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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3)두뇌 바이오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76> 남을 돕는 사람이 장수 염증·콜레스테롤·스트레스 낮춰

by 바이오스토리 2018. 5. 9.

남을 돕는 사람이 장수 염증·콜레스테롤·스트레스 낮춰

: 이타심의 과학

스크루지 영감과 동료 귀신’(1843, 존리치). 스크루지 영감은 동료귀신에게 혼쭐이 난 후 개과천선한다.

 

 

20171221일 제천 복합상가 건물 화재로 29명이 희생됐다. 이 후진국형 참사는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살맛을 잃게 만들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안겨 준 사람들이 있다. 연기 속에서도 손님들을 대피시킨 이발사, 화염 속 건물 옥상에서 3명을 구한 개인 사다리차대표, 부상을 입으면서 여성들을 대피시킨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진 의인들이었다. 이런 의인들은 따로 있는가?

 

제천 화재 의인 목숨 걸고 구조

이타심 유전자 따로 있고 본능

만족감 높이고 유대감 형성

신체호르몬 변화로 오래 살아

 

차도에 무심코 아이가 내려선다. 주위 비명에 여러 명이 뒤돌아본다. 누가 뛰어들까. 두뇌가 관여할까. 결정은 도덕적 이성인가 본능적 감성인가. 최근 연구는 사람마다 이타심 정도가 다르고 두뇌 특정 부위가 결정함을 밝혔다. 이타심은 해당 유전자가 있고, 본능이며, 인간 진화원동력이라는 의미다. 그럼 봉사하면 건강하게 장수할까. 과학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이타심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자.

 

의인들 특정 두뇌반응 부위가 더 커

 

[두뇌 도파민 경로] 선행은 보상회로(적색)를 자극, 도파민을 생산한다. 도파민은 운동회로(청색)도 주관한다.

 

[두뇌 도파민 경로] 선행은 보상회로(적색)를 자극, 도파민을 생산한다. 도파민은 운동회로(청색)도 주관한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연구진은 20대 성인 80명을 화재 건물에 투입했다. 물론 가상현실(VR)이다. 비록 헤드셋을 쓴 가상현실이지만 실험자들이 너무 무서웠다고 할 만큼 리얼했다. 실험자에게는 화재 시 비상탈출경로를 찾는 연구라 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긴박한 실내 화재 탈출 도중, 물건에 깔린 타인을 실험자가 힘들여 구하는가, 아니면 지나치는가를 판정했다. 65%가 본인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했다. 이들 두뇌 공통점을 헤드셋과 연결된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로 실시간 확인했다. 놀랍게도 의인들은 특정 두뇌반응 부위가 컸다. 의인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반응부위는 이성적 사리판단 부위가 아닌 감정적 타인관계 부위(우전측뇌섬엽)였다. 즉 이성·도덕·양심보다는 본능적 타인 배려심이 이들을 움직였다. 타인에 대한 동정·자비심이 본능적, 선천적이란 의미다. 그럼 사람마다 소위 이타심 유전자가 다를까.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누구는 눈을 돌리고 누구는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연구 결과 자비심이 높은 사람들은 두 개 유전자(도파민, 옥시토신)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국 한족 2288명을 조사해 보니 도파민 유전자 두 종류(2R·4R) 4R그룹이 25% 더 많이 기부했다. 옥시토신 수용체 3종류(AA·AG·GG) GG그룹이 22.7% 더 온정적이었고 사회적응력과 스트레스 대항력이 높았다. 하지만 유전자 차이가 전부는 아니다. 황폐한 환경, 예를 들면 어릴 적 16개월 고아원에 있던 그룹이 대조군보다 옥시토신 수치가 낮고 기부액이 적었다. 선천적·후천적 요인이 모두 이타심 차이를 만든다.

 

 

위험한 사냥에 덜 참여하는 이기적 동료에게도 늑대들은 고기를 나누어 준다.

위험한 사냥에 덜 참여하는 이기적 동료에게도 늑대들은 고기를 나누어 준다.

 

 

옥시토신·도파민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옥시토신은 엄마가 젖을 물릴 때 나오는 연결·애착호르몬이다. 끈끈한 유대감과 감정적 웰빙상태를 만든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상대와 거친 말싸움을 준비할 경우 운전자 두뇌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손)이 치솟는다. 반면 대화로 해결하자고 관대하게 생각할 경우 코르티손보다는 옥시토신이 앞선다. 옥시토신이 높으면 평화롭고 너그러워진다. 옥시토신을 코에 직접 뿌린 그룹은 대조군보다 두 배나 더 많이 기부했다.   봉사할 때 나오는 옥시토신·도파민은 헬퍼스 하이 (Helper’s High)’를 만든다. 마라토너들이 힘든 구간을 지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는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와 같은 유래다. 러너스 하이 땐 엔돌핀보다는 마리화나 계열 성분(아난다마이드)이 뇌에서 분비된다. 마라톤 피크타임의 고통에 대응토록 두뇌가 비정상적으로 마약 성분을 내보낸다고 과학은 해석한다. 마라토너는 고통 속에서 쾌감을 느끼지만 봉사자는 심리적 만족으로 순수 쾌감을 얻는다. 이 기쁨은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같은 본능적 쾌감이다. 봉사가 본능일까?

 

봉사하는 인간이 진화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식량나누기 공동체 내 상호협력은 인류 진화 원동력이다.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식량나누기 공동체 내 상호협력은 인류 진화 원동력이다.

 

 

유명학술지 (Cell)’은 봉사활동 관여 뇌부위는 짝짓기 할 때의 보상회로(Reward Circuit)’임을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로 밝혀냈다. 보상회로는 어떤 일을 할 때 쾌감이 생기고 이 보상(쾌감)을 기억해서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쾌락회로다. 쥐의 쾌락회로에 전극을 꽂고 스위치를 주면 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이곳을 누른다. 짝짓기가 즐거워야 자주 하게 되고 그래야 동물은 번성한다. 봉사활동 할 때도 이 회로가 자극된다는 의미는 봉사가 진화에 필요했다는 의미다. 남을 제치고 살아남는 약육강식이 진화 기본인데 왜 봉사와 선행이 진화에 필요했을까?   러시아 심리학자 러셀 처치는 쥐에게도 자비심이 있음을 보였다. 굶은 쥐에게 먹이를 줄 때 옆 쥐들에게 전기 자극을 주어 고통을 주게 했다. 그러자 굶은 쥐는 배가 고파도 먹이를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저명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달콤한 초콜릿이 있어도 쥐는 갇혀 있는 다른 쥐 탈출을 먼저 도와주었다. 늑대들은 위험한 사냥에 덜 참여한 이기적 늑대에게도 고기를 고루 나누어 준다. 이런 자비심은 돌고래·원숭이·인간 진화에도 필요했다. 인간은 상호 돕는 능력이 가장 높다. 2016년 영국 런던대학은 필리핀 밀림 내 원시 형태 수렵채취 원시 부족 324명 대상으로 친족이 아닌 타인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정도를 측정했다. 부족이 오래될수록, 부족원 간 서로 접촉이 많을수록, 남에게 많이 나누어 주었주었다.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들 사이에 상호 협조하는 것이 그룹 진화에 도움을 주었고 봉사·자비심이 본능으로 뇌에 프린팅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자비가 본능이라면 남녀는 자비심 많은 짝을 고를까? 21세 남녀 대상 조사 결과, 맘에 드는 여성 앞에서 남자들은 기부 금액, 즉 자비심이 늘어났다. 여성에게 자비심 많은 남자로 잘 보이고 싶은 거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자기 아이를 돌보는 자비·희생심이 높다. 남자도 그렇다면 짝으로서 인기가 높다. 2014년 영국 심리학회지에 따르면 이타심 높은 쌍둥이 67%가 이타심이 높은 짝을 골랐다. 이타심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인간은 이타심이 많도록 진화했다는 의미다. 진화에 유리하다면 남을 돕는 사람이 건강하게 더 오래 살까 

 

4년 봉사, 사망률 44% 감소  

코넬대 연구팀은 기혼여성 313명 건강을 30년간 추적 조사했다. 돌보는 아이 숫자, 직업 여부, 수입은 건강에 별 영향이 없었다. 중병(심장병··관절염) 확률이 30% 낮고 운동능력이 높은 그룹은 놀랍게도 평범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봉사가 수명에 영향을 줄까? 캘리포니아주 55세 이상 성인 경우, 4년간 자원봉사를 한 것만으로 병원 입원이 38% 줄어들고 사망률이 44% 감소했다. 주당 4번 운동효과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3가지, 즉 심리만족감 상승, 사회유대감 형성, 신체호르몬 변화가 수명을 늘린다. 착한 일은 염증·콜레스테롤·스트레스호르몬(코르티손)을 낮춘다. 꼭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테레사 수녀의 인도 캘커타 봉사활동 영상을 본 하버드대 학생 몸에서는 면역항체가 높아졌다. 이런 자비심 건강증진효과는 환자치료에 직접 쓰인다.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은 사람이 같은 중독자를 도와주는 봉사를 하면 음주 재발률이 27% 낮아졌다. 말기 유방암환자들이 같은 유방암환자들에게 본인 경험과 고통 대응 노하우를 이야기해 주는 대화봉사를 했다. 그 결과 본인 생존기간이 2배 늘어났다. 자비심을 키워 보자.

 

성인 자원 봉사 활성화돼야

동화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에서 수전노 스크루지는 귀신에게 끌려다닌 후 개과천선한다. 이런 충격적인 방법 말고 자비심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원봉사다. 하지만 한국 성인봉사율(12.8%)은 미국(25.4%), 영국(55%)에 훨씬 못 미치고 노인 봉사(6.2%)도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성인 95%가 봉사하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른다. 봉사활동 참여자의 44%가 종교단체였다. 전문가들은 단체(지역·종교·사회) 내에서 봉사활동을 추천한다. 사회적 유대관계도 좋아지고 그룹으로 움직이면서 시너지가 더 많이 난다. 필리핀 원시 부족 연구결과는 사회적 소속감과 유대감이 높을수록 자비심이 높아진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한 장기간 그룹 활동이 자비심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4살 아이도 남에게 베푸는 행위를 하면 두뇌-장기 연결신경이 안정되어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이를 잘 견딘다. 성인 봉사자는 사망률 자체가 낮아진다. 하지만 본인에게 이로울 것을 찾는 자세가 아닌 순수한 봉사일 때만 건강증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건강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보너스일 뿐이다. 성서나 과학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자비심의 부메랑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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