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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1)인체 건강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32> 비정상 난자엔 ‘자폭’ 기능, 나이 들수록 정상 임신 곤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2. 1.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비정상 난자엔 ‘자폭’ 기능, 나이 들수록 정상 임신 곤란

<32> 가시밭길 고령출산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403호 | 20141130 입력
 

 

벨기에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의 ‘풍요(Fertility)의 알레고리’. 1623년 작품. [벨기에 겐트미술관 소장]
성경엔 놀라운 기록들이 있다. 예언자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자 사라는 ‘쿡’ 웃었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 사라는 90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 ‘이삭’이 늦둥이로 태어났고 건강하게 자랐다.

천지의 창조주가 아이 하나 낳게 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겠지만 90세라니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12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지금 여성 평균수명 85세 기준으론 48세에 아이를 낳은 셈이다. 좀 늦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나이는 아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최고령 자연임신 산모는 영국의 59세 여성이다. 비록 시험관 수정이지만 국내에서도 배불러 아이를 낳은 초(超)고령 여성의 나이가 55세였으니 사라의 ‘48세’ 출산은 고개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남들처럼 서른 넘어 결혼하고 직장에서 자리 좀 확실히 잡으려면 아이는 35세쯤 낳을 예정인데 괜찮겠지, 혹시 잘 안 되더라도 병원에 가면 금방 해결이 되겠지. 이처럼 임신·출산이 피임처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옵션’쯤으로 여기는 미혼여성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35세 넘어서 아이를 가지려면 가시밭길을 감수해야 한다.

젊어졌다는 착각이 출산 미루는 원인
필자의 지인 중엔 아내와 아이 사진을 유별나게 많이 찍는 사람이 있다. 부부가 아이를 가지려고 너무 고생했고 그래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그런 사실을 꼭 알려야겠다는 것이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부부는 둘 다 대학원을 마치고 아내 나이가 31세일 때 결혼했다. 아내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임신 상태로 다니기 힘들 것 같았고 아이를 낳아도 맡길 사람이나 보육시설이 마땅치 않았다. 직장에서 자리가 안정되고 친정엄마가 아이를 맡아주기로 해 아이를 가지려고 시도할 때 아내는 이미 34세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은 없었다. 피임하지 않고 배란일만 정확히 기억하면 임신은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년을 마음 졸이다가 배란촉진 호르몬 주사, 배우자 간의 인공 수정 등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임신이 안 됐다. 마지막 수단으로 시험관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어쩌다 만난 지인의 부인은 계속된 병원 출입으로 얼굴이 초췌했다. 시댁의 눈치도 만만치 않은 듯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7세에 첫 출산에 성공한 것이다. 쌍둥이라고 하기에 ‘투런 홈런’이라며 축하해 줬다.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둘째가 미숙아라는 안타까운 얘기였다. 부부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의사 말에 희망을 걸고 있다. 물론 지금은 두 아이에 치여 엄마는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다. 하지만 아이들과 늘 함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부부의 웃음을 본 것은 이들의 결혼 6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부부는 평생을 ‘알콩달콩’ 살아갈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고생을 해 아이를 가진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평생 짝꿍’으로 잘 살 확률이 세 배나 높기 때문이다. 비 온 뒤에 단단해지는 땅처럼 고생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운이 좋은 경우다.

영화 ‘노아’(2014년·미국)의 여주인공 제니퍼 콜리는 40세가 되던 해에 세 번째 딸을 낳았다. 이미 4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아카데미상 수상식장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20대 같았다.

국내에서도 얼굴성형과 몸매 만들기 붐으로 10대 얼굴과 20대 S라인을 겸비한 30대 여성이 부쩍 늘어났다. 이런 30세 여성의 외모는 나이를 잊게 한다. 하지만 첨단 기술로 젊어진 외모와는 달리 몸은 구석기시대 인간처럼 나이를 먹어간다.

30대 여성이 외견상 20대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은 출산을 계속 뒤로 미루는 요인 중 하나다. 젊은 부부도 10%는 임신이 안 될 수 있는데 30대가 출산을 미룬다면 아이 갖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난자는 나이보다 더 빨리 늙기 때문이다.

고령 임신과 고령 출산은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노산 땐 사산·유산·기형아 확률 높아
얼마 전 할리우드 스타인 앤젤리나 졸리가 전격적으로 유방절제수술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졸리가 난데없이 수술을 받은 것은 유전자에 손상이 생기면 스스로 고치는 역할을 하는 BRCA1 유전자가 비정상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가 비정상이면 세포 내 다른 유전자들의 손상을 고칠 수 없어 나중에 암환자가 되기 쉽다. 이 유전자는 나이든 여성의 난자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여성도 나이 들면 비정상 난자를 갖기 쉽다는 사실이 밝혀졌다(2013년 ‘사이언스 트랜스 메디슨’지). 여성이 출생과 동시에 보유했던 100만 개의 예비 난자는 나이 들면서 급감한다. 30대엔 12%, 40대엔 3%만 남는다. 실제로 예비 난자 중 500여 개만이 여성의 평생에 걸쳐 배란된다. 난자는 왜 이렇게 급격히 수가 줄어드는가?

올해 3월 미국의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다시 아버지가 됐다. 남성은 문지방을 넘을 힘만 있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농담은 사실이다. 정자는 60세가 돼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노익장을 과시한다면 고령에도 배우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 이에 반해 난자는 급속하게 수가 줄어들고 50세 무렵이 되면 스스로 문을 닫는다. 폐경을 맞는 것이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져야 생존에 유리한 정자와는 달리 난자는 수정란을 키우는 인큐베이터이자 ‘생명의 그릇’이다. 행여 난자의 이런 ‘그릇’ 기능에 문제가 있으면 처음부터 가차 없이 버려야 하므로 난자가 조금이라도 비정상이면 세포(난자)는 스스로 ‘자살’을 감행한다. 최대한 좋은 난자를 고르려는 여성 몸 자체의 노력도 나이 앞에선 역부족이다. 35세를 정점으로 여성의 난자 수는 더 급격히 줄어든다. 임신 가능 확률도 22세엔 86%지만 32세엔 63%, 42세엔 36%, 47세엔 5%로 급감한다. 난자의 DNA 손상도 나이 들수록 많아져 늦게 아이를 가지면 조산·사산·유산·기형아 출산 확률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염색체 기형인 다운증후군은 특징적인 얼굴 모습과 지적장애를 동반한다. 30세 산모가 낳은 아이가 다운증후군 환자일 확률은 960명 중 1명꼴이지만 35세엔 이의 3배, 40세엔 12배로 급증한다. 또 40세 산모는 25세 산모보다 일찍 죽을 확률이 3.8배나 높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났지만 난자가 늙는 속도는 크게 변함없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문구가 들어간 1970년의 피임 권장 포스터.
줄기세포 기술로 싱싱한 난자 얻을 수 있지만…
미국 영화 ‘플랜 B’(원제 Back up plan·2000년)에선 여자 주인공이 출산가능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인공수정, 즉 시험관아기 시술로 아이를 가지려 한다. 그때 이상형의 남자가 나타나서 ‘사랑의 열매(자연 임신)’를 맺으려 하지만 이미 배 속엔 다른 아기가 자라고 있다. 임신을 둘러싼 코미디이지만 제목이 더 재미있다. ‘백업’, 즉 임신의 예비수단으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고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임신이 잘 안 되면 대개 병원에선 배란 촉진 호르몬 주사를 놓아 임신확률을 높이려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남성의 정자를 채취,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배우자 간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이런 노력에도 임신이 안 되거나 난관이 모두 막혀 있는 불임의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시험관아기를 계획한다. 시험관아기 시술 과정은 이렇다. 먼저 여성의 몸에 호르몬 주사를 놓아 과(過)배란 상태에서 난자를 채취한 뒤 이 난자를 시험관 내에서 정자와 수정시킨다. 이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킨다. 과정은 간단하지만 한 번에 성공할 확률은 22.5%에 그친다. 여성의 나이가 많으면 성공률이 더 떨어진다. 35세 이하에선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한 출산 성공률이 41.4%지만 41∼42세엔 12.6%로 떨어진다.

시험관아기의 유산율도 산모 나이가 40대 이상이면 50%에 가깝다. 쌍둥이를 낳을 확률은 25∼30%다. 쌍둥이 중에 54%는 저(低)체중 아이고 언청이, 심장벽 이상 발생률도 높아진다.

지난해 말 가수 강원래씨가 13년 만에, 그것도 여덟 번의 시도 끝에 아이를 얻었다. 이처럼 불임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시험관아기 기술은 인류의 귀중한 재산으로, 1978년 노벨상이 수여됐다. 하지만 이 기술은 자연 임신에 대한 ‘백업 플랜’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늦둥이나 시험관아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출발은 난자가 늙은 것이며 나이를 이길 순 없다. 최근 난소에서 줄기세포가 발견됐다. 지난해 ‘네이처 프로토콜(Nature Protocol)’이란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난소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다시 싱싱한 난자를 만들 수 있음이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이는 난자의 늙음에 기인한 시험관아기 시술의 실패와 부작용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그릇인 난자를 실험실에서 마음대로 만든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실제 불임 여성에게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요컨대 건강한 아이를 낳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무리 늦더라도 35세를 넘기지 말고 젊은 나이에 임신하는 것이다. 이는 아이를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엄마의 수명도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싱글이나 아이를 일부러 갖지 않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 여성들은 암·심장질환·정신질환·사고로 숨질 확률이 자녀가 있는 여성보다 4배나 높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의 절반 이상은 고령 임신이 유산·사산·조산·기형아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여성의 90%는 40세라도 병원에 가면 불임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300만원만 들이면 시험관시술로 ‘뚝딱’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여성들을 대상으로 ‘늦둥이의 위험성’에 대한 인터넷 교육을 실시하면 이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고령 임신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바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여성의 출산을 몇 년 앞당길 수 있고 아울러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갖게 할 수 있다. 물론 보육시설, 직장에서의 출산장려 분위기 등이 선행돼야 예비부모들이 출산 쪽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문명이 가장 진보한 곳에 불임(不姙)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1970년대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포스터가 우리 생활 주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줬다. 그때보다 훨씬 잘살게 됐지만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출산국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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