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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5)바이러스 환경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20> 나무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by 바이오스토리 2014. 3. 26.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인류 최초 플라스틱은 당구장 사람들 덕에 탄생

<20> 나무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367호 | 20140323 입력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제조한 식기 등 주방용품.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1967년 영화 ‘졸업’에선 주인공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아버지의 친구가 ‘중요한 사업정보’라며 주인공을 따로 불러 귓속말을 한다.

“한마디로 대세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이라고.”

마치 주식의 중요한 블루칩 정보를 흘려주듯 최고급 정보라고 던져준 것이 ‘플라스틱’이란 단어였다. 실제로 블루칩처럼 플라스틱 산업은 탄생 이후 급성장을 거듭했다.

블루칩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썩지 않아 생기는 환경 문제와 원료인 석유의 고갈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대장균 내에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원료 덩어리(흰색). [사진 KAIST 이상엽 교수] ▼브라질에선 사탕수수 부산물로 비닐종이를 만든다.
분자 종류, 결합 방법 따라 다양한 제품
플라스틱의 탄생은 우연이다. 미국에서 당구가 유행하던 18세기 후반, 뉴욕당구공협회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상아로 제조하는 당구공을 다른 재료로 만들면 1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1만 달러는 지금의 2억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무분별한 코끼리 사냥으로 상아 공급이 힘들어지자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여러 시도 끝에 드디어 성공작이 나왔다. 소독약으로 쓰이는 페놀과 새 차·새 집의 냄새 성분인 포름알데히드를 뒤섞어 만든 ‘베이클라이트’였다. 이 최초의 플라스틱은 딱딱하면서 전기가 통하지 않아 전구소켓이나 스위치에 지금도 쓰인다.

플라스틱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plassein’, 즉 ‘원하는 대로 주물러서 만들다’라는 의미다. 마치 아이들이 진흙을 빚어서 인형·그릇·병을 만들듯이 플라스틱 원료 알갱이 분자를 서로 연결시켜 고분자(폴리머, polymer)로 만들면 원하는 형태가 얻어진다. 알갱이 분자의 종류나 결합시키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만들어진다. 현재 플라스틱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폴리에틸렌(PE, Polyethylene)은 비닐봉지나 주방용 랩에 쓰인다. PE의 ‘사촌’이 페트(PET)다. 생수병·콜라병의 원료로, 투명한 데다 비닐봉지보다는 조금 딱딱해서 ‘쉬익’ 하는 콜라의 압력에도 잘 견딘다. 음료수 뚜껑·자동차 범퍼의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 파이프·인조가죽의 PVC, 스티로폼·CD케이스의 폴리스티렌 등 10여 종 이상의 플라스틱이 널리 사용된다. 값싸고 편하고 오래가고 가벼운 플라스틱은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든다. 플라스틱 신용카드처럼 이제 플라스틱 없이 사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플라스틱이 만든 편리하고 풍족한 세상에 두 개의 노란색 경고등이 켜졌다. 첫 번째 경고등은 회수가 안 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분해되지 않아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 남지 않은 석유 대신 다른 원료를 찾아야 하는 문제다.

바다 어류 37% 배속엔 미세 플라스틱
태평양의 한복판, 한반도의 7배나 되는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1986년 언론에 보도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섬처럼 모여 있지도 않고 어망에 걸리는 법도 없다. 버려진 플라스틱들이 잘게 부수어져 콩알 크기의 미세(微細) 플라스틱으로 바다에 떠 있다.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보다 잘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더 위험하다. 미세 플라스틱의 농도가 지난 40년간 100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 플라스틱 오염지대에 사는 바닷물고기의 37%가 위장에 미세 플라스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미세 플라스틱 오염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물고기가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2013년 12월, 과학 전문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엔 미세 플라스틱이 환경 독성 물질인 DDT나 PCB를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는 연구논문이 실렸다. 정말 큰일이다. 조그만 물고기가 플라스틱 조각을 먹으면 조각 내에 있던 독성 물질이 물고기 몸에 축적된다. 다시 큰 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으면 독성 물질이 큰 물고기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소위 ‘생물 농축’ 현상이 생긴다. 사람이 독성 물질이 농축된 물고기를 먹는다면 재앙이다.

더욱이 지구의 70%에 해당하는 바다를 누가 청소할 수 있을까. 100년이 걸려도 지금의 플라스틱은 완전 분해가 안 된다. 새로운 플라스틱이 필요하다. 썩지 않는 기존 플라스틱의 대안이 ‘바이오플라스틱(Bio-plastic)’이다. 바이오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의 부족한 원료(석유) 문제를 푸는 해법도 된다. 비유컨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썩지 않아 생기는 환경 문제와 석유 고갈로 인한 원료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준다. 일러스트 박정주
식물서 뽑은 알코올젖산이 新 원료
지금의 소비 속도가 이어진다면 2060년이면 석유가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현재의 플라스틱 원료는 모두 석유다. 따라서 석유가 동나기 전에 다른 플라스틱 원료 물질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플라스틱 없는 중세로 돌아가야 한다. 에너지로서의 석유를 대체하는 방안으론 원자력·태양열·풍력·바이오디젤 등 여러 대안이 제기됐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를 대체할 것은 오직 석유의 조상인 식물뿐이다. 석유 대신 나무·옥수수·사탕수수·갈대 등 식물체에서 휘발유 원료와 플라스틱 원료를 뽑아내는 정유(refinery)기술, 즉 바이오-리파이너리(Bio-refinery) 기술이 차세대 플라스틱 원료 생산의 핵심기술이다.

이 기술 개발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하나는 식물체에 열을 가해 나오는 기체, 즉 ‘신가스(Syngas)’를 만들어 여기서 플라스틱 원료를 얻는 물리·화학적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술을 만드는 발효 과정과 비슷하다. 사탕수수를 발효시키면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이 나오고, 배추를 발효시키면 김치의 유산(젖산, lactic acid)이 생성된다. 알코올과 유산은 모두 플라스틱의 원료가 된다. 예를 들어 나무나 옥수수 등 식물체를 분말화한 뒤 물을 더하고 여기에 세균(박테리아) 등 미생물을 키운다. 발효 술을 만들듯이 얼마간 세균을 키우면 세균들은 알코올이나 젖산 등을 만든다. 이 물질을 회수해 몇 번의 공정을 거치면 플라스틱이 얻어진다.

더 쉽게 플라스틱을 얻는 방법도 있다. 자기 몸 안에 직접 플라스틱 덩어리를 만드는 세균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세균엔 플라스틱이 꽉 차 있다. 세균에서 바로 꺼내 플라스틱을 만들면 된다.

나무를 포함한 자연계의 생물자원에서 얻어진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즉 바이오플라스틱은 쉬 썩는다는 것이 첫 번째 장점이다. 일례로 유산으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인 PLA(Poly Lactic Acid)는 자연에서 완전 분해된다. 세균 등 각종 미생물들이 PLA를 모두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기존의 플라스틱은 구조상 미생물을 이용한 분해가 불가능하다. 생(生)분해가 잘 되는 바이오플라스틱은 기존의 플라스틱에 비해 재료로서의 강도(强度)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은 극복될 것으로 여겨진다. 멀지 않은 장래에 단단하고 오래가지만 결국엔 완전 분해되는 바이오플라스틱이 등장할 것이다. 생분해되는 바이오플라스틱이라면 태평양에 떠 있는 미세 플라스틱 같은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식물을 원료로 해 석유처럼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오플라스틱의 두 번째 장점이다. 지구온난화 억제 효과도 기대된다.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해지면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의 대세는 바이오플라스틱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가격은 기존 플라스틱(석유 유래)보다 2∼3배나 비싸다. 실제 생산량도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바이오플라스틱의 수요는 매년 20%씩 증가하고 있다. 식물 원료 추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점, 기존 플라스틱 공장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 점, 석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점, 그리고 환경친화적이란 점을 모두 고려하면 식물 기반 바이오플라스틱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코카콜라’는 이미 2010년부터 콜라 페트병을 식물이 원료인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20년엔 모든 병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바이오플라스틱의 선두주자인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네이처웍스’사(社)는 식물에서 얻은 바이오플라스틱(PLA)으로 ‘월마트’의 포장비닐, ‘KFC’의 음료수 컵 ‘IBM’의 컴퓨터 플라스틱을 만들고 있다. 자동차 내부의 내장재·매트·범퍼·의자 가죽까지 갈대나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제조한다.

썩는 플라스틱, 한국의 달러 박스 기대
올해 브라질에선 월드컵이 열린다. 브라질은 사탕수수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다. 30년 전부터 사탕수수에서 알코올을 얻은 뒤 휘발유와 섞은 가스홀(Gasoline+alcohol)로 자동차를 굴리고 있다. 요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탕수수 부산물로 비닐주머니 원료인 폴리에틸렌을 만들어 시판 중이다. 축구 강국을 뛰어넘어 사탕수수 부산물로 자동차를 굴리고 바이오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청정 녹색산업’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연구진도 바빠졌다. ‘기아차’는 자동차 내장재의 10%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바꾼 새 차를 올해 출시한다. ‘SK’ ‘GS 칼텍스’ 등 국내 화학 기업들도 기존의 정유 산업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바이오플라스틱 연구에 올인한다. 바이오플라스틱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재료 중 하나다. 플라스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마구 버리는 우리가 문제다. 1분 쓰고 버리는 일회용 비닐봉지로 얼마 남지 않은 석유를 써 버릴 수는 없다. 귀한 석유로는 정밀화학 제품·의약품 등 고(高)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석유 산업으로 국가의 기둥을 세웠다. 석유 산업의 단단한 기반을 이제는 친환경산업인 바이오플라스틱 공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줄기세포·유전체(genome)의학 등 의료 분야의 바이오도 중요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석유화학 기반의 바이오플라스틱이 곧 달러를 벌어들이는 효자가 될 것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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