸리에 김치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며 미처 끝나지 않은 들일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허기진 배를 잠시 달래주는 좋은 요깃감이었다. 사실상 순수 쌀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밥 한공기와 버금가는 높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성인 기준으로 밥 한 공기 칼로리를 250로 봤을 때, 막걸리 한 병 대략750을 기준으로 315의 열량을 낸다고 한다. 지금이야 먹을거리도 흔하고 식간에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지천에 깔렸다지만 당시에는 투박한 공기에 가득 부어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한 끼 식사보다 더 든든했으니 한참 농사일에 힘들 때 광주리에 이고 오는 아낙의 새참은 그래서 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막걸리는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쌀밥(탄수화물)의 에너지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가 몸을 움직일 때 사용되는 에너지로 쓰이는 것이 아닌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일상생활 속 에너지로 자연 소모 된다고 한다. 나의 친한 동료 중에 애주가가 있는데, 항상 하는 말이 술 배, 밥 배 따로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다짐한 여성들의 변명처럼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라는 같은 맥락으로 느껴지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닌, 어느 정도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막걸리 안에 들어 있는 트립토판 성분과 메티오닌은 우리 몸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아주어 살이 찌는 것을 막아주는 성분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 어르신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했던 막걸리 애찬에 들어가 보자.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활성효모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 활성효모는 우리 몸의 소화효소 작용을 돕는 필수 요소 중에 하나이다. 뿐만 아니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젖산은 우리 몸에 각종 병원균과 유해세균이 만들어 지는 것을 제지하고 장 내 이로운 유산균을 증가시켜 준다. 막걸리에 함유되어 있는 유산균의 수는 요구르트 500병 안에 들어 있는 유산균에 버금가는 양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막걸리의 놀라운 효능이 발표되었는데 바로 항암효과.

 

몇 해 전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막걸리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맥주, 와인, 사케 각종 외국주류 속에서 점점 우리의 전통술인 막걸리를 찾는 이가 없었던 시절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막걸리에는 항암물질이 포도주의 25배 이상 많다.’ 라는 소식이 발표되면서 잠시 잊혀져가던 막걸리가 다시금 붐을 일으킨 것이다. 막걸리가 아무리 알코올 도수가 낮다고 하지만 막걸리는 엄연한 술이다.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 가면 진료 후 의사들은 심중팔구 , 담배 안 됩니다.’라며 말하는데 정말 막걸리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말이 사실일지 의아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막걸리에 함유되어 있는 파네졸이라는 성분을 주목 해 볼 필요가 있는데 아직 파네졸의 항암성분에 관한 이론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과음하지 않고 적정 양을 마신다면 항암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피부미용과 맑은 피부를 가꾸기 위해선 비타민B가 들어 있는 음식을 섭취 해 주는 것이 좋은데, 막걸리에 들어있는 단백질과 비타민B는 피부색을 혈색 있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막걸리에 소량으로 들어 있는 알코올 성분이 피부세포를 거들어 피부트러블을 예방하고 피부에 쌓이는 노폐물을 사라지게 해 준다.

 

어릴 적 과식으로 인한 체기가 있을 때 항상 할머니는 막걸리를 대접 바닥이 살짝 안보일정도로 따라 마시게 한 적이 있었다. 이게 무슨 희귀한 상황인가 싶을 텐데, 놀랍게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 시큼한 트림이 올라오면서 체기가 사라졌다. 막걸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효소인데, 이 효소가 바로 곰팡이 종류의 누룩이다. 이 누룩은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 옛날 어르신들의 과학적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요즘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막걸리 투어이다. 맥주하면 독일, 사케 하면 일본이 먼저 생각나는데, 이제 막걸리하면 한국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막걸리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지역은 바로 경기도 포천, ‘이동막걸리. 1987년 향토 음식으로 지정된 포천 이동막걸리는 술을 빚는데 사용하는 물부터가 특별하다. 암반 200m 지하의 화강암 광천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신맛, 쓴맛, 쌉쌀한 맛 등 세 가지 맛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듯 톡 쏘는 청량한 맛이 일품이다. 막걸리는 김치나 장류처럼 발효식품에 속하는데, 이 발효식품들은 어떤 용기에 보관하는지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천 이동막걸리는 완성된 막걸리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금속제제 탱크에 보관하는 것이 아닌 옛 방식인 항아리에 보관한다. 항아리는 유약을 바르지 않기 때문에 기공이 닫혀있지 않아 공기가 잘 통해 오랫동안 곡식을 저장해 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런 항아리에 막걸리를 보관하면 막걸리 속에 있는 미생물이 발효되는 과정에 필수요소인 공기와 풍부한 산소에 의해 발효가 잘 이루어져 이동막걸리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현재 포천에는 막걸리 관광홍보관이 있다고 하는데, 이 가을 포천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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