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기의 ‘바이오토크’] 의수·의족에 숨결 불어 넣는 붙였다 뗐다 ‘스마트 피부’
<39> 식스 센스 시대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424호 | 201504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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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만나 과자 나눠줬다는 산악인
할리우드 영화 ‘식스센스’(The Sixth Sense, 1999)에서 소년은 귀신을 본다.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소년은 분명 초능력자다.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서 인간이 오감 이외의 육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다른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귀신을 봤다고 말하면 대부분 정신병을 의심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귀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은 대부분 심신이 지극히 건강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귀신을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말한다. 1986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모두 등정한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동생과 함께 귀신을 봤다고 주장했다. 과자도 나눠줬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뇌를 검사한 뒤 뇌의 측두엽에 이상이 생겼다고 결론 내렸다. 산소가 부족한 에베레스트에서 극심한 피로로 인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부분과 이를 판단하는 부분 사이의 연결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과학자들은 감각과 판단 사이에 시차가 생기면서 귀신을 ‘느낀 것’이라고 추정했다. 귀신을 보는 육감은 뇌의 이상에 의한 착각이란 것이다.
내가 처음 갔던 시골의 풍경이 어디서 본 듯하다는 기이한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 데자뷰(deja vu), 즉 ‘한 번 봤던’ 곳이란 현상은 실제론 뇌의 착각에 의해 생긴다. 미국 MIT대 스스무 도네가와 교수가 저명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에 기고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측두부(側頭部)를 전기 자극 하면 기억을 꺼내 볼 수 있다. 또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장소를 구분해내는 뇌의 해마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본 것 같은’ 데자뷰 현상을 경험한다. 어떤 곳을 미리 본 듯한 신통력은 결국 뇌의 착각이고 이런 일이 잦으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자뷰가 생기는 원인은 두뇌의 간편 기억방식 때문이다.
우리 뇌는 매일매일 엄청난 분량의 기억을 모두 저장하는 대신 간추린 상태로 입력시킨다. 어떤 상황에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갈 때 두 개의 유사한 기억이 구분이 안 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데자뷰라고 정신학자들은 해석한다. 몸이 허약해지거나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선 뇌가 쉽게 착각을 한다.
처음 온 장소를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예전에 본 듯한 착각도 한다. TV에 나온 살인범의 얼굴을 본 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 경우 대개 자신을 육감의 초능력 소유자라고 오판한다. 또 이런 일이 꿈과 연결되면 스스로 예지몽을 가진 초능력자라고 오인하기도 한다. 결국 육감의 초능력은 실제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뇌의 착각에 의한 것이란 게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처음 가 본 시골을 예전에 살았던 고향마을로 생각한 필자의 경우도 육감이 아닌 데자뷰 형태의 착각이다. 하지만 동물은 착각하지 않는다. 태어나 며칠 머무른 곳을 ‘착각의 데자뷰’가 아닌 ‘완벽한 기억’으로 찾아오는 동물도 있다. 철새와 바다거북이 여기 속한다. 이들의 육감은 자기장(磁氣場)을 보고 기억하는 능력이다.
사람 피부에 자기장 센서 부착 성공
“삼월삼일 날에 강남(江南) 제비는 왔노라 현신(現身)하고 소상강(瀟湘江) 기러기는 가노라 하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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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저명잡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논문에 의하면 시력을 잃은 소경 쥐의 두뇌에 자기장을 느끼게 했더니 자기장을 GPS 삼아서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다닐 수 있었다. 이는 뇌에 자기장을 인식하는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 사람에게 자성(磁性) 나노입자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는 없다. 하지만 사람 망막에 있는 특수 단백질은 자기장의 세기에 따라 변한다. 실제로 이 단백질의 유전자를 초파리에게 옮겼더니 초파리가 정상적으로 자기장에 반응했다. 이는 사람의 특수 단백질도 정상적으로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사막의 한가운데 있어도 마치 바둑판처럼 남과 북이 표시된 자기장 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내비게이션이 가능하다. 자기장을 꼭 두뇌로만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손으로 자기장의 세기와 방향을 느낀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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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저명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엔 사람 피부에 동전 크기의 자기장 센서를 문신처럼 접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알루미늄 포일 두께의 이 센서는 미세한 자기장에 반응한다. 그래서 직접 터치하지 않아도 컴퓨터와 기계를 움직일 수 있다. 또 비둘기처럼 현재의 위치를 파악해 눈 감고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런 자기장 센서가 당장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로봇이다.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으며 걸을 수도 있다. 눈을 가리고도 옷을 잘 입는다. 내 손이, 내 발이 어디에 있는지를 피부 속의 ‘위치 신경센서’가 알려주기 때문이다. 로봇엔 이처럼 3차원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센서가 필요하다. 만약 장애인의 의수·의족이 3차원 위치를 ‘느끼면’ 눈 감고도 옷을 입을 수 있다. 피부부착 센서는 어떤 감각을 감지·판단·대응하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촉감센서를 보자. 사람이 악수할 때는 상대방 손이 아프도록 쥐진 않는다. 손끝에서 느끼는 압력을 조절하면서 악수를 한다. 로봇이 악수를 한다면 로봇 손에 부착된 피부촉각 센서가 압력을 느끼고 조절해 ‘살짝’ 쥐는 정도로 손을 잡아야 상대방 손을 부스러뜨리지 않는다. 생물체엔 이런 기능이 하나로 모여 있다. 카멜레온의 피부는 주위 색을 감지하고 주변 환경에 맞게 스스로 피부를 변화시킨다. 최근 과학자들은 피부에 센서를 ‘입혀’ 피부를 ‘스마트 스킨(Smart Skin)’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개발된 자기장 센서는 이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6번째 감각을 제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다거북의 새끼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의 자기장 지문을 정확히 기억하고 돌아온다. 반면 사람들에게 고향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급기야 필자처럼 처음 가본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데자뷰의 착각도 범한다. 감각 면에선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인간은 동물 가운데 가장 발달된 두뇌를 가졌지만 동시에 가장 퇴화된 감각을 소지하고 있다. 코끼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저주파로 대화한다. 뱀은 콧구멍 옆의 센서로 적외선을 감지해 열을 느낀다. 어떤 꽃은 꿀도 없는데 벌이 날아온다. 그 꽃이 가진 자외선 색을 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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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런 기능의 센서를 피부에 문신 형태로 붙인다면 인간은 지금까지의 세상보다 훨씬 다양한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컴컴한 방에 숨어있는 누군가를 피부 센서로 감지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스마트 피부는 보지 못하는 맹인에겐 내비게이션, 의수·의족에 의존하는 장애인에겐 위치 감각이 살아있는 팔다리를 제공할 것이다.
“오관(五官)은 모든 일의 표면적인 사실만을 모아들인다. … 그것은 감각이다. 감각이 기억으로 기능할 때 그것은 경험이고, 행동으로 취해졌을 때 그것은 지식이며, 우리의 마음이 지식으로 작용할 때 그것은 사상이다.”
미국 작가 R.W. 에머슨의 말처럼 감각은 인간의 모든 것이다.
“과학을 모르고 실천에 뛰어드는 사람은 키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배를 몰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디로 갈지 도무지 확실하지 않아서다.”
새의 비행 감각을 보며 비행기를 떠올린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말처럼 과학을 인류 발전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스마트 스킨이 미래 과학의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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