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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5)바이러스 환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27>에볼라 확산은 밀림 파괴와 밀렵에 대한 ‘보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15.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에볼라 확산은 밀림 파괴와 밀렵에 대한 ‘보복’

<27> 바이러스와의 전쟁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 제388호 | 20140817 입력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감염된 동물세포(노란색)에서 밖으로 나오는 에볼라 바이러스(청색).
중국의 마술 변검(變臉)은 짧은 시간에 뺨(臉), 즉 얼굴이 변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 중 한 방법은 여러 겹의 얇은 가면을 미리 쓰고 있다가 ‘휙휙’ 한 겹씩 벗겨내는 기술로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변검의 최고봉 기술은 얼굴의 색을 감정 조절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술이 어려워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1995년에 개봉된 오천명 감독의 중국영화 ‘변검’을 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변검을 잘 할 수 있는 생물체는 무엇일까 하는 ‘직업 정신’이 발동됐다.

최근 서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변화의 천재가 아닐까? 문제는 중국 마술처럼 ‘와!’하는 탄성 대신 ‘싸’한 두려움이 앞선다는 점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스스로 ‘변해’ 한국을 감염시킬 수도 있을까? 나는 평소 뭘 해야 하나?

미국, 생물학전 대비해 치료제 개발
2014년 8월 2일, 서아프리카를 출발해 미국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전세기에서 두 명의 미국인이 후송되는 장면이 마치 SF영화처럼 생중계됐다. 철저한 보호 장비 속의 에볼라 감염 환자는 곧 바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치료주사를 맞고 기적적으로 회생하기 시작했다. 치사율이 90%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미국 본토에 들여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거액을 들여 두 미국인을 사지(死地)에서 데려와 살린 오바마 정부의 용단이었다. 이는 미국인에겐 성조기에 대한 자부심을, 다른 지구인에겐 에볼라 공포에 대한 안도감을 주었다. 치료제로 사용된 ‘ZMapp’ 주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미국인이 후송되기 전까진 공식적으로 에볼라 치료제가 없었다. 에볼라 발병 5개월 동안 1847명이 감염, 1002명이 숨질 때까지 현지 아프리카 환자들이 받은 치료는 탈수방지 수액제(링거액)가 전부였다. 지금껏 치료·예방약이 안 나온 이유로 거론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바이러스가 너무 위험해서 다루기 힘들고 감염경로를 모르며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발병해 바이러스 샘플 채취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치료제를 거의 만들어놓고 있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효능 판정 연구가 끝난 ‘ZMapp’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쥐에 주사한 뒤, 쥐의 혈액 속에 형성된 면역방어물질인 항체(antibody)를 천연물과 혼합한 약이다.

미국은 왜 이 약을 만들고 있었을까? 에볼라는 돈이 되는 병이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은 높지만 그 지역 주민만 희생시키고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그것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만 발생했다. 사망자수도 40년간 1000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에볼라 치료제 개발에 나선 것은 생물학 무기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적국이 생물학전 무기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사용하려면 높은 치사율도 필요하지만 빠르게 전파돼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즉 안개 형태의 미세 물방울로 퍼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서(西)아프리카에서 유행 중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환자를 직접 접촉한 경우에만 옮겨진다고 해서 100% 안심할 순 없다. 실제로 에볼라에 감염된 돼지와 직접 접촉이 안 되는 곳에 격리됐던 원숭이가 감염됐다는 연구(Scientific Report, 2012년) 결과는 안개 형태의 에어로졸로 에볼라가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알맹이인 유전자(RNA)만을 민들레 씨앗처럼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공기 부양’ 능력을 갖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공기 부양’까지는 아니지만 미세 방울 형태라면 어느 정도 이동이 가능하다. 비행기 내에서 에볼라 환자가 기침으로 바이러스를 내뿜는다고 가정해보자. 인플루엔자처럼 전체 항공기 내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진 않지만 기침 속의 미세 침방울이 닿는 근처 승객은 위험해질 수 있다. 모든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고 진화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공기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진화할 가능성은 없는가?

과일박쥐·원숭이·곤충 등 숙주 의심
영화 ‘변검’에선 마술사인 주인공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여자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변검 마술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여자가 마술사가 되는 것이 못 마땅한 할아버지는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 고아는 마술사 몰래 비법이 담긴 ‘통’을 찾아 나서고 드디어 나무상자에 든 수십 장의 가면종이를 발견한다. 얼굴을 순식간에 변하게 하는 마법의 ‘통’을 발견한 것이다.

바이러스 학자들도 여자 아이처럼 ‘통’을 찾아 헤맨다. 이들에게 ‘통’은 야생동물이다. 2003년 세계를 휘저은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의 ‘통’은 중국 광둥성의 요릿집에 있었다. 사향고양이와 뱀으로 만드는 ‘용호봉황탕(龍虎鳳皇蕩)’은 중국 광둥성의 명물요리다. 재료로 사용된 야생동물인 사향고양이에 숨어있던 사스 바이러스가 요리사를 감염시키면서 이 병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처럼 야생동물은 바이러스의 ‘통’이자 시작점이다. 그래서 바이러스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자연에서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 있는 동물, 즉 바이러스들이 기생하는 숙주(宿主)를 찾는 데 주력한다. 그래야 전파경로를 알 수 있고 병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6년 아프리카 자이레(현재 콩고 민주공화국)와 남수단에서 602명 감염, 431명 사망이란 사상 최고의 치사율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는 어떤 동물일까? 바이러스 과학자들은 에볼라 발생지역인 밀림을 샅샅이 뒤졌다. 지난 20년간 3만 마리에 달하는 포유류·조류·양서류·곤충을 조사했다. 과일박쥐가 주범일 거라고 하지만 원숭이·곤충·새일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 바이러스에게 ‘통’, 즉 야생동물은 후손을 보존하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변종(變種)을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둥근 바이러스 외피 안에서 변이가 잘 되는 RNA 유전자가 보인다.
바이러스에겐 ‘유토피아’인 인간의 몸
‘살아서 퍼뜨려라.’ 모든 생물의 DNA(유전자)에 프린팅(입력)된 이 사명을 위해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종종 바깥출입을 한다. 외출할 때는 그동안 숙주 안에서 길러온 수많은 변종을 데리고 나간다. 다양한 변종이 많을수록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공격하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변종을 특히 잘 만드는 바이러스는 RNA를 유전자로 가진 바이러스들이다. 인플루엔자(독감)·사스·에이즈(AIDS)·에볼라 등 악명 높은 바이러스들은 하나 같이 RNA 바이러스 ‘가문’에 속한다. 사촌인 DNA 바이러스에 비해 불안정한 RNA 탓에 별별 녀석들이 다 태어난다. 이로 인해 작년에 잘 듣던 독감 예방주사가 올해의 변종 바이러스엔 효능이 거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에 따라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다시 독감에 걸려 고생하게 된다. 야생오리에서 살던 바이러스와 닭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돼지 몸에서 만나 유전자가 서로 섞이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그 후 돼지와 접촉한 인간을 감염시키는 ‘생전 처음 보는 변종’이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18세기 유럽을 휩쓴 두창(천연두) 같은 대재앙이 재현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새로운 적(敵)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동·식물 숙주 속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이란 새로운 동물이 나타났다. 인간이란 새로운 종(種)을 유심히 관찰하던 바이러스들이 ‘가문(家門)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인간이 바이러스인 자신들의 생존에 있어서 인간은 최고의 ‘유토피아(Utopia·이상 사회)’란 것이다.

인간들은 일부러 밀림까지 들어와서 야생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인간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한 것도 바이러스에겐 호사(好事)였다. 인간을 한꺼번에 감염시켜서 바이러스 자신의 후손들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바이러스들이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가축은 바이러스가 인간과 접촉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중간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을 데려다가 집에서 기르기까지 했다.

바이러스들의 ‘가축 이용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소와 잘 소통하는 두창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감염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조류·말·돼지 등 동물 세상에 두루 퍼져 있다. 이런 동물과 수시로 접촉하는 인간을 감염시키기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세계가 하루권이다. 두창·에이즈·사스·아시아독감, 그리고 이번 에볼라까지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연타를 맞고 있다. 과연 이 전쟁에서 인간은 승리할 수 있을까?

현재 기술 수준으로 봐 에볼라 예방백신과 항체 치료제는 몇 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두창을 완전 박멸한 화려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미지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달되는 경로엔 늘 야생동물이 있다. 밀림 개발로 이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이 줄어들고, 밀렵으로 야생동물의 수가 감소하면서 여기에 살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나서고 있다. 새 주인이 닭·돼지 등 가축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잘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러스트 박정주
외출 후엔 손·얼굴 비누로 씻어야
오랫동안 바이러스를 추적해온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 네이선 울프 같은 과학자들은 이런 징후가 늘고 있음을 우려한다. 바이러스가 살고 있던 지역을 인간이 침범하면서 이들과 부딪치는 상황이란다. 인류는 이 상황을 이해하고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 필자의 대학 식당엔 작년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유행할 때 사용했던 손 소독 통이 아직 그대로 있다. 당시 수시로 사용하던 그 통을 올 들어 쓴 기억이 없다. 바이러스에 관심이 있는 필자도 기본 위생습관이 엉망이다.

지금 당장 에볼라가 한국에 상륙할 확률은 높지 않고, 환자가 발견되더라도 격리 후 치료한다면 퍼질 염려도 거의 없다. 이보다는 해마다 에볼라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인플루엔자에 노약자나 어린이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여럿 모인 곳에 다녀오면 손·얼굴 등 노출된 곳은 반드시 비누로 씻어 혹시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병 위험지역을 여행할 때는 해당 감염병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고 깨끗한 음식·물을 찾아 마시는 것은 기본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조수아 레티버그는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은 바이러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정확히 알고 인류의 약점을 파악해 잘 대비한다면 바이러스가 백번 공격해도 지구상의 인류는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인 것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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