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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5)바이러스 환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42> 고체온에 집단 생활하는 박쥐 독종 바이러스 ‘양성 훈련장’ 역할

by 바이오스토리 2015. 7. 13.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고체온에 집단 생활하는 박쥐 독종 바이러스 ‘양성 훈련장’ 역할

<42>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433호 | 20150628 입력
박쥐 몸에서는 고온과 독성물질 공격에도 견디는 변성 바이러스가 길러진다.
조선시대에는 ‘호환 마마!’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뚝 그쳤다. 당시는 제일 무서운 것이 호랑이(호환;虎患)였다. 태종 때에는 경상도에서만 석 달 동안 수백 명이 물려 죽었다. 빚이 많은 사람이 잠적하는 수법에 호랑이를 써 먹었을 정도다. 즉, 자기 옷을 찢고 피를 묻혀 산에다 놓으면 호랑이에 물려죽은 줄로 속을 만큼 호환이 많았다. 호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마(媽媽), 즉 천연두였다. 왜 마마, 즉 임금이라는 극존칭을 썼을까.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신의 위치에 있는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온몸에 고름 잡혀 죽거나 설사 살아남아도 얼굴이 얽게 된다. 즉 ‘밧줄이 얽힌 얼굴’이란 어원의 ‘박색(薄色)’이 되다보니 천연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 행여 비위를 거슬릴까봐 ‘마마’로 대접해 어서 가시라고 했다.

당시 유럽을 초토화하던 천연두 바이러스에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위관료들의 초상화 중 곰보자국이 적지 않게 보일 정도였고 서민들은 열에 두셋은 죽어나갔다. 이들을 살린 것은 종두법, 즉 백신이었다. 조선말기 일본통신사를 따라갔던 지석영이 종두법을 배워 와서 친척 아이에게 직접 주사했다. 가족의 위험을 무릎 쓴 용기 덕분에 사람들은 천연두 바이러스에서 벗어나게 됐다. ‘작은 마마’로 불리던 홍역(紅疫)도 고통이 심했다. 오죽하면 ‘홍역 치룬다’는 말이 생겼을까.

바이러스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 속에 들어가 살고 있다. 천연두를 포함해서 바이러스는 간간이 인류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사스(SARS·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조류인플루엔자(AI)·신종플루 그리고 최근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바이러스의 잦아진 공격이 심상치 않다. 메르스가 속한 코로나바이러스 집안은 지난 30년 동안 감기 정도만을 일으켰다. 그런 놈들이 지난해 중동에서는 감염자의 40%를 사망하게 만들었다. 지금 한국은 메르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바이러스가 지구촌 곳곳에서 창궐한다. 왜 그 놈들은 점점 더 독해지고 극성스러워 지는 걸까. 바이러스 대폭풍의 전야(前夜)일까. 지구촌은 다가오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백신은 필요할 때에 충분히 있는 걸까.

본래 메르스는 감기만 옮기는 ‘순한 놈’
‘진짜 사나이’라는 MBC 인기 예능프로가 있다. TV 스타들이 군부대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진짜 사나이’, 즉 강한 체력의 소유자가 결정적으로 걸러지는 곳은 유격장이다. 유격장에서는 먼저 ‘피티 체조’로 몸을 푼다. 체조라기보다는 기합에 가까워서 벌써 다리가 풀리고 지레 넋이 빠진다. 이어지는 장애물에서는 속속 낙오자가 발생한다. 강한 사람만이 로프를 타고 물웅덩이를 건너고 계곡을 지나고 화생방 훈련장에서 살아남는다.

바이러스도 진화하려면 다양해지고 독해져야 동물의 몸속에서 살아남는다. 바이러스의 훈련장은 어딜까. 에이즈·사스·메르스를 이야기 할 때면 꼭 등장하는 놈이 있다. 박쥐다. 괴기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그 중 뱀파이어 박쥐(Vampire Bat)에 물리면 사람이 뱀파이어, 즉 흡혈귀로 변하게 된다. 물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박쥐에 물리면 에이즈·사스·메르스에 걸리게 된다.

박쥐가 ‘진짜 바이러스’를 키우는 유격훈련장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박쥐는 수가 많다. 세상의 포유동물 중에서 쥐 다음으로 수가 많아서 ‘바이러스 온상’이다. 게다가 동굴에서 같이 뭉쳐 살다보니 서로 바이러스 전달도 쉽다. 물론 들쥐도 바이러스 온상이다. 하지만 박쥐가 들쥐보다 '진짜 바이러스' 훈련장인 둘째 이유는 박쥐의 체온이다. 박쥐는 날기 시작하면 체온이 무려 40도까지 올라간다. 박쥐가 날면 평상시보다 대사속도가 16배 높아지기 때문이다. 쥐의 7배, 새의 2배나 된다. 이런 고온의 박쥐 체내에서 ‘진짜 바이러스’, 즉 열에 강한 독한 놈들만 살아남는다. 더구나 우리를 괴롭히는 에볼라·사스·조류인플루엔자·메르스는 모두 변종을 잘 만들어내는 RNA 바이러스다. 별별 이상한 놈들이 다 만들어지니 그 중에서 열에 견디는 독종이 나올 확률이 더 많다.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난다. 열에 약한 침입자 바이러스를 죽이려는 몸의 자구책이다. 하지만 ‘진짜 바이러스’로 선발된 독종들은 인간의 고온 작전에도 끄떡없다. 게다가 16배나 높아진 박쥐의 대사속도는 독성물질인 ‘활성 산소’ 를 만들어낸다. 디젤차가 급히 달리면 배출되는 검은 배기가스처럼 독한 활성 산소가 박쥐 내부에서 만들어져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죽인다. 이런 ‘활성 산소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는 바이러스가 진짜 독한 놈이다. 만약 이놈들이 사람에게 침투가 가능한 형태로까지 변하다면 ‘인간전용 킬러 바이러스’가 생긴다.

메르스도 원래는 감기만을 옮기는 ‘순한’ 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독해졌다. 게다가 종(種)간의 장벽도 쉽게 뛰어 넘도록 변형되어 박쥐-낙타, 낙타-사람의 두 단계 장벽을 넘어 전파된다. 실제로 미국의 연구진이 박쥐 체내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조사해보니 이미 인간세포를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변형돼 있었다. 메르스가 서서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이 만만한 대상임을 알아차린 셈인가. 박쥐가 잘 날아다니기는 하지만 서식지 근방에서만 바이러스를 옮긴다. 반면 사람은 하루 만에 지구 끝까지 날아간다. 게다가 인간은 대도시에서 집단으로 살고 있다. 바이러스 대폭풍의 세 조건 (동물→인간 감염, 인간→인간 전파, 국가→국가 확산)이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폭풍 전야처럼 불안하다. 바이러스가 인간사회로 몰려나오는 징조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구촌 세계는 다가오는 바이러스의 대폭풍을 준비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질병 60%는 야생동물 탓 … 밀림 파괴가 원인
1995년 말레시아 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니파(Nipah) 지역에 괴질환자가 급증했다. 열·두통·졸림·어지러움증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급기야 뇌가 부어서 사망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일본뇌염으로 판단하고 그 지역의 모기 박멸에 집중했다. 하지만 환자는 계속 증가해서 단기간에 105명이 사망했다. 기이한 점은 발병지역의 돼지도 함께 죽기 시작한 점이다. 돼지와 환자의 몸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는 처음 보는 놈이었다. 발생한 도시 이름을 따서 ‘니파 바이러스’ 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시 세계의 의료진이 모여서 역학(疫學), 즉 전염경로조사를 실시했다. 함께 죽어간 돼지들이 힌트였다. 당시의 니파 밀림지역에 대형 양돈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농장 위에 박쥐가 모여 살던 큰 나무가 있었다. 박쥐 속에 살던 니파바이러스가 박쥐의 배설물을 타고 돼지를 감염시켰다. 돼지를 돌보던 사람도 감염됐다.

이렇게 야생에 있던 바이러스가 지구촌 구석구석의 사람에게 널리 퍼지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야생동물 접촉이 많아졌고, 둘째 가축이 중간전달자 역할을 하고, 셋째 지구촌이 하루 생활권이 된 덕분이다. 모두 인간문명의 발달로 생긴 현상들이다. 야생동물 접촉은 인간이 사냥을 시작한 이래 계속 늘어났다. 게다가 밀림개발로 살 곳이 좁아진 야생동물이 민가에 자주 접근하는 것도 원인이다. 인간질병의 60%가 모두 야생동물에서 오고 있다. 야생동물을 멀리해야 한다. 하지만 사냥에 이어서 인간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다.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인 가축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인간은 바이러스와의 일전을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스스로 들어선 것이다. 게다가 천연두처럼 신체 접촉에 의해서만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기, 즉 공기로도 전염이 되는 바이러스라면 쉽지 않은 전쟁이다.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백신이 최후의 방어 수단이다.

천연두의 고름을 자기 아들에게 직접 옮겨서 백신의 바탕을 만든 영국의 메리 워틀리 몽태규 백작부인.
천연두 고름 인체 주입이 백신의 시초
몽태규 백작부인은 18세기 영국 사교계에서 내로라하는 여성이었다. 빼어난 미모와 더불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한 그녀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천연두에 걸렸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고 약간의 흉터가 남았다.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피부에 직접 찌르는 인도 민간요법 이야기를 그녀는 들었다. 이 방법으로 오히려 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에게 그 방법을 사용했고 아들들을 천연두로부터 지켜냈다. 이후 ‘동양의 주술(呪術)’이라는 당시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족에게도 시행하여 종두법, 즉 백신의 바탕을 만들었다. 70년 후 에드워드 제너는 이 바탕 위에서 소의 우두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었다. 한 여인의 용기와 헌신이 인류를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구한 셈이다.

바이러스에는 백신, 즉 ‘바이러스처럼 만든 물질’로 면역을 미리 준비시켜 놓는 방법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메르스 백신을 만드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메르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세계에도 없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돈이다. 아프리카 에볼라도 마찬가지였다. 개발 비용이 수천억 원이나 들지만 이런 백신을 아프리카에서 사서 쓸 사람이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해왔다. 하지만 사스나 메르스의 경우처럼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전염성도 강해지고 무엇보다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간다. 전 세계적으로 공동 대응해야 한다. 국제기구가 앞장서서 백신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에는 초기 격리가 최선이고 백신이 최후 방어책이다.

몽태규 백작부인이나 제너 덕분에 인류는 백신으로 천연두를 박멸했다. 이제 제2의 천연두 같은 신종 바이러스 폭풍에 대비할 때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은 말했다. “양쪽 모두 서로 합심하여 별을 탐구하고 사막을 정복하고 질병을 근절 시킵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양쪽’ 즉 적대국은 없다. 지구는 하나의 촌(村)이기 때문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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