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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1)인체 건강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43> 비타민D 위해 햇빛 쬐던 습관 인간의 ‘선탠 중독’ DNA로 변화

by 바이오스토리 2015. 7. 20.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비타민D 위해 햇빛 쬐던 습관 인간의 ‘선탠 중독’ DNA로 변화

자외선의 과학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436호 | 20150719 입력
햇빛은 두뇌에 즐거움을 주는 엔도르핀을 만들어 선탠 중독을 일으킨다. [셔터 스톡]
갓 태어난 아이의 엉덩이에는 푸른 반점이 있다. 삼신할매가 엄마의 뱃속에서 어서 나가라고 엉덩이를 세게 두들기는 통에 생겼다는 ‘몽고반점’이다. 이 반점은 4~5살이면 없어진다. 반면 입가에 난 점은 밥을 잘 먹을 상이고, 코의 점은 미인점이라 하여 일부러 놔둔다. 하지만 점 중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피부암으로 생기는 점이다. 특히 전이(轉移)가 잘 되는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은 전이될 경우 5년 생존율이 15% 미만으로 미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다. 그동안 피부암은 백인에게만 생기는 암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국내 피부암은 44%나 늘어났다. 야외 여가 활동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햇빛의 위험성을 모르는 탓이 더 크다. 매일 만나는 햇빛이지만 여름엔 세기가 더 강해진다. 흑색종은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떤 차림으로 나들이를 해야 가족들이 피부암을 피할 수 있을까.

보통 점과 비교한 흑색종(악성 피부암)의 특징. 왼쪽부터
1 비대칭이다.
2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3 여러 가지 색이 섞여있다.
4 크기가 6㎜ 이상이고 모양크기가 변한다.
피부 검게하고 주름 만드는 자외선
안과의사 집안의 지인이 있다. 그는 자동차 뒷좌석에서도 선글라스를 낀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의 등산길에도 선글라스 착용을 잊지 않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눈동자의 필름에 해당하는 황반에 변성이 생기면 실명(失明)하게 되는데 자외선이 주범이다. 눈의 각막·망막에 염증도 일으킨다. 흐린 날도 자외선 세기는 크게 줄지 않는다. 자외선은 A, B, C로 구분된다. 짧은 파장의 C는 성층권 오존층에 흡수되어 지상에는 없다. B는 유리를 통과 못하지만 A는 통과한다. B를 ‘레저 자외선’, A를 ‘생활 자외선’이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A도 B만큼 위험하다. 운전석에서도 피부가 검어지고 주름이 생긴다. 긴 파장의 A는 피부의 아래 진피층까지 침투해서 콜라겐·엘라스틴을 부숴 주름을 만든다. 파장이 짧아서 깊게 침투 못하지만 에너지가 강한 B는 표피층의 세포 DNA를 변형시켜 피부암을 만든다. 피부에 암이 있다고 사람이 죽을 것 같지 않는데 왜 목숨을 잃는 걸까.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생이던 글레나 콜(26·여)이 악성피부암으로 숨졌다. 3년 전 다리에 생긴 점을 ‘별 것 아니다’라고 오진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허벅지 안쪽에 멍울이 만져질 때는 이미 전이가 시작된 때였으며 채 4년을 견디지 못했다. 피부암의 시작은 대부분 자외선이다. 자외선으로 피부 DNA속에 나란히 있던 T(티민) 염기 두 개가 서로 달라붙어 T-T로 변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발암의 원인이 된다. 이때 간여하는 유전자는 ‘p53 암억제’ 유전자다. 즉 자외선 피해는 발암 과정과 동일하다. 각질 세포가 변해 생기는 기저세포암·편평세포암은 조기 진단 시 95% 완치된다. 피부 검정 색소인 멜라닌을 만드는 ‘멜라닌세포’가 변해버린 흑색종(melanoma) 역시 조기 진단 시 치료율이 높다. 반면 다른 장기에 전이될 경우 생존율은 15% 미만이다. 왜 이렇게 독해 질까.

지난 4월 ‘미국공공도서관학술지(PLos One)’에는 흑색종을 포함한 초기 암이 어떻게 다른 장기로 전이되고 왜 독해지는지 발표됐다. 피부껍질에만 있던 암세포는 주위 환경이 나빠지면 ‘살 만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궁리를 한다. 새로운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흑색종은 인체 곳곳을 돌아다니는 면역세포를 모방한다. 면역세포의 ‘이동신호물질(CXCR3)’을 흑색종도 새로이 장만한다. 그리고 이 물질을 이용, 피부에서 폐·간·뇌로 전이된다. 전이가 된 놈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다. 웬만한 항암제 공격에도 살아남는다. 따라서 최선의 치료방법은 조기발견·치료하는 것이다. 피부암은 다행히 눈에 잘 띈다.

지난 5월 미국 켄터키주의 간호대 학생인 토니 윌로우(27·여)가 피부암에 걸린 본인의 얼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흑색종은 일반 점과는 다르다. 즉 비대칭, 불분명한 경계선, 여러 가지 색깔, 6㎜ 이상 크기 그리고 형태가 변하는 특성이 있다. 물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흑색종도 있으니 비정상적인 반점이 나타나면 일단 피부과를 찾아야 한다. 국내 피부암 발병률은 위암의 10%로 10만 명당 20명, 그 중 흑색종은 6명이다. 조기 진단시 쉽게 치료되지만 일단 전이되면 생존율은 급감한다. 따라서 평상시 피부의 ‘비정상’ 반점을 잘 살핀다면 크게 걱정할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는다. 자외선이 피부암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웃통을 벗어 제치고 선탠을 계속 하는 것일까. 그만 둘 수 없는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선탠에 중독되면 다른 유혹에도 취약
흑색종을 오진해 결국 숨진 불운의 여대생 글레나 콜은 집안 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한 여성이었다. 단지 그녀가 해변과 실내 태닝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미국 식품의약안전청(FDA)은 인공선탠이 피부암을 유발하며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 그 위험도는 60%나 증가한다는 사실을 경고해 왔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 대학생의 59%는 인공 선탠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흑색종으로 진단된 여성 중에서 6%가 암 선고 후에도 인공 선탠장을 계속 다닌다는 사실이다. 죽음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렇게 인공선탠에 집착하는 걸까. 놀랍게도 선탠은 ‘중독’을 일으킨다.

최근 유명학술지 ‘셀(Cell)’은 선탠이 뇌에 엔도르핀을 만들어서 중독에 걸리게 한다고 발표했다. 즉 담배나 술처럼, 선탠을 하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자주 벗고 눕게 한다. 과학자들은 뇌의 중독성 쾌락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선탠 중독유전자 (PTCHD2)’를 발견했다. 하나에 중독되는 사람은 다른 것에도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선탠을 자주하는 사람들이 알코올이나 마리화나에 많이 중독돼 있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선탠을 할 때 빛에서 자외선만을 일부러 빼면 금방 알아차릴 만큼 자외선에 민감하다. 자외선은 검정 색소(멜라닌)를 만들고 동시에 엔도르핀을 만들어서 기분을 황홀케 한다. 그래서 피부암이 생길 정도로 선탠을 즐기게 된다고 최근 밝혀진 것이다. 왜 인간이란 동물은 피부에 자외선을 쬐도록 진화했을까. 과학자들은 피부에 의한 비타민D 생산을 그 이유로 추측한다.

필자는 프랑스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남부 해안지방을 들른다. 니스 해변은 지중해의 넘실대는 흰 파도로 눈이 부시다. 게다가 벗어젖힌 반나체의 사람들로 그나마 눈 둘 곳이 마땅치가 않다. 이들이 비타민D를 못 구해서 해변에 누워 ‘자체 생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햇빛을 즐기고 몸을 구릿빛으로 만들려는 ‘현대’ 유럽인이다. 반면 오래 전 인류조상들에게 비타민D는 필수였다. 이것이 부족하면 칼슘 섭취가 안 돼 뼈가 약해진다. 그 결과 아이들은 다리가 휘어져 안짱다리가 되는 구루병, 어른은 치명적인 골다공증에 걸린다. 살아남으려면 피부로 비타민D를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비타민D를 만드는 선탠 행위가 즐거워야 했다. 이런 이유로 선탠이 중독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지금은 비타민제 한 알이면 충분하다. 니스 해변에 누운 이들은 비타민D 때문이 아니라 엔도르핀이 주는 안락한 쾌감과 건강미의 갈색피부를 위해 해바라기가 된다. 하지만 태양은 그리 달가운 존재만은 아니다.

야외·실내 태닝은 모두 피부암 유발인자다. 가리거나 차단제를 사용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자외선 차단제 기능 잘 알고 발라야
최근 국내 해수욕장이나 야외풀장의 풍속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중년 그룹은 예전과 같이 모두 햇빛을 피해 도망가는 반면 햇빛에 벌렁 눕는 젊은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햇빛에 눕는 이유는 유럽인들이 햇볕을 찾는 이유와 같다. 즉 멋있어 보이는 갈색피부로 변하고 싶어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얼굴은 가린다는 점이다. 갈색 얼굴보다는 갈색 바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빅데이터 분석결과, ‘태닝’이란 단어는 ‘TV 연예인’과 직결돼 있다. 이들의 초콜릿 복근, 그을린 갈색 몸매가 ‘섹시함의 상징’이 되고 있다. 해변에 갈 시간이 없는 젊은 여성들은 실내 인공 태닝장을 찾는다. 태닝은 건강에 좋다는 태닝 업소의 과장 선전도 태닝 증가 추세에 한몫 한다. 반면 한국인의 자외선 지식 수준은 유럽인들에 크게 못 미친다. 미국 FDA는 피부암 발생이 급증하는 청소년의 태닝장 출입을 경고했다. 갈색몸매를 원한다면 태닝 대신 피부의 색을 인공적으로 바꾸는 게 낫다. 피부각질층과 반응해서 갈색을 내는 물질(DHA)이 FDA 승인제품이다.

야외라면 그늘에서도 20~30% 자외선을 각오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차단은 긴 소매 옷을 입는 것이다. 차단제의 태양차단지수(SPF, Sun Protection Factor)는 차단가능시간을 알려준다. 즉 SPF 30은 홍반(피부염증)을 일으킬 때까지의 시간을 30배 늘린다는 의미로 30×15분=450분(7시간30분) 동안 차단한다. SPF 20,30,40의 자외선 B 차단효율은 각각 95%, 96%, 97.5%다. 따라서 자외선에 극히 예민한 피부가 아니라면 SPF 30 이상이면 충분하다.

자외선 A의 차단능력(PA)을 표시한 상품도 나온다. PA++ 이상 정도면 충분하다. 사용자들이 정작 주의해야 할 것은 SPF숫자가 아니라 사용량과 재보충이다. 얼굴에는 500원 동전 정도의 양을 ‘듬뿍’ 사용해야 하고 두 시간마다 다시 발라야 한다. 또 물에 씻기지 않는 방수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자외선이 완전 차단된다면 야외활동만큼 사람의 기분을 끌어올리는 것은 없다. 흐린 날은 더 우울해진다. 실제 뇌의 활동도를 PET(양성자단층촬영)로 보면 햇빛이 많은 여름철에 겨울보다 더 활발해진다. 또한 햇볕이 줄어들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채근담(菜根譚)’에는 “바람과 비가 개고 햇볕이 따스하면 초목도 기뻐한다. 인심(人心)도 마찬가지고 기쁨을 저버릴 수 없다. 자연의 본래의 모습은 생기에 가득 차 있다”라고 했다. 햇빛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자연의 값진 선물인 햇빛을 안전하게 즐기자.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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