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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3)두뇌 바이오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31> 숙면은 불로초 … 세상 모르고 자야 몸이 젊어진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1. 11.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숙면은 불로초 … 세상 모르고 자야 몸이 젊어진다

<31> 수면의 신비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400호 | 20141109 입력

 

 ‘잠의 신, 히프노스’(1874년·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그의 동굴 침실엔 빛도 소리도 없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년)이 동해 유배지에서 지은 시조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깬 노인의 잔걱정들을 담고 있다. 당시 남구만의 나이는 61세. 소를 돌보는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에 나이 든 그는 왜 잠에서 깨어 있었을까?

비단 그만의 얘기가 아니다. 필자가 어쩌다 소변이 마려워 새벽에 깨면 집안 어르신은 두꺼운 안경을 끼고 신문을 보고 계셨다.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에 잠이라도 푹 자야 할 텐데 나이들면 오히려 잠이 줄어든다.

노인들의 조각난 잠은 뇌에 치명타를 가해 치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 청소년도 수면 부족으로 두뇌 집중력에 노란불이 켜졌다. 우울증 환자의 90%는 불면에 시달리며, 그들의 평생 소원이 숙면이다.

최근 이들의 귀가 솔깃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자들이 뇌 수면 스위치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 신호를 보냈더니 금방 곯아떨어졌다. 이제 불면증의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잠을 잘 자면 몸이 시간을 거슬러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제 잠 좀 제대로 자 보자.

깊거나 얕은 수면 사이클 밤새 반복
밤손님들의 활동시간은 오전 2∼4시 사이다.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 잠든 지 2시간 이후란 과학적 데이터 정도는 밤손님들도 잘 알고 있다. 잠이 들면 4단계의 수면 과정을 거친다. 각 단계에 따라 뇌의 활동 패턴이 달라진다. 깊은 잠과 얕은 잠이 밤새 4∼5번 정도 반복된다. 가장 얕은 잠 상태에선 눈동자가 ‘휙휙’ 돌아가고 뇌는 거의 깨어 있다. 이 같은 소위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이 자는 동안 4∼5회 반복된다. 꿈의 대부분은 이때 꾸며 이 시간대에 꾸는 꿈이 뇌를 자극해 뇌 발달을 돕는다.

어릴 때는 꿈을 많이 꿔야 ‘쑥쑥’ 잘 큰다. 필자는 어릴 적에 동전을 줍는 꿈을 자주 꿨다. 길가에 널려 있는 동전을 양손에 가득 주워 동네 아이스케이크 가게로 달려가는 순간에 꿈에서 깨곤 했다. 깨어서 비어 있는 손을 바라볼 때의 허탈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동네 개에게 쫓기는 꿈도 자주 꿨다. 이때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 탓에 대개 허우적거리다가 깬다. 얕은 REM 수면 상태에서 뇌는 거의 깨어 있지만 근육은 역설적으로 완전 마비 상태다. 그래서 꿈에 귀신이 쫓아와도 팔다리가 안 움직여 공포의 시간을 경험한다. 만약 꿈을 꾸는 동안 팔다리가 움직인다면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가 깨질 수도 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실제로 꿈을 꾸면서 옆 사람을 칠 정도로 손발이 과도하게 움직인다면 병원 검사가 필요하다.

필자는 어릴 적에 동네 어른들을 따라 참새 잡기에 자주 나섰다. 밤늦은 시간, 초가지붕의 처마 밑을 플래시로 비춘 뒤 그곳에 잠들어 있던 참새들을 손으로 잡았다. 새를 포함한 동물들도 잠을 잔다. 잠을 잔다는 것은 처마 밑의 참새처럼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모든 감각이 잠들고 근육도 마비 상태여서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당연히 진화에 불리할 텐데 왜 동물을 포함한 사람은 잠을 자는 걸까? 우리가 잠자는 동안 뇌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만약 잠을 자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최근 미국 수면의학회지인 ‘슬립(Sleep)’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잠을 자지 않을 경우 뇌세포가 파괴될 때 나타나는 물질이 뇌에 축적된다. 이 노폐물은 낮보다는 밤에 10배나 빨리 청소된다. 결국 뇌 회로에서 낮 동안의 모든 작업의 흔적을 리셋(reset)시키는 청소작업이 지금껏 알려진 수면의 역할 중 하나다.

PC도 임시 메모리 공간이 꽉 차면 비워 줘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뇌도 임시 메모리 부분에 있던 하루 동안의 내용을 기억 저장공간에 옮기는 청소작업이 필요하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은 따라서 뇌세포에 찌꺼기 독성물질이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한폭탄을 몸에 안고 사는 셈이다.

조각난 잠은 건강에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낮잠은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고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이 잠 안 재우기다. 눈꺼풀에 테이프를 붙이고 강한 빛을 눈에 쬐면 어떤 사람도 2∼3일을 못 버틴다. 주야 교대를 하거나 시차를 자주 겪는 간호사·항공기 승무원의 경우 장기적인 수면 불균형이 생기면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하루 수면시간이 5시간도 채 안 되는 성인의 경우 비만·당뇨병·심혈관 질환·기억력 저하가 동반되기 쉽다. 건강을 해치는 주요인이 운동 부족(74%)과 수면 불량(49%)이란 연구 결과도 국내에서(서울대 박소현씨 박사학위 논문) 발표됐다. 사람마다 개인 차는 있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권하는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이다. 아인슈타인과 처칠은 하루 4시간만 자도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22년간 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선 수면시간이 7시간 이하이면 일찍 죽을 확률이 23.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8시간 이상 자도 조기 사망률이 20.5%나 높아진다. 적당한 시간만큼만 자야 건강하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낮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 이로운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들쭉날쭉하다. 올해 미국 ‘역학학회(Epidemiology)’에 보고된 연구 결과는 낮잠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3년간 1만3000명을 관찰한 결과로 매일 한 시간 미만 낮잠을 자면 14%, 한 시간 이상 자면 무려 32%나 사망률이 높은 게 확인됐다. 몸이 약해져 낮잠을 자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낮잠을 많이 자면 일단 건강에 적색 신호등이 켜졌다는 신호다. 평생 건강하게 지내려면 잠을 제 시간에 푹 자야 한다는 의미다. 눕자마자 자는 사람도 있지만 국내 성인의 절반은 잠을 쉽게 청하지 못하고 또 잠을 설친다.

인도의 민족운동가인 간디는 금방 잠이 드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의 수행원들은 그가 잠을 자겠다고 누우면 채 1분도 안 돼 곯아떨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필자의 한 지인도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잠을 잘 때는 “내가 먼저 잘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다.

불면증 환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잠에 금방 빠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지금은 밤이 이슥하니 잠을 잘 시간이란 사실을 알려 주는 생체시계와 잠이 들게 만드는 일정량의 피로다. 생체시계는 태양빛을 기준으로 맞춰진다. 우리 몸은 주변에 빛이 많으면 낮으로 인식해 활발하게 움직이려 든다. 반대로 빛이 없으면 밤이라고 여겨 멜라토닌 같은 수면호르몬을 분비시키고 활동을 멈춘다. 문제는 ‘적당하게 쌓인 피로’다.

낮의 활동으로 뇌엔 조금씩 피로물질이 쌓여 간다. 피로물질이 최대가 됐을 때 축적된 ‘피로’ 압력으로 ‘수면 스위치’가 ‘찰칵’ 켜진다. 수면 스위치가 켜지면 뇌세포를 잠재우는 물질이 분비돼 바로 곯아떨어진다. 잠자는 동안 뇌의 피로물질 탱크는 깨끗이 비워진다. 24시간 주기로 이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올 8월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의 수면 스위치가 위치한 곳은 뇌간(腦幹) 주변이다. 이 부위를 자극하면 가바(GABA)란 화학물질이 방출돼 잠에 떨어진다. 이 ‘스위치’가 있는 곳은 호흡·혈압·맥박 등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조절하는 부위다. 이는 수면이 생명과 직결된다는 간접 증거도 된다. 만약 새로 발견된 수면 스위치만을 족집게처럼 작동시키는 수면제라면 뇌세포 전체를 마비시키는 기존 수면제와는 달리 부작용이 훨씬 덜할 것이다.

인간 수명 연구에 흔히 쓰이는 초파리(fruit fly)도 나이가 들면 잠에서 자주 깨고 새벽에 서성인다. 우주탐사선을 먼 목성까지 보내는 인간이 초파리와 같은 신세라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초파리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있는 물질을 찾아냈다. 올해 독일연구팀이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인의 잠이 조각조각 나는 것은 음식물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슐린 신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는 알약(rapamycin)을 초파리에게 먹였더니 잠이 조각나지 않고 밤새 숙면을 취했다. 게다가 시간을 거슬러 몸이 젊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현대판 ‘진시황의 불로초’를 수면 연구에서 발견한 셈이다. 초파리의 수면 유전자를 사람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밤에 깨지 않고 푹 잘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알약을 먹기가 거슬린다면 잠자는 기술을 배우자.

골퍼의 루틴처럼 나만의 수면습관 필요
미국 시애틀의 관광 코스엔 항구의 한 집이 포함돼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미국)이란 영화를 촬영한 장소다.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일 잠을 못 자는 아빠의 사연이 어린 아들을 통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져 드디어 새로운 여인을 만난다는 줄거리다. 가족의 사별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 커피·녹차·콜라 등 카페인, 스마트폰의 청색 불빛 등은 뇌를 각성시켜 수면 스위치가 잘 켜지지 않도록 한다. 이는 모두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게 하는 요인들이다. 술은 수면 스위치는 켜지만 자는 도중 몸을 깨우는 역효과가 있다.

결국 자기 전에 뇌를 가라앉히되 수면 스위치가 켜질 만큼 뇌에 피로물질이 적절히 쌓여 있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낮에 햇빛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햇빛은 뇌의 생체시계를 유지시켜 밤낮의 사이클을 정상 작동하게 하고, 몸을 움직여 생긴 물리적 피로는 스위치를 켜는 데 필수적이다.

잠을 자는 기술의 핵심은 잠자는 행동의 습관화다. 일류 골프선수는 타석에 올라 ‘후다닥’ 공을 쳐 버리지 않는다. 먼저 목표를 흘끗 쳐다보고 고개를 한 번 흔드는 등 나름 ‘의식’을 하나하나 치른 뒤 스윙을 한다. 이런 행동은 반복 연습을 통해 체득되며 경기에 잘 적응하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잠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순서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분으로 잠들면 뇌 속에 그 과정이 각인돼 쉽게 잠이 든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저서인 『인간론』에서 “신은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수면을 줬다”고 말했다. 세상일은 점점 복잡해지고 근심도 많아지지만 뇌는 예전 인간 그대로다. 따라서 예전 방식대로 사는 것, 즉 낮에 움직이고 밤에 숙면하는 ‘주동야숙(晝動夜宿)’이 건강 장수의 지름길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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