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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앙일보연재;김은기의 바이오토크/(2)바이오 신약

[중앙SUNDAY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89> 30억개 DNA 뒤져 모든 암 세포 ‘명찰’ 찾아내 일망타진

by 바이오스토리 2019. 3. 11.

30억개 DNA 뒤져 모든 암 세포 ‘명찰’ 찾아내 일망타진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개인 맞춤형 면역항암제

암의 DNA 순서, 정상 세포와 비교
평균 20군데 돌연변이 ‘명찰’ 발견

개인별 백신 주사하니 획기적 성과
‘뼈에 사무치는 기억’ 면역도 생겨

DNA 해독 비용 400만분의 1로
인공지능 등 4차산업 기술 한몫

‘골수에 사무친다’라는 말이 있다. 원한, 슬픔 등 아픈 기억이 뼛속까지 들어와 오래간다는 의미다. 실제로 뼛속에 뭔가 기억이 될까. 된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기억하는 면역세포들이 들락거리는 보금자리 중 하나가 바로 뼛속, 즉 골수(骨髓)다. 

아픈 기억 중에는 ‘불주사’가 있다. 불에 덴 듯 따끔하다. 팔뚝 자국이 남는 예방주사다. 결핵균(BCG균)을 죽여 주사하면 몸속에서는 진짜 결핵균이 들어온 줄 알고 면역이 작동한다. 죽인다. 기억세포들이 만들어져 골수에 저장된다. 수십 년, 혹은 평생을 간다. 이후 같은 결핵균이 들어오면 기억세포들이 먼저 알아보고 즉각 전군비상령을 내려 전면전으로 적을 전멸시킨다. 이게 면역이다. 가장 정교한 방어전략이고 최후 저지선이다. 즉 면역은 ‘골수에 사무치는’ 기억을 남겨 놓아야 성공이다. 
  
환자 6명 25개월 추적, 4명 재발 없어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암환자다. 면역이 약해져 있다. 배반자 암세포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골수에 기억이 안 생긴다. 암세포가 자란다. 암환자가 된다. 
  
암환자는 두 번 아뜩해진다. 첫 번째는 암 통보 때다. 국내 성인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암에 걸린다. 하지만 조기발견이라면, 수술만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완치율이 90% 이상이다, 정작 두려운 건 두 번째다. 암 재발·전이 통보 때다. 생존율이 10% 이하로 뚝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새로 개발된 개인맞춤형 면역항암제 덕분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94세)은 4년 전 흑색종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 경우 4~5개월이 평균 생존기간이다. 하지만 면역항암제(키트루다, 면역관문억제제, 머크제약) 주사 후 뇌·간 전이암이 사라졌다, 이 주사 하나 매출액(6.5조원, 2018년)이 국내 르노삼성 자동차 연간 매출액을 훌쩍 넘어선다. 바이오신약 얼굴마담이다. 국내 병원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주사는 약점이 있다. 일부 환자, 일부 암에만 듣는다. 흑색종의 경우 33%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 또한 이 주사는 치료제이지만 재발·전이를 막지 못한다. 치료도 되고 추후 재발·전이를 예방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 주사는 없을까. 있다. 만들었다. 미국 보스턴 다나화버 암연구소는 암세포 치료와 재발·전이 방지에 성공했다고 저명학술지 ‘네이처’에 보고했다. 게다가 완벽한 개인맞춤형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연구진은 흑색종 3,4기 암환자들 암조직을 수술로 떼어냈다. 암세포 DNA 순서를 모두 조사했다. 정상세포와 비교해 보니 평균 20군데가 돌연변이 되어 있었다. 암세포만이 가지고 있는 ‘암 명찰’인 셈이다. 연구진은 20개 명찰(항원단백질)을 개인별로, 각각, 주사로 만들었다. 
  
이 주사를 맞은 수술환자 6명을 25개월간 추적조사했다. 3기 환자(4명)는 재발이 전혀 없었다. 이 경우 평균생존율이 45%인 것에 비하면 획기적 결과다. 4기 환자(2명)도 다른 면역항암제 동시투여로 치료가 되었다. 면역항암제 단독사용 시 치료율이 6.1%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연구진이 정작 원하던 결과는 따로 있었다. 암세포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 즉 이 주사로 ‘뼈에 사무치는 기억’을 만들었다. 
  
이 주사를 맞은 환자들 몸속 면역세포 종류를 조사했다. 본인 암세포는 물론이고 다른 환자 암세포들도 76% 정확하게 알아보고 죽이는 놈들이 생겨났다. 나를 때린 놈은 물론, 같은 패거리들도 기억한다는 말이다. 이 주사로 암 치료도 하고 장기면역도 만들었다. 장기기억면역, 이게 중요하다. 왜냐면 기억하는 놈들이 있어야 재발·전이되어 다시 생기는 암세포를 잡는다. 정상인은 암 명찰을 알아보고 공격하는 면역세포(CD8 T세포)가 60%까지 오른다. 암환자는 1% 미만이다. 이를 끌어올려야 암세포를 죽이고 ‘그 놈’을 기억한다. 새로 개발된 ‘20개 명찰’ 주사 한 방으로 치료와 재발·전이를 방지한다. 게다가 개인맞춤형이다. 이런 획기적인 주사를 그동안 왜 못 만들었을까. 답은 ‘명찰’ 때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암이 명찰 떼버리고 돌연변이 세포로 
  
암세포는 표면에 고유한 명찰(암항원)들을 가지고 있다. 명찰 중에는 모든 암에 있는 ‘공통명찰’들이 있다. 이중에는 카터 대통령에게 적용한 ‘면역관문(PD-L1)’ 명찰이 있다. 암세포는 이 명찰로 면역세포를 잠들게 한다. 면역세포는 세포외벽에 있는 ‘페달(PD-1)’로 펀치 강약을 조절한다. 너무 강하면 자기세포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예: 류마티스, 궤양성대장염)이 생긴다. 너무 약하면 외부침입자·암세포를 알아채고도 공격을 못한다. 암세포는 본인 명찰로 면역세포 ‘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면역세포가 약해진다. 이러면 암세포가 자란다. 빨리 면역을 깨워야 한다. 암세포 명찰을 무력화시켜 면역세포를 깨우는 주사제(항체주사:면역관문 억제제·키트루다)가 년 매출 6.5조원짜리다. 하지만 암세포들도 대응을 한다. 즉 이 명찰을 떼어버린 돌연변이 암세포가 나타난다. 따라서 한 개 명찰만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모든 명찰’ 예방주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임상시험에서는 개인별로 각기 다른 20개 명찰(암항원)주사를 만들었다. 한두 개 공통 명찰을 공격했던 것보다 위력이 훨씬 강하다. 마치 기성양복보다 맞춤형이 좋은 것과 같다. 즉 신체 사이즈만 알고 기성양복을 사는 것보다 목·가슴·허리·팔·다리 길이를 정확히 재서 만드는 개인맞춤 양복이 몸에 딱 들어맞는 것과 같다. 개인맞춤형이 가능해진 이유는 신속하게 개인 유전자를 해독, 비교, 최적 명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비해 DNA 해독비용이 400만분의 1로 줄었다. 2억원이던 벤츠S600을 50원에 사는 셈이다. 예전 DNA 다루는 기술이 권총이라면 지금은 분당 6000발 발칸포다. 30억 개 DNA 순서를 서로 비교하고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 암세포 ‘명찰’인지 확인하는 정보(IT)기술, 인공지능(AI)도 한몫했다. 이번 연구는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기술(빅데이터·인공지능·바이오기술)로 개인맞춤형 암치료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제 암 정복이 가능한 걸까. 
  
기원전 1500년 이집트 파피루스 종이에는 유방암을 불로 지져서 수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암은 지구에 동물이 나타날 때부터 함께 진화해 왔다.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동물 진화에 필수란 의미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첨단과학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승리하자. 그래서 암으로 가족을 갑자기 보내는 ‘뼈에 사무치는 기억’을 만들지 말자. 
  
또 다른 맞춤형 ‘면역세포 주사’있지만 1회용 그쳐
또 하나의 개인맞춤형 항암주사가 임상 중이다. 암환자 면역세포를 꺼내 실험실 훈련시켜 다시 주사하는 ‘면역세포 치료제’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1)암덩어리 침투 면역세포(TIL)를 골라 수를 불려 다시 주사하는 방법 (2)귀환 암세포로 암세포를 잡는 방법 (3)면역세포에 암세포유전자를 심어 알아보게 하는 법(CART)이 있다. 
  
하지만 면역세포 주사방법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1회용이다. 주입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죽이고 나면 사라진다. 주입 1달 뒤 숫자는 1% 미만까지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뼈에 사무치는’ 기억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재발, 전이를 막지 못한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면역세포 주사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가장 자연스런 방법은 인체면역을 그대로 모방하는 거다. 즉 암세포 명찰(항원)을 주사해서 면역을 깨워야 한다. 그래야 남아 있는 암세포를 죽이고 기억한다. 물론 명찰을 바꾸거나 없앤 변이 ‘내성’ 암세포가 생길 수 있다. 대응책은 ‘최대한 많은’ 명찰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수십 개 명찰을 한꺼번에 바꾸는 변이 암세포가 생기기는 쉽지 않다. 또한 다른 종류 항암제와 병행사용해서 암세포에 변화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현재 3042개 면역항암제 임상 중 1105개가 두 종류 이상을 동시 투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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