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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2)바이오 신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80>‘저승사자’ 전이암, 암 소굴 침투해본 면역세포가 잡는다

by 바이오스토리 2018. 9. 17.

 

https://news.joins.com/article/22699277 (중앙일보 바로가기) 

 

 

‘저승사자’ 전이암, 암 소굴 침투해본 면역세포가 잡는다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같은 암 환자라도 이놈들이 많이 있는 환자는 암이 더 쉽게 치료돼야 하는 게 아닐까? 연구진은 암수술 시 떼어 낸 암덩어리에 침투한 면역세포수와 이후 사망률을 조사

news.joins.com

 

 

 

‘저승사자’ 전이암, 암 소굴 침투해본 면역세포가 잡는다

 

 

세명 중 하나는 평생 한 번 암에 걸린다. 암은 성인 사망 원인 1위다. 그렇다고 겁먹을 건 없다. 5년 평균 생존율이 80%, 조기위암은 95%까지 늘어났다. 수술도 잘 끝났고 항암주사도 견뎌 냈다고 하자. 이때부터 가장 두려운 건 전이와 재발이다. 전이암은 저승사자다. 전이된 위암 생존율은 11%다. 전이암을 잡는 방법은 없을까. 희소식이 있다. 전이된 암을 끝까지 추적·궤멸시키는 ‘전이암 킬러’를 호주 연구진이 찾아냈다. 임상시험에선 전이된 흑색종 환자 50%에게 ‘암 킬링’ 효과가 있었다. 이 킬러는 우리 몸에 있던 놈들이다. 이게 바로 ‘환자맞춤형 전이암 전문’ 항암제다. 이놈들을 만나 보자.
 

베트콩의 아지트 ‘구찌 땅굴’처럼
암덩어리는 접근·파괴 힘든 요새

중심부에 가 본 종양침투 면역세포
‘지옥의 묵시록’ 주인공 같은 킬러역

환자 몸속의 침투 면역세포 분리
숫자 불려 다시 주사, 임상 효과 커

 

전이암은 어떻게 생기기에 5년 생존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칠까. 암이 생기는 원리부터 보자. 암세포는 늘 생긴다. 나이 들수록 더 많이 생긴다. 정상 면역상태라면 금방 발견, 파괴된다. 만약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일대일로 평지에서 만난다면 게임 끝이다. 두 손으로 암세포 멱살을 잡은 채로 ‘죽음의 키스’를 날린다. 즉 접한 상태로 세포파괴 물질을 주입한다.
 
 
사람마다 암 전이 정도 달라 의사들도 고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하지만 면역이 약해지면 처음 생기는 한두 놈을 놓치게 된다. 이놈들이 조직 속으로 파고들어 암덩어리로 자란다. 고형암 시작이다. 이에 반해 액체암(혈액암·림프암)은 세포상태로 액체(혈관, 림프관) 속에서 떠다닌다. 면역세포가 찾아서 죽이기 쉽다. 하지만 90% 암은 장기껍질에서 생겨 조직을 뚫고 자라 덩어리를 형성한다. 장기껍질세포가 암세포로 잘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위장을 보자. 위 속 껍질(상피세포)은 강한 위산을 늘 접한다. 게다가 매일 매운 음식, 들이붓는 알코올로 고달프다. 고달프면 암세포로 변한다. 이후 조금씩 위벽을 뚫고 자라나 덩어리를 만든다. 위 점막을 뚫었으면 1기, 위 근육까지 침범했으면 2기, 위를 벗어나 림프절까지 갔으면 3기, 아예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으면 4기로 분류한다.
 
의사들이 이런 암덩어리를 발견하면 수술이 최우선이다. 다른 곳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항암주사를 놓는다. 여기부터가 전이암 발생 여부에 중요한 순간이다. 항암제에 암세포들이 모조리 죽어 자빠진다면 치료 끝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놈들이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자라면 그게 바로 전이암이다. 항암제에 저항이 생긴 거다. 예측했던 일이다.
 
정작 의사들을 고민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왜 사람마다 전이 정도가 다를까. 즉 3기인 사람도 수술 후 전이 없이 잘 지내는 경우가 있다. 반면 1기였음에도 전이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 혹시 사람마다 암덩어리가 다르고 거기에 침투하는 면역세포들 숫자가 서로 다른 건 아닐까? 암덩어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암 소굴을 실감나게 보여 주는 곳이 있다. 베트남 구찌 땅굴이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서북쪽으로 70㎞ 떨어진 구찌 땅굴은 관광코스 인기 1위다. 하지만 20년 전 방문한 구찌 땅굴을 생각하면 필자는 지금도 숨부터 막힌다. 전쟁 중 많은 군인이 베트콩을 찾아 땅굴로 들어갔지만 죽어 나오기 일쑤였다. 그곳은 평지 전투에 익숙했던 군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구찌 땅굴처럼 암덩어리(고형암)는 암세포 아지트다. 그곳 환경은 혈액과는 완전히 다르다. 면역세포들이 접근·확인·파괴하기가 힘들다. 이유는 암세포들이 사용하는 교묘한 전략 3가지 때문이다. 면역세포 녹다운 시키기, 정상세포인 척 위장하기, 그리고 다른 세포들을 좀비로 만들기다.

 

 

 

암세포들, 정상세포 위장술 등 교묘한 전략
 
첫째, 암세포는 빨리 자라는 세포로 산소가 많이 소비된다. 그래서 암덩어리 내부 산소농도는 13%까지 떨어진다.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는 암세포와 달리 처음 들어온 면역세포들은 낮은 산소에 기진맥진이다. 게다가 암세포가 뿜어내는 독성물질로 면역세포는 절인 배추처럼 시들시들해진다. 
 
둘째, 암세포들은 위장·기만 전술을 쓴다. 한 예를 보자. 나이 들어 죽는 세포는 자폭신호 깃발을 내건다. 즉, 나는 죽을 테니 공연히 공격해서 옆 세포에 파편이 튀지 않게 하라는 깃발이다. 이 깃발이 꽂혀 있으면 면역세포는 그냥 지나간다. 동굴 내 암세포들은 이 깃발을 자기 몸에 꼽는다. 힘들게 동굴 내부로 들어온 면역세포들은 이 표식을 보고 암세포들을 그냥 지나친다.
 
셋째, 암세포들은 주위 정상세포들을 좀비로 만든다. 좀비가 된 놈 중에는 면역조절세포가 있다. 이놈은 다른 면역세포들 공격 세기를 조절한다. 너무 세게 만들면 자기 몸에 총질한다. 너무 약하게 하면 암세포도 놔둔다. 좀비가 된 조절세포는 들어오는 면역세포를 약하게 만든다. 어떤 좀비세포는 동굴 입구에 장애물(콜라겐)을 설치하거나 아예 암세포를 몸으로 둘러싸서 밀착 경호한다.  
 
저명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100명 난소암환자 조사 결과는 더 섬뜩하다. 난소암 덩어리에 들어온 면역세포 자체도 좀비가 됐다. 침투도 어렵고 좀비로도 만드는 암 소굴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 미국)을 연상케 한다.
 
1970년대 후반 베트남전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친 군인들이 하나둘 생겼다. 탈영을 했다. 탈영병은 변절자다. 암세포다. 탈영병들이 밀림 깊숙한 곳 동굴에 본거지를 마련했다. 이들을 찾아 없애기 위해 수색대가 출동한다. 밀림 속 갖가지 장애물로 수색대는 기진맥진해진다. 힘들게 본거지에 침투한 수색대는 탈영병 중에 오래전 실종된 장교를 발견한다. 그 장교는 동굴을 공격하러 왔다가 그들 꼬임에 빠져 아예 그곳에 눌러 앉았다. 암세포가 멀쩡한 놈을 좀비로 만드는 것과 같다. 영화는 수색대가 동굴 속 탈영집단 우두머리 대령을 죽이고 귀환하는 것으로 끝난다.
 
호주 과학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릎을 친 것일까. ‘혹시 암조직 중심부까지 침투한 면역세포가 있다면 이놈들은 암세포들을 기억할 것이고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예상은 적중했다. 환자 암 조직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면역세포들은 침투하지 못했지만 중심부까지 침투한 기특한 놈들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용감한 그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종양침투 면역세포’, 전이암 킬러 본명이다.
 
호주 과학자들은 암 소굴에 침투하는 놈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눈길을 끄는 놈들이 있었다. 암 소굴에서 나오는 면역세포들이다. 이들이 향한 곳은 놀랍게도 다른 곳에 전이된 암세포였다. 그렇다면 이놈들을 골라내서 수를 불려 다시 주입하면 어떨까. 그러면 수술 후 남아 있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전이된 암들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같은 암 환자라도 이놈들이 많이 있는 환자는 암이 더 쉽게 치료돼야 하는 게 아닐까? 연구진은 암수술 시 떼어 낸 암덩어리에 침투한 면역세포수와 이후 사망률을 조사했다. 예상대로였다. 유방암 환자들 경우 침투세포 숫자가 10% 증가하면 사망률이 11% 감소했다. 난소암, 흑색종도 모두 같은 결과다. 그만큼 면역이 활발해서 그 암을 잘 찾아내고 암 소굴을 잘 침투한다는 의미다. 
 

 

 

흑색종 말기 환자 50%의 암 크기 절반으로
 
이제 환자 종양 내 침투한 세포 숫자를 측정하면 치료 효과가 어떨지도 정확하게 예측됐다. 지금까지는 암 크기, 침범 림프절수, 전이 여부로 암이 몇 기인가를 결정했다. 여기에 암조직에 침투한 세포 숫자를 더하면 더 정확하게 암 병기와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 그만큼 침투세포가 전이암 치료, 예방에 필수란 이야기다.
 
이제 환자 대상 임상단계다. 초기 임상결과 전이된 흑색종 말기 경우 50% 환자에게서 암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들었다. 획기적인 결과다. 이제 항암제도 개인맞춤형 시대다.
 
같은 유방암 환자라도 암세포는 서로 종류가 다르다. 암세포가 다른데 같은 치료제를 사용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혈액 중에 있는 일반 면역세포를 뽑아서 주사제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과학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즉 몸속 많은 면역세포 중에서도 암 소굴에 침투한 경력이 있는 놈들만을 환자 암조직에서 직접 분리해서 수를 불려 다시 몸에 주사한다. 이놈들은 환자 몸 안에 있는 바로 ‘그’ 암세포들과 싸워 본 놈들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전이암 킬러는 없다. 같은 암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는 일종의 ‘암 백신’인 셈이다.
 
지금까지 암 환자들에게 전이란 저승사자였다. 하지만 이제 내 가족들은 저승사자를 더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저승사자가 있을 곳은 저승이지 이승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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