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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4)첨단 바이오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15> 체내 부동액

by 바이오스토리 2013. 12. 9.

불치병 환자에게 삶의 시간 더 줄 묘약 될까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15> 체내 부동액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52호 | 20131208 입력

1 혹한의 사막에서도 잘 견디는 부활초. 생체 부동액 덕에 물에 담그면 세 시간 만에 싱싱해진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연인을 보내고 싶지 않은 남자는 연인과 함께 냉동 인간이 돼 50년 후 다시 태어난다. 그 사이 발달한 의학기술로 불치 병을 고쳐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멜 깁슨이 주연으로 1992년 제작된 영화 ‘사랑 이야기(Forever Young)’다. 공상과학에나 등장할 이야기 같지만 이를 믿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사람들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알코어 생명연장회사’에는 118명의 인간이 영하 섭씨 196도 액체 질소 속에 ‘잠들어’ 있다. 사망 선고된 뒤 몸에 냉동 보존제를 넣고 언젠가는 다시 숨을 쉴 것이란 희망 속에 차가운 액체 속에 누워 있는 것이다. 엽기적이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런 ‘인간 냉동 기술’이 가능하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난치병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아이의 생명을 잠시, 예를 들면 10년쯤 정지시키고 치료법이 개발된 뒤 소생시켜 남들처럼 제대로 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애틋한 심정일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매년 8만여 명이 암을 비롯한 난치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리 몸은 체온이 내려가면 생체시계가 느려진다. 이론적으로 절대 0도인 섭씨 영하 273도면 모든 분자의 운동이 얼어붙고 그 물체는 그 상태로 영원히 보존된다.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탱크 속에 정자·난자 등 동물세포를 보관하면 거의 그 상태로 유지되는 이유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액체 질소 통에 보관된 ‘사람’들은 수십~수백 년이 지나도 보관 당시, 즉 사망 당시의 인체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체 내의 수분이 어는 게 문제다. 그래서 사망 직후 인체 내 모든 물을 최대한 빼내고 ‘부동액’으로 채운다. 물론 그렇게 ‘보존’한다 해도 현재 기술로서는 ‘냉동 보존’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없다. 사망 원인도 원인이지만 얼리고 녹이는 과정에 세포가 다 망가진다. 가장 큰 어려움은 뇌가 그대로 ‘기억’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 냉동은 현재로선 공상이다. 하지만 물이 꽁꽁 얼어붙는 극저온, 예를 들면 영하 30도까지 체온이 떨어져도 어떤 동물은 체액이 얼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 어떤 이유일까?

2 한겨울이 돼도 나무나 어떤 동물은 부동액을 사용해 얼지 않는다. 3-1 식물 잎에는 서리가 잘 내리게 돕는 미생물이 있다. 3-2 미생물에서 얼음이 잘 얼게 하는 물질을 만들어 인공눈을 즐긴다. 4 얼음인간상. 얼음을 다루는 자연의 기술을 이제 인간이 응용한다. [사진 deviantARTㆍ위키피디아ㆍFlickor]
남극 물고기와 알래스카 누드애벌레 생존법
2013년 세계 5대 과학잡지인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영하 30도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남는 알래스카 홍나비의 ‘누드 애벌레’의 몸속에 얼지 않는 물질이 있음을 밝혔다. 즉, 부동 단백질(AFP: Anti-Freeze Protein) 덕분에 이 애벌레는 물이 꽁꽁 얼어붙는 영하 30도에서도 체액이 얼지 않고 액체 상태로 있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자동차 냉각기에 부동액을 넣는데 이 털 없는 애벌레는 확실한 부동액을 몸 안에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부동물질은 자동차 라디에이터용보다 훨씬 좋아서 자동차 부동액의 0.2% 정도만 있어도 효율은 같은 아주 ‘센’ 녀석들이다. 이런 부동액을 사람에 넣으면 영하 30도에서도 몸이 안 얼지 않을까? 사람을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도 피가 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영하 30도에서도 사는 동물처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남극 바다의 수온은 영하 2도다. 여기 사는 물고기는 따뜻한 물에서 사는 물고기와 달리 피 속에 부동 단백질이 있어 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물고기뿐 아니라 개구리도 이런 물질을 갖고 있다. 2013년 ‘미 실험생물학회지(J. Exp. Biol)’는 개구리를 영하 2도까지 얼려 가사 상태로 만들었다가 온도를 높이자 꿈틀대고 살아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보여줬다. 개구리 체내 부동물질은 개구리 오줌의 주요 폐기물인 요소(urea)였다. 폐기물질이 부동액인 셈이다. 영하 2도에서도 체액이 얼지 않으니 개구리가 겨우내 계곡의 찬물에서 겨울 잠을 자는 건 일도 아니다.

얼지 않고 혹한에도 살아남는 식물과 세균도 있다. 식물은 단단한 세포벽 덕에 말랑말랑한 동물보다 견디기 쉽다. 겨울이 되면 에너지가 필요한 잎사귀를 스스로 절단해 낙엽으로 떨어뜨리면서 겨울 준비를 한다. 나무 속 당은 혹한에 수액이 얼지 않게 한다(사진 2).

한겨울, 영하의 건조한 사막에는 죽은 넝쿨처럼 굴러다니는 식물 ‘부활초’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 계곡’에 주로 사는 부활초는 겨울이 되면 몸 안을 당(트리할로스)으로 가득 채운다. 당은 웬만해선 얼지 않으니 부동액으로 가득 차는 셈이다. 덕분에 사막의 건조하고 추운 날씨에도 얼어 죽거나 말라 죽지 않고 ‘죽은 듯’ 굴러다니다 따뜻한 봄, 물을 만나면 수시간 만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사진 1). 이렇게 죽었다 살아난다는 의미로 ‘부활초’(resurrection plant)라 부른다.

겨울 계곡의 개구리, 남극 바다의 물고기, 알래스카의 누드 애벌레, 사막의 부활초, 모두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 살아남는 뛰어난 놈들이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녀석들보다 한 수 위인 녀석이 있다. 2007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선에 ‘물곰(Water Bear)’이라는 길이 1㎜짜리 아주 작은 동물을 태웠다. 그리고 우주에서 그대로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이놈은 10일 후에까지 살아 남아 지구로 돌아왔다. 이 ‘지독한 놈’은 극한의 기온에서 신체의 물을 부활초처럼 부동물질인 당(트리할로스)으로 바꿔 살아남았다. 그런데 사실 ‘별로’ 놀랍지 않은 것은 이놈이 실험실에서 -200도에도 살아남은 비상한 능력을 이미 보여줬었기 때문이다. 극한의 세계를 견디는 고수 중의 고수인 셈이다.

냉동 인간은 아직 공상과학이지만 자연은 조금씩 답을 주고 있다. 일러스트 박정주
 
 
 
 
 
 
 
 
 
 
 
 
 
 
영하 196도 속 냉동인간이 부활할 날은…
이른 겨울의 스키장에선 인공제설기로 질 좋은 눈을 공급한다. 인공 눈을 만드는 중요한 물질은 사실은 서리 맞은 배추 잎을 유심히 관찰하던 한 대학원생이 만들어냈다. 대관령의 때 이른 서리에 배추가 얼어붙으면 농민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분풀이하듯 서리 맞은 배추를 갈아엎는다. 배추가 얼면 배추 잎 세포가 부서지면서 영양분이 흘러나온다. 그것을 먹고사는 놈들은 배추 잎에 붙어사는,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들이다. 이놈들은 배추를 빨리 얼려 터트려야 먹고 살 수 있다. 얼음을 잘 만들어 터트리려면 물 분자가 얼음 구조로 되도록 잡아주는 ‘골격물질’이 있어야 된다. 날씨가 영하라고 해서 얼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수분인 물 분자를 잡아주는 게 있어야 얼음, 즉 서리가 빨리 만들어진다. 그런데 배추에 붙어사는 이 미생물들은 신기하게도 이런 물질을 만든다. 바로 얼음형성 단백질(Ice Nucleation Protein)이다. 덕분에 서리가 잘 내리게 된다(사진 3-1). 미네소타 대학의 대학원생인 메릴린은 이를 사용해 인공 눈을 만들었다. 즉 이것을 인공적으로 많이 만들어 찬 겨울 하늘에 물과 함께 뿌리면 아주 쉽게 얼음 알갱이, 즉 인공 눈이 만들어진다. 그 작은 물질 덕분에 눈이 오지 않아도 질 좋은 눈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선물이다(사진 3-2).

그러면 알래스카의 누드 애벌레의 부동 단백질(AFP)은 무슨 선물을 줄 수 있을까?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차가워야 제맛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려면 지방을 첨가해야 하는데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그게 없으면 아이스크림이 얼어 딱딱한 아이스케이크가 되고 만다. 여기에 남극 물고기의 부동 단백질(AFP)을 첨가하면 사각사각하고 목에 잘 넘어가는, ‘부드럽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탄생한다. 냉동고에 오래 넣어도 얼지 않고 잘 견딘다. 이런 부동 단백질(AFP)은 추운 지방의 양어장에 조금만 넣어도 빙해를 막아준다. 병원 수술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식용 난자나 정자를 보관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세상 어느 곳이든 얼음과 생체가 만나는 곳에서는 이 녀석이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영하 196도의 차디 찬 스테인리스 통에 들어 있는 ‘냉동 인간’의 부활은 아직 먼 훗날 이야기다. 하지만 공상 영화의 ‘상상 속 기술’은 조금씩 실현돼 왔다. 1873년 줄 베르느가 쓴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한 ‘상상 기술’은 59%가, 1895년 허버트 웰스의 공상소설 『타임머신』 『투명인간』에 나오는 기술은 66%가 이후에 구현됐다. 지금 저온에서의 인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알래스카나 남극의 ‘고수 생물’이 알려주는 자연의 얼음 다루기에 놀라고 있다. 지금은 스키장의 인공 눈이나 아이스크림에 머물지만 이를 인체에 응용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사진 4). 불치병으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만큼의 시간을 줄 수 있는 먼 훗날을 상상해본다. 인간의 상상력은 늘 과학을 앞질러 왔다. 과학의 진보를 가져온 그 상상력에 과학도로서 경의를 표한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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