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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3)두뇌 바이오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36> 고양이 원충은 뇌종양·암 정복 신기술 ‘블랙박스’생존 고수 기생 병원체

by 바이오스토리 2015. 3. 16.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고양이 원충은 뇌종양·암 정복 신기술 ‘블랙박스’

생존 고수 기생 병원체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 제415호 | 20150222 입력
좀비 기생 원충의 인체 침투 전략을 응용해 암치료 기술을 개발한다. 일러스트=박정주

 

 트로이로 들어가는 목마. 목마 속에 병사를 몰래 숨겨뒀다가 적이 긴장을 풀었을 때 행동에 들어갔듯이 기생 병원체도 트로이 목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의 뇌 속에 침투한다(도메니코 티에폴로 작, 1773년, 이탈리아).

  

1992년 4월 8일. 당시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미국의 아서 애시가 USA투데이 신문에 놀라운 고백을 했다. 본인이 에이즈(AIDS) 환자란 것이다. 그는 테니스계의 그랜드슬램인 4개 세계대회(영국 윔블던·호주오픈·프랑스오픈·미국오픈)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흑인 선수였다. 그의 명성만큼 충격도 컸다. 수년 전의 심장수술 당시 받은 수혈 때문에 감염됐다고 했다. 그의 사연은 당시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에이즈의 공포를 더했다.
이 사건보다 더 놀라운 일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의 오른팔이 마비됐는데 그 원인이 충격적이었다. 조사 결과 뇌에서 ‘톡소플라스마(toxoplasma)’란 기생 병원체가 발견됐다. 인간의 뇌에도 기생 병원체가 침입해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세계는 경악했다. 과학계가 지구인의 감염 여부를 확인했더니 세 명 중 한 명이 이 병원체에 감염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다행히도 건강한 정상인은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잠정 결론에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미국의 ‘뇌·행동·면역’ 잡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우려스럽다. 6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이 병원체로 인해 ‘단기 기억능력’이 절반이나 줄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서다.
로봇을 화성에 안착시키는 첨단기술을 소지한 우리 인간이다. 그 자부심의 핵심인 ‘뇌’에 기생 생물체가 침입해 버젓이 살고 있다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도 안 되는 이 기생 병원체는 수억 년을 살아남은 생존의 고수다. 단시간에 박멸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이 미물(微物)에도 배울 게 있다.
최근 이 기생 병원체의 인체 침투기술을 이용해 암세포 치료에 성공한 사례가 보고됐다. 숙주와 기생 병원체, 둘 사이의 오랜 싸움에서도 얻을 게 있다.


총알개미 조종하는 ‘좀비’ 곰팡이

93년 중국 베이징 육상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3000m를 포함한 세 종목에서 무명의 중국 선수들이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중국 코치가 밝힌 비결은 동충하초(冬蟲夏草)였다. 이 사건으로 처음 세상에 소개된 동충하초는 중국 서부의 티베트 고원 깊숙한 산중에서 자라는 버섯이다. 중국 고대 문헌에도 기록된 이 버섯은 산삼·녹용과 함께 중국의 3대 보약으로 꼽힌다. 92세까지 산 중국 정치인 덩샤오핑도 즐겨 먹던 비방이다. 동충하초는 이름 그대로 겨울엔 곤충이고 여름엔 약초, 즉 버섯으로 변한다. 버섯의 ‘청초한’ 이미지를 생각하던 사람이 이 녀석을 잘 들여다보면 기겁을 한다. 나방 애벌레의 사체에서 자라는 버섯이기 때문이다. 땅속에 살고 있는 나방 애벌레에게 버섯 포자가 침입한다. 이후 서서히 애벌레를 죽이고 그 위로 버섯이 자란다. 이 정도의 잔인함은 야생(野生)이란 전쟁터에선 흔한 일이다. 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다른 생물체의 뇌에 침입해 ‘좀비’로 만든 뒤 자기 부하처럼 부리는 녀석이다.
동충하초의 사촌쯤 되는 ‘코르디셉스’ 곰팡이는 총알개미에겐 ‘죽음의 좀비’다. 얼마 전 TV 프로 ‘정글의 법칙’에서 개그맨 김병만이 총알개미에게 물려 고생한 적이 있다. 한번 물리면 총알처럼 아프다는 의미로 총알개미다. 이 녀석은 유난히 방어력이 강해 유사한 개미 종류 중 생존에 성공한 유일한 종(種)이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총알개미만을 공격하는 코르디셉스 곰팡이다. 이 곰팡이는 지나가는 총알개미에게 달라붙은 뒤 개미 뇌에 들어가 ‘칵테일’을 내뿜는다. 이 ‘칵테일’은 개미를 ‘맛이 가게’ 만든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 예컨대 일터로 나가는 길목의 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꽉’ 물고는 죽어버린다. 죽은 총알개미의 몸에서 서서히 한 가닥 대롱이 나온다. 이윽고 대롱에서 곰팡이 포자가 터지면서 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그곳은 개미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더 많은 개미가 이 좀비 곰팡이 포자에 감염된다. 그렇다고 이 좀비 곰팡이가 개미를 모두 멸종시키진 않는다. ‘기생처’인 개미가 늘 일정 숫자를 유지하도록 배려한다. 반대로 개미는 나름대로 대비책을 갖고 있다. 곰팡이에 감염된 ‘좀비 개미’가 생기면 ‘경비 개미’들이 재빨리 이들을 물어 보금자리에서 멀리멀리 내다버린다. 수억 년 동안 개미와 좀비 곰팡이는 이런 전쟁을 벌여 왔다. 싸우면서 배운다고 했듯이 이들은 서로 치고받으면서 상호 진화해 왔다. 이런 좀비 중엔 쥐도 ‘맛’이 가게 하는 무서운 녀석도 있다.


고양이 수염 당기는 원충 감염 쥐

‘톰과 제리(Tom and Jerry)’는 앙숙 간인 고양이 톰과 쥐 제리가 나오는 미국의 만화영화다. 47년 처음 제작된 후 아카데미상을 일곱 번이나 받았다. 톰을 골탕 먹이고 돌아다니는 제리. 만화 속에서 쥐는 고양이의 친한 친구처럼 겁이 없다. 하지만 야생에선 ‘천만의 말씀’이다. 고양이 오줌 냄새만 맡아도 쥐는 극도의 공포를 나타내면서 절절맨다. 이런 쥐가 고양이 원충(톡소플라스마)이란 일종의 좀비 기생충에 감염되면 ‘맛’이 간다. 그래서 고양이 앞에 용감히 나선다. 심지어 고양이 수염을 당기고 툭툭 건드린다. 이런 쥐는 고양이의 오줌 냄새를 맡는 뇌의 후각세포가 망가져 있다. 원인은 역시 쥐의 뇌에 침입한 고양이 원충이다. 덕분에 고양이는 ‘맛이 간 쥐’를 쉽게 잡아먹는다. ‘고양이 원충’은 다시 고양이 장(腸) 내로 들어와 수를 늘린다. 고양이의 배설물과 함께 밖으로 나온 고양이 원충은 쥐를 감염시키고 다시 쥐의 뇌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이클(cycle)은 계속 반복된다. 고양이와 좀비 고양이 원충은 이런 의미에서 ‘짝짜꿍’이 잘 맞는 커플이다. 이 커플에 놀아나는 녀석이 불쌍한 쥐인 셈이다. 이런 ‘찰떡 커플’ 중엔 갈매기와 갈매기 원충도 있다. 이 커플의 희생양은 순진한 달팽이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지은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의 노래’란 시가 있다. 시인은 저녁 무렵 낙엽이 떨어진 숲을 기어가는 두 마리의 달팽이를 노래했다. 달팽이는 원래 축축한 숲 속의 낮은 곳을, 그것도 컴컴할 때 기어다닌다. 천적인 새들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달팽이가 갈매기 원충에 감염되면 ‘좀비’가 돼 정신이 나가버린다. 그래서 평생 절대 안 하던 짓을 한다. 대낮에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다. ‘날 잡아잡수’ 하고 갈매기들에게 광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달팽이가 잡아먹혀 갈매기의 창자로 되돌아온 갈매기 원충은 수를 늘린다. 이후 갈매기 배설물을 통해 숲에 떨어져 지나가던 달팽이를 감염시키고 다시 좀비 달팽이로 만든다. 이런 ‘좀비 스타일’의 기생생물은 쥐도 맛이 가게 했다. 쥐란 포유동물의 뇌에 침입할 정도라면 동물은, 아니 사람은 괜찮을까?
2012년 국내에서 집 안 고양이를 내다버리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고양이 기생 병원체인 톡소플라스마가 사람의 뇌에도 침입하며 임산부는 더욱 위험하다는 방송의 여파 때문이다. 다행히 정상 면역력을 가진 사람에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알려져 고양이는 다시 집 안에서 평화롭게 지낸다. 문제는 몸이 약해진 경우다. 에이즈나 장기이식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톡소플라스마가 잠복 상태에서 껍질을 깨고 나와 병을 일으킨다. 일반인들은 덜 익힌 고기와 덜 씻은 채소를 통해 고양이 원충 알이 몸에 들어오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기원전 12세기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원정군은 트로이 성(城)을 공격하던 도중 목마를 남겨두고 퇴각한다. 전리품으로 생각해 끌고 들어간 목마 속엔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다. 밤이 이슥해져 경비가 허술해지자 목마 속 병사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난공불락과 같던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 이렇게 몰래 상대방 속에 미리 병사를 심어놓고 때를 기다려 공격하는 방식을 ‘트로이 목마’라 부른다. 컴퓨터 바이러스에도 같은 이름(Trojan Virus)이 있다.


트로이 목마 방식으로 암치료 성공

고양이 원충도 트로이 목마처럼 인간의 뇌 속에 침투하는 것일까? 뇌는 외부 생물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성역(聖域)이다. 뇌혈관은 일반 혈관과는 달리 촘촘한 구조로 돼 있다. 또 물·영양분·일부 물질만이 통과할 수 있는 소위 ‘뇌-혈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최근 연구 결과 고양이 원충들은 뇌혈관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인간의 백혈구를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혈구는 우리 몸의 파수꾼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혈관 벽이 느슨해지면서 백혈구가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 각종 병원체와 ‘전투’를 벌인다. 바로 이 백혈구에 고양이 원충들이 트로이 목마처럼 들어가 있다가 뇌혈관으로 침투한다는 사실이 동물(쥐)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무릎을 쳤다. 이 방법을 잘 써먹는다면 뇌혈관 장벽 때문에 뇌에 집어넣기 힘들었던 뇌종양 치료제도 뇌에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원충은 암세포 치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암환자의 경우 암세포를 죽이는 ‘자연살해 세포(NK cell)’가 대부분 약해져 있다. 그런데 고양이 원충을 주사하면 자연살해 세포가 갑자기 강해진다. 원기를 얻은 자연살해 세포는 다시 암세포를 죽인다. 이런 현상에 착안한 과학자들이 새로운 암 치료제를 만들었다. 암환자에게 ‘짝퉁 원충’을 주사한 것이다. 원충 유전자 중에서 병을 일으키지 않는 DNA(유전자) 부분만 암환자에게 백신처럼 주입했더니 면역력이 높아져 암세포가 죽었다. 새로운 방식의 암 치료법이 개발된 것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암환자의 백혈구 세포를 꺼내 그 안에 고양이 원충의 DNA를 집어넣을 수 있다. 이 경우 개인 맞춤형 암 치료 세포가 되므로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몸에 침투하는 기생 병원체로 신체에 기생하는 암세포를 치료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인 셈이다. 21세기 첨단 암치료 기술의 원천이 수억 년이나 지구에 살던 미물인 기생 생물체라니…. 이 미물에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곤충을 바르게 판단하려면 그들의 일과 사회를 응시하라. 그리고 이해하라. …저급한 기관을 갖고도 위대한 일을 완성하는 그들을….” 프랑스의 곤충학자인 쥘 미슐레가 한 말이다 곤충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체는 서로 치고받으며 진화해 왔다. ‘장군 멍군’의 전략 속에서 숙주와 기생 생물체는 애증(愛憎)의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생존전략은 인간에겐 미래 신기술의 보물창고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톰과 제리’ 만화영화에서 그려지는 것과는 달리 쥐는 고양이의 오줌 냄새만 맡아도 겁에 질려 절절맨다. 뇌 침투 기생 병원체는 겁 많은 쥐를 ‘맛’이 가게 해 용감한 쥐로 바꿔놓는다.
성역(聖域)인 뇌에 침투해 잠복 중인 톡소플라스마(고양이 원충·적색). 에이즈·장기이식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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