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교수의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 바이오 스토리 하우스
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5)바이러스 환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⑥ 수퍼내성균 때려잡을 비책, 미역은 안다는데…

by 바이오스토리 2013. 6. 3.

수퍼내성균 때려잡을 비책, 미역은 안다는데…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⑥ 병원균과의 전쟁

김은기 인하대 교수, 생명공학 전공 ekkim@inha.ac.kr | 제325호 | 20130602 입력

 1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 생산균이 자라던 배양 접시.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곰팡이(상단의 큰 백색)가 우연히 날아들어와 자라면서 분비되는 페니실린 때문에 근처에는 병원균인 포도상구균(하단의 작은 백색들)이 자라지 못한다. 2 MRSA의 현미경 모습. 최근 발견된 수퍼 항생제 내성균(MRSA)은 독소를 동시에 뿜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3 바이오필름(biofilm) 모습. 인체 내에 삽입하는 카테타(금속 수술보조기구)에서 붙어 형성된 포도상구균의 바이오필름 모습. 4 바다의 미역. 미생물의 통신 차단제를 이미 만들고 있었다. 자료: flickor·위키피디아
이미 오래 전, 인간과 병원균의 한판 승부는 시작되었다. 콜레라, 흑사병 등의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려는 한 연구자의 꿈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계속된 실험으로 지친 그는 병원균을 기르던 배양 접시를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실험실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월요일 아침 놀라운 행운과 마주친다. 쓰레기 통 속의 병원균이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는 곰팡이에 의해 완벽하게 죽어 있는 것이다. 사상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 생산 균을 발견한 역사적인 순간이다(사진1). 그 주인공은 알렉산더 플레밍.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플레밍이 발견한 항생제인 페니실린 덕분에 수많은 젊은이가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건졌다. 인간과 병원균의 1차 라운드는 이렇게 인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이렇게 페니실린이 세상 최초의 항생제로 등극한 1928년은 인류가 병원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인 해다. 하지만 사반세기가 채 지나가기도 전인 1950년에 페니실린 주사에도 죽지 않는 내성균이 다시 나타났다.
 
병원균의 반격에 깜짝 놀란 인간은 61년 모든 사람의 기대 속에 페니실린 내성균을 타깃으로 하는 강력한 항생제인 메티실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메티실린을 완벽히 분해해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인 MRSA(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균이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낸다(사진2). 인류는 강력한 항생제인 메티실린의 반격을 아주 쉽게 받아친 수퍼내성균(MRSA)의 등장에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되었다. 병원균들에게 쓸 무기가 없는 것이다.

페니실린으로 1R 승리, 2R 완패, 3R는?
수퍼내성균은 아직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2012년 미 시카고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수퍼내성균 감염 환자 수는 2배로 증가했고 이 숫자는 에이즈(AIDS)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환자보다 많은 숫자였다. 이 통계를 놓고 보면 입원환자 20명 중 한 명은 MRSA 환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퍼내성균 환자는 다른 병원균에 걸린 환자보다 사망 확률이 무려 50% 높다고 한다. 바야흐로 수퍼내성균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병원균으로 등장한 셈이다. 인간과 병원균의 제2라운드에서는 병원균이 인간에게 강력한 펀치를 먹이고 이를 맞은 인간은 그로기 상태로 비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수퍼내성균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게 된 포도상구균은 원래 그리 독한 녀석이 아니었다. 즉 수퍼가 아닌 보통의 착한 포도상구균은 사람의 피부에 붙어 더 독한 병원균이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공생 파트너다. 물론 이 포도상구균도 피부에 상처가 날 경우 우리 몸에서 피부 염증을 일으키거나 혈액 내에서 감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착한 녀석이 문제아가 되기 시작한 이유는 인간의 항생제 과다 사용 때문이다. 병원균이 항생제에 대해 내성이 생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병원균 내에 침투한 항생제를 아예 분해시키는 방법, 두 번째는 항생제가 달라붙는 곳을 변화시켜 아예 못 붙게 하는 법 그리고 세 번째로 들어온 항생제를 밖으로 내쫓아 보내는 방법이다. 병원균은 평상시 빠른 속도로 자라면서 많은 종류의 변종, 즉 유전자가 변한 놈을 만들어낸다. 이 가운데 앞의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면 이들은 항생제 공격에서 당당히 살아남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균이 생긴 것이다.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항생제를 과다 사용해 높은 농도의 ‘항생제 펀치’에도 살아남는 병원균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웬만한 항생제로는 상대가 안 되는 최강자다. 결과적으로 항생제의 과다 사용이 병원균의 맷집만 키워준 꼴이 된 것이다.

20분 만에 두 배로 늘어나는 수퍼내성균
수퍼내성균이 인류에 등장한 원리도 이와 같다. 메티실린(Methicillin)은 페니실린 내성균을 잡기 위해 만든 항생제다. 이런 메티실린이라는 항생제 펀치를 맞다가 한 녀석이 살아남은 것이 MRSA, 즉 수퍼내성균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놈의 등장 속도다. 불과 1년 만에 메티실린을 분해할 수 있는 괴물이 생긴 것이다. 왜 이 내성균은 인간의 진화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일까? 우선 이놈은 20분 만에 두 배로 늘어난다. 그만큼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높다. 사람이 태어나 20년 만에 아이를 낳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두 번째로 내성균이 빨리 생기는 이유는 다른 데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통째로 수입해 오기 때문이다. 즉 ‘플라스미드’라고 불리는 수송선에 여러 종류의 내성 유전자를 한꺼번에 실어 오고 게다가 다른 종류의 병원균 사이에서도 수시로 주고받는다. 프로야구팀이 자체 내에서 좋은 선수를 오랜 훈련으로 기르는 것보다 스카우트해 오는 것이 훨씬 빠른 것과 같다. 또한 스카우트할 때 4명의 선수를 한꺼번에 받는 경우도 있다. 병원균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 대학병원에서 발견된 수퍼내성균에서 네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일으키는 강력한 변종 유전자가 실려 있는 플라스미드가 발견되었다. 이제 수퍼내성균의 세상이다. 이를 막을 방법을 찾느라 인간 연구자들은 밤을 새운다.

이제 새로운 타입의 항생제를 속히 찾아야 한다. 기존의 항생제, 즉 페니실린처럼 병원균의 세포벽 합성 등을 직접 방해하는 방식이면 오히려 변이주의 종류만 더 늘릴 뿐이다. 미국 제약회사 머크는 두 군데를 동시에 공격하는 ‘더블타깃’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특정 유전자를 타깃으로 한다는 것은 같다. 즉 낮아진 확률이지만 그래도 이런 항생제에도 내성균이 나올 확률이 있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다른 차원의 항생제가 없을까? 최근 병원균 간의 통신을 방해하는 방법이 차세대 항생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참호(바이오필름) 속의 병원균(수퍼 항생제 내성균·MRSA) 사이의 통신을 방해하는 차세대 항생제 기술. 일러스트 박정주
병원균 통신 물질 ‘AHL’을 공략하라
병원균이 인체의 침입에 성공해 감염시켜서 사망시키려면 첫 번째 피부 같은 장벽을 통과해서 인체 내로 들어와야 한다. 상처를 입거나 수술 후에 감염이 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1단계 장벽인 피부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는 인체 면역과의 싸움이다. 철조망을 통과했으니 이제 적진에서 일전을 벌이는 것이다. 병원균의 목표는 인체의 점령이다. 군인들 간의 전투와 같다.

성급히 무작정 달려들면 인체에 비상경보를 발생시켜 인체면역시스템에서 급파된 식균세포나 항체라는 미사일 공격을 받아 병원균은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벌이지 못하고 괴멸된다. 모든 군사지원이 준비된 상황에서 일제 공격을 해야 침입자인 병원균의 승률을 높인다.

2012년 미국 PNAS 잡지에는 병원균이 인체에 독소를 뿜을 때에는 ‘상호연락’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먼저 침입한 병원균은 끈끈한 물질을 발생시켜 인체 내부의 벽에 필름 형태의 방공호인 바이오필름(Biofilm)을 만든다(사진3). 이 안에서 일정한 수가 될 때까지 식량을 나누어 먹고 때를 기다린다. 일정 숫자가 만들어지면 상호 연락을 통해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독소(toxin)를 내뿜어 인체를 공격한다. 이런 전술은 군대에서도 사용한다. 즉 모든 병력을 공격라인에 집결한 뒤 계산된 시간에 포사격을 실시해 참호 속으로 피할 틈을 주지 않는 소위 TOT(Time On Target) 공격법이다. 이런 전술을 오래 전부터 병원균이 쓰고 있던 것을 최근에 확인한 것이니 공격전술에서는 병원균이 포병사령관보다 한 수 위인가 보다.

병원균들이 사용하는 통신 방법은 주위에 내 동료가 얼마나 있는가를 서로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통신 물질의 한 종류는 병원균이 만드는 AHL(N-Acyl Homoserine Lactones)이다. 즉, 병원균이 많이 모이면 AHL도 높아진다. 어느 농도 이상이 된 AHL이 독소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켜게 되면서 독소를 일제히 생산해 공격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연구자들은 여기에 착안한 차세대 항생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 병원균이 AHL을 아예 못 만들게 하거나 AHL을 백신처럼 인체에 미리 주사하는 ‘통신 방해술’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들이 수퍼내성균을 없애는 방안의 하나로 최근 연구 중인 이런 ‘통신 방해술’은 이미 자연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는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미역을 들 수 있다. 바다에 있는 바위나 구조물에는 여러 생물들이 달라붙어서 두터운 바이오필름이 생성된다. 배 밑바닥에 많은 생물들이 달라붙는 것도 하나의 예다. 이런 것들과는 달리 미역의 잎 표면은 늘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바다에 있는 미역, 다시마는 햇볕을 받아야만 광합성을 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미생물들이 잎 위에 두터운 바이오필름을 만들면 안 된다. 바다 미생물들은 바이오필름을 만들 때 통신 수단으로 화학물질인 AHL을 만들어 같은 팀을 모은다. 미역은 이걸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 이 목적으로 미역들이 바다 미생물 사이의 통신 수단인 AHL 저해제를 미리 만들어내 바다 미생물들이 잎을 덮는 바이오필름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역이 ‘병원균 통신 차단제’라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아이디어를 준 셈이다(사진4).

이젠 병원균과의 3라운드를 시작해야 한다. 침입하는 병원균끼리의 소통을 차단하는 원리를 이용해 인체 내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한 가지 방편이다. 자연은 답을 알고 있다. 자연이 주는 지혜를 잘 쓰면 된다. 병원균과의 3라운드에서 인류의 한판승을 기원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