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교수의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5)바이러스 환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23> 빈자의 ‘핵무기’ 세균

by 바이오스토리 2014. 6. 2.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몽골군, 인류 첫 세균전 … 흑사병 시신 투척해 성 함락

<23> 빈자의 ‘핵무기’ 세균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376호 | 20140525 입력
 

14세기 유럽, 벨기에 토리네이시(市)의 흑사병 대유행 장면(디아스포라박물관).
2015년 코리안시리즈 결승전이 한창인 야구 경기장. 6회 만루 홈런 뒤 축하 폭죽에 3만 관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9회까지 팽팽한 경기 중계에 정신이 없던 장내 아나운서는 아까부터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편지 봉투에 손이 간다.

“아까 폭죽과 함께 공중에서 날렸던 탄저균 가루야. 행운을 빌어!”

동시에 봉투에선 흰 가루가 쏟아져 내린다. 기겁을 한 장내 아나운서는 순간 망설인다. 이게 진짜인가? 이제 곧 경기가 끝나는데 문을 폐쇄해 감염병의 전파를 막아야 하나? 아니면 긴급 대피하라고 해야 하나? 망설임 끝에 우선 급한 대로 경찰에 연락을 한다. 앵앵거리는 경찰차의 모습에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탄저균!”이란 외침에 놀란 사람들이 좁은 계단으로 동시에 몰리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편지 봉투 하나로 수십 명을 힘 안 들이고 살상한 테러리스트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 후 경찰의 확인결과 흰 가루는 탄저균이 아닌 밀가루였다.

철저한 대비훈련으로 세균테러에 대응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물론 상상 속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장내 아나운서나 달려온 경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 ‘탄저균’이란 말은 들어봤는데 이 경우 즉시 도망가야 하는지 아니면 입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991년 이스라엘·이라크 간의 걸프전 당시 39발 미사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방으로 향했다. 그중엔 불발된 미사일도 있어서 미사일로 인한 실제 사망자는 2명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1000명이 넘었다. 화학무기 공격이란 소문과 공포심 때문에 개인용 치료제인 아트로핀 주사를 과다하게 사용해 그 부작용으로 입원한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전쟁에 대비가 잘된 이스라엘 국민도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나 소문에 의한 사고·손실이 실제 타격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대한민국을 큰 슬픔과 허탈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도 비상상황에서 어떤 일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 모르는 ‘훈련되지 않은’ 관계자들로 인해 발생했다. 탄저균 같은 세균전 테러는 해당 도시 인구 전체를 극심한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는 국가적 초비상 사태다. 세균전 테러는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탄저균이 실제로 위험한지 아니면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인지 바로 알아야 야구장 관객처럼 무조건 뛰쳐나가지 않는다. ‘알아야 산다’. 이 구호는 필자가 화생방 장교로 훈련을 받던 한 육군부대의 구호이기도 하다.

화생방 교육부대 구호 ‘알아야 산다’
1347년, 흑해 연안의 카파 성을 공격하던 몽골 병사가 투석기를 이용, 흑사병으로 숨진 시신을 성 안으로 던졌다. 인류 최초의 세균전, 더 정확하겐 ‘생물학전(Biological Warfare)’의 시초다. 페스트균에 의한 흑사병은 발병 6년 새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숨지게 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수억 명을 죽인 페스트균은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세균전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병원균을 전쟁무기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2차 대전까지도 계속됐다. 1940년 10월 9일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 731부대 시리이시 의무대장은 페스트균과 이 세균에 감염된 벼룩을 비행기로 중국 닝포 지역에 살포했다. 살포 후 한 달 새, 99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731부대는 인간 실험대상인 ‘마루타’ 3000명을 희생시키며 세균전을 준비했다. 전대미문의 이 잔인한 기록은 당사자 무(無)처벌, 일본 천황제 유지 등의 조건으로 승전국인 미국에 넘어갔다.

동서 간 냉전이 종료돼 지구촌에 전쟁 위협이 줄어든 1979년 4월. 소련 모스크바 동쪽에 위치한 인구 100만 명의 도시 예카테린부르크 지역에 의문의 질병이 발생했다. 고열과 호흡장애로 94명이 감염됐고 그중 68명이 숨졌다. 소련 KGB(비밀경찰)는 이 사건을 식중독 사고로 은폐해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 소련은 미국 합동조사팀의 역학조사를 허용했다. 식중독 사고였다던 사망 사건의 실체는 도시 주변 지역에 있던 군사기지에서 극소량인 수 ㎎의 탄저균이 미세 안개(에어로졸) 형태로 누출된 사고였다. 1992년 러시아 대통령 옐친은 이 사고 당시 이미 6만 명의 연구원이 두창(천연두) 바이러스·페스트균 등을 개발해 미국을 목표로 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했음을 고백했다. 미국으로선 핵무기만큼이나 섬뜩한 내용이었다. 옐친이 고백한 6만 명의 연구원들은 소련연방 붕괴 후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보유했던 기술은 ‘은밀한 무기’인 세균전 무기를 갖고 싶어 하는 국가나 테러단체엔 달콤한 유혹이다. 육군화생방교육부대의 구호인 ‘알아야 산다’의 ‘알아야’ 하는 것 중엔 상대방 무기, 공격 방법이 포함된다. 북한은 이미 50년 전부터 세균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실상과 능력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세균전에 사용되는 무기의 종류는 무엇이고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AI 돌연변이는 사람 목숨도 위협
1990년대 초, 필자의 지인이 국가안전기획부에 불려갔다. 지인은 효모를 키워서 술을 만드는 스테인리스 통, 즉 ‘배양기(fermenter)’라고 부르는 산업용 발효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중국에 5t 짜리 배양기를 수출했던 것이 불려간 이유였다. 이 크기라면 탄저균 분말 5㎏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어, 당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누구에게 팔았는지를 안기부가 꼬치꼬치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세균전 무기’인 병원균을 대량으로 키우는 기술은 생각보다 간단해서 대학생 정도라도 실현 가능하다. 단지 세균전에 쓸 수 있는 ‘A급 위험성 병원균’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A급 세균전 무기론 두창· 페스트·탄저균·보툴리눔 독소·야토병(野兎病)·바이러스성 출혈열 등 6종이 있다. 두창· 페스트균 같은 감염성 병원균과는 달리 탄저균은 사람 간에 직접 감염이 되지 않고 개인이 흡입할 경우만 감염된다. 하지만 탄저균은 제조·보관·운반·사용이 쉬워서 편지 봉투로도 테러가 가능하다. 탄저균은 그런 의미에서 자금이 부족한 테러집단이 침을 흘리는 첫 번째 무기다. 세균무기는 살포 기술이 치사율을 결정한다. 밀가루 형태보다는 ‘에프킬러’ 같은 안개형태로 만들어 살포하면 치사율이 급증한다.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1㎏의 사린가스는 사방 0.1㎞ 내의 인구 50%를 사망시키지만 같은 무게의 탄저균은 그보다 1600배 넓은 사방 4㎞ 내의 25~50%를 감염·사망시킨다. 비용도 화학무기·핵무기·재래식 무기의100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얼마 전 북한발(發)로 추정되는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날아다녔다. 1㎏의 탄저균을 농약 뿌리듯 살포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저비용·고치사율의 세균(생물)무기의 가장 두려운 점은 이것을 개량해 초강력 돌연변이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첨단과학이 가장 잔인한 병원균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이러니다.

2012년 저명학술지인 『미국 내과 학회지』엔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만들어서 인간을 포함한 다른 포유류에게도 쉽게 감염시키는 방법이 소개됐다. AI는 원래 사람에게 쉽게 감염이 안 되지만 일단 감염 시 60%의 사망률을 보이는 고 위험 바이러스다. 이 돌연변이 제조방법이 공개되면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왜 이런 위험한 변종을 만드느냐, 테러집단이 따라 하면 어떻게 하려고…”라는 반대파와 “이런 변종이 생기면 인간에게 감염이 되는지 연구하고 또 이런 변종의 감염이 현실화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알아야 할 것 아니냐”는 찬성파로 나뉘었다. 결국 실험은 안전한 곳에서 하고, 만드는 방법은 최소한만 공개하는 선으로 마무리됐다. 현재 생명공학 기술로 AI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큰 위협은 테러집단의 연구자들이 항생제의 약발이 듣지 않는 돌연변이 균을 만드는 것이다. 탄저균에 항생제가 듣지 않도록 유전자 변형을 한다면 감염된 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없어진다. 물론 세계도 이런 위험한 연구에 대비해 병원성 균의 특허와 연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 병원성 균을 쉽게 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키는 사람이 열 명 있어도 도둑 한 명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테러집단의 작업을 다 감시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세균전 전문 연구자인 연세대학 성백린 교수는 유사시를 대비한 국가 차원의 예방 백신과 치료제의 사전 비축·사전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균 테러 대비책, 감염병 예방과 같아
1976년 콩고 느예리 지방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 550명 환자 중 430명이 사망했다. 이때 현장에 의료진보다 먼저 출동한 것은 놀랍게도 군인이었다. 도망가려는 환자를 막아선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간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나마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은 것은 이런 신속한 격리조치를 포함한 대비책 덕분이었다. 세균 테러의 대비책은 근본적으로 감염병 예방법과 같다. 누군가가 고의로 살포된 정황이 있으면 선격리·후조치가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교육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 『감기』(2013)에서처럼 무조건 탈출하는 위기상황이 발생한다.

필자가 머물던 미국 대학에선 한 달에 한번 긴급대피 훈련을 했다. 비상벨이 울리면 연구원·환경미화원 할 것 없이 모두 그 상태에서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늦게 나간 그룹은 늘 나를 포함한 한국 학생·연구자들이었다. 늘 모든 것을 빨리빨리 서두르던 우리 국민이 대피훈련엔 왜 느긋했을까? 훈련·대비를 평소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아이들은 한국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이들이 목숨으로 가르쳐 준 교훈을 잊지 말고 세균전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 알아야 산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