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67> VX보다 100배 센 보톡스, 근육 마비시켜 주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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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X보다 100배 센 보톡스, 근육 마비시켜 주름 쫙~

 

VX보다 100배 센 보톡스, 근육 마비시켜 주름 쫙~

독의 과학

 

1 VX 신경작용제(화학무기). 북한은 3000~5000t 보유하고 있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공항 로비. 여성 두 명이 한 남자 얼굴에 무언가 바르고 도주했다. 남자는 공항 의무실에 걸어간 지 30분 만에 숨졌다. 1994년 일본 도쿄 거리. 한 남자 목에 액체가 뿌려졌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얼마 후 사망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얼굴, 목 등 피부에 액체가 뿌려졌고 널브러진 형태로 사망한 점이다. 모두 신경 독극물 ‘VX’에 의한 것이었다. VX는 화학무기로 사용된다. 하나는 북한군에서, 다른 하나는 광신집단 옴진리교에서 만들었다. 30분 만에 죽게 하는 또 다른 물질이 있다. 킹코브라 독이다. VX와 똑같이 신경 차단, 근육 무력화, 질식,사망을 부른다. 모두 섬뜩한 독들이다. 역설적으로 이 독들은 사시(斜視) 교정, 주름 제거, 치매 치료에 쓰이는 기특한 놈들이기도 하다. 독의 두 얼굴을 들여다보자.

 

VX는 신경전달 물질 분해 방해

보톡스는 아예 못 나오게 봉쇄

비정상적인 근육 수축 막아

뱀독은 치매 치료에 쓸 수 있어

2200만 거미 독서 신약 찾기 한창

 

 

 

너무 독한 살충제, 화학무기로 변신

2 사린가스 탑재 미사일 포탄. 1943년 미 육군 보유 당시 사진.[위키미디어]

 

1988년 이라크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스커드 미사일 39발이 날아들었다. 민간인을 학살한 이라크 화학무기 사용 소문이 확인된 직후였다. 미사일 불발이 많아서 2명 사망에 그쳤지만, 병원 치료자는 1000명이었다. 신경작용제 VX에 노출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겁먹고 치료제인 아트로핀 주사를 맞은 탓이다. VX는 공포, 그 자체다. VX는 포탄, 미사일에 실려 에어로졸 형태로 퍼진다. 10㎎이 치사량이다. 10㎏이면 계산상 100만을 죽게 할 수 있다. 북한의 VX 공격 시 민방위 요령대로 방독면, 물수건으로 밀폐공간에서 에어로졸을 피해야 한다. VX는 원자탄처럼 실험실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1952년 영국 화학자 라나지트 고쉬는 살충제 ‘아미톤’을 합성했다. 하지만 너무 독해서 뿌리는 사람도 위험했다. 사용을 포기했다. 이 첩보를 영국군 연구소가 놓치지 않았다. 암호명 ‘자색 쥐’인 화학무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V(Venom·독)계열 중 가장 독성이 강한 VX가 탄생했다. 미국은 원자탄제조 정보를 VX 제조법과 맞교환했다. 1997년 기준으로 총 21만t의 VX가 세계 각국 무기창고에 비축됐다. 화학무기는 가격대비 성능이 높다. 화학을 조금 공부한 정도면 만든다. ‘빈자(貧者)의 핵무기’다. 독일 테러집단 ‘붉은 군대’, 일본 광신사이비 옴진리교도 만들었다. 1995년 일본 지하철에 뿌려진 ‘사린’은 가스형태 신경작용제다. 군인, 민간인 구분도 않는 비인도적 ‘위험천만’ 화학무기 폐기가 1969년 시작됐다. 폐기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북한은 현재 VX 포함 3000~5000t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영화 ‘더 록(1996년, 미국)'에는 VX가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VX가 얼굴을 녹이지만 실제는 표식이 나지 않는다. VX는 엔진 오일 같다. 액체, 에어로졸로 눈·코·입·모공으로 쉽게 온몸에 퍼진다. VX는 근육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분해를 방해한다. 아세틸콜린은 신경세포말단에서 분비되어 근육세포를 움직인 후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돼야 근육이 원상복귀된다. 이 분해효소에 VX가 찰싹 달라붙어 아세틸콜린이 분해되지 못한다. 그 결과 비정상으로 높아진 아세틸콜린 때문에 근육세포는 계속 급속 진동, 이온균형이 깨지고 결국 모든 근육은 축 늘어지고 정지된다. 호흡근육도 정지, 질식사한다.

 

VX보다 100배 강한 독이 있다. 보톡스다. 1급 생화학무기다. 상한 통조림, 고기에서 병원균(보톨로리움)을 만든다. 끓이면 없어지는 단백질 독소다. 이 독소가 사람을 죽이는 작용은 VX와 같다. 즉 근육세포 무력화다. VX가 신경전달물질 분해를 방해한다면 보톡스는 아예 전달물질들이 신경세포에서 못 나오게 한다. 신호가 없으니 근육이 정지, 질식사한다. 병원균은 동물에 침입, 보톡스로 근육을 무력화시켜 죽인다. 동물사체가 최적 번식처이니 병원균 나름대로 맹독은 최고 생존수단이다. 동물들의 생존수단 맹독이 인간에게는 때로 약이 된다. 가끔 대박도 친다.

 

 

협심증用 비아그라, 엉뚱한 혈관 확장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로 만들려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엉뚱한 곳 혈관을 확장시켜 남성고민을 해결했다. 소 뒷걸음에 파리 잡기다. 보톡스 미용주사도 ‘우연한 행운’이다. 보톡스는 근육을 마비시킨다. 이를 역이용해서 비정상 근육수축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눈 근육 이상인 사시(斜視)를 교정하고 심한 눈꺼풀 떨림 현상을 치료했다. 아세틸콜린 과도자극으로 생기는 다한(多恨)증도 치료한다. 독을 약으로 쓴 셈이다. 이 보톡스가 로또를 맞았다.

 

보톡스. 가장 강력한 병원균 독이지만 질환치료, 미용주사로 쓰인다.

 

1989년 미 성형외과 의사 리차드 클락은 안면근육 이상 환자에 보톡스를 주사했다. 그러자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 웃을 때 근육수축으로 생기던 주름이 근육마비로 없어졌다. 이제 보톡스는 주부부터 대통령까지 누구나 쉽게 선택하는 미용주사 1순위가 됐다. 미용주사 사용량은 치사량의 수백분의 일이다. 이른바 호르메시스(Hormesis)이론, 즉 미량의 해로운 물질 자극이 인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다. 식사 반주, 약간의 스트레스, 미량 독이 그 예다. 1880년 독일에서 처음 발표됐다. 하지만 이미 기원 전 의학고서 ‘마왕퇴의서’에는 닭고기에 벌침을 쏘여 아픈 부위에 붙였다고 했다. 이독치독(以毒治毒), 즉 독으로 독을 치료하기다. 벌침의 붓는 작용, 즉 염증유발물질을 미량씩 반복공급해서 환자면역을 훈련, 증가시키는 원리다.

 

독(毒) 글자는 머리에 특이한 모양 비녀를 꼽은 여성(母)모양이다. 무당이나 기생이 화려하게 머리를 꾸며 남자를 유혹하고 규범을 해친다는 ‘독하다, 해치다’로도 해석한다. 독은 뱀을 떠 올린다. 뱀은 사악함의 대명사다. 어미까지 잡아먹는다는 패륜아 살모사(殺母蛇)도 있다. 하지만 10마리 새끼를 낳다가 기진맥진한 어미 곁에 올망졸망 모여든 갓난 새끼들일 뿐 이놈들이 어미를 죽이는 패륜아는 아니다. 독은 새끼를 먹여 살리려는 사냥도구일 뿐이다. 독(毒) 글자를 다시보자. 비녀가 아닌 새끼들을 머리에 짊어진 어미(母)모양에 가깝다.

 

뱀독은 신약 개발 원료의 보물창고다. [위키미디어]

 

성경 창세기 속 뱀은 순진한 이브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하는 악마다. 하지만 숲속 뱀은 유혹은커녕 발자국 소리에 도망가기 바쁘다. 연약한 골격을 가진 뱀의 유일한 무기는 독이다. 오랜 기간 진화하면서 뱀은 독을 첨단화했다. 독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외부 유전자가 아닌 뱀 내부유전자들을 변형했다. 침 속 소화용 분해효소를 먹이분해 독효소로 변화시켰다. 뱀독에는 수십~수백 종 성분이 있다. 대부분 효소, 즉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유전자에서 한 번에 만들어지니 독 변종이 쉽게 나오고 그만큼 빨리 진화할 수 있다. 최첨단 뱀독에는 무슨 기능들이 숨어 있을까.

 

아세틸콜린 분해 막는 게 치매 치료제

신경독 작용원리. 운동전기신호(녹색화살표)가 신경세포말단에 도달하면 주머니 속 아세틸콜린(적색점)이 분비되고 근육 수용체에 달라붙어 근육세포를 운동시킨다. 보톡스는 아세틸콜린분비를, VX는 분해를 각각 막아서 모두 근육을 마비시킨다. [위키미디어]

 

독사가 먹이 잡는 방식은 다양하나 원칙은 하나다. 독 이외에 별다른 방어책이 없으니 역공을 당하면 안된다. 어떤 독사는 한번 물고 나면 상대로부터 멀리 떨어진다. 독 속 추적물질로 먹이가 죽을 때까지 추적한다. 독 속 혈액응고방지제는 피가 멈추지 않게 한다. 먹이를 일찍 죽이고 추적을 쉽게 한다. 또 다른 비밀병기는 독 확산제다. 먹이를 물었을 때 독이 금방 퍼져 기절하지 않으면 거꾸로 위험해진다. 확산제는 먹이의 피부장벽을 분해시켜 독을 빨리 퍼트린다. 과학자들은 독 확산성분을 다른 약으로 변신시켰다. 이 독·약은 치과 마취주사에도 들어있다. 치과 치료 시 마취주사가 잘 안 들으면 누가 더 답답할까? 의사가 더 곤란해진다. 빨리 마취가 돼야 치료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독확산제 성분은 마취주사에 함께 사용된다. 실제 의료용 주사확산제는 위험한 뱀독에서 분리하지 않고 확산제 유전자를 삽입한 효모에서 생산한다.

 

뱀독은 치매, 파킨슨 치료에 쓸 수 있다. 치매는 뇌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아세틸콜린 분해를 막을 수 있는 물질은 치매치료제다. 뱀독, VX 모두 아세틸콜린 분해를 방해해서 근육을 무력화했다. VX는 독성이 너무 강하다. 뱀독은 치매치료제 대상이지만 다른 독성분이 포함되면 위험하다. 대신 필요한 성분을 유전공학방법으로 생산, 사용한다.

 

뱀독에서 신규치료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한창이다. 2016년 저명학술지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신약물질 후보 2개가 발표됐다. 하나는 남미 살모사 독의 치매치료제다. 이 물질은 두뇌 비정상 아밀로이드 덩어리를 분해한다. 먹이를 분해하던 물질이 치매 아밀로이드 분해에도 쓰인다. 다른 하나는 호주 너구리 독에서 새로 찾은 2형 당뇨병 치료제다. 이놈은 췌장 인슐린 조절제(GLP-1)와 달리 안정해서 인슐린이 장기간 일하게 만든다. 너구리 수컷끼리 싸울 때 내뿜는 독 속에 왜 인슐린 조절제가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독에는 다양한 미지 물질들이 있다. 독 속 보물은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다. 지구상 4만6000종 거미들이 생산해내는 독성분만 2200만 종류다. 미 국립의학연구소(NIGMS)는 이 독들을 파헤치는 신약개발연구를 시작했다. 거미 독에서 보톡스보다 더 강력한 신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 이놈을 살인무기로 쓸지, 질병치료제로 쓸지는 인간 몫이다.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이 그걸 어떻게 쓰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